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손영준의 퍼스펙티브] 정부가 뉴스의 악의·고의성 판단하면 비판은 설자리 잃어 / 손영준(언론정보학부) 교수

언론 자유 침해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그래픽=최종윤  


.편향 보도로 비판받아온 KBS ‘저널리즘 토크쇼 J’가 지난 13일 폐지됐다. ‘토크쇼 J’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공영방송 KBS의 정권 편향 민낯을 여실하게 보여준 프로였다. 코드에 맞는 진보 인사 위주로 패널을 구성했다. 입맛에 맞는 이슈를 다뤘다. 살아있는 권력과 여권이 불편해할 이슈에는 침묵했다. 야권과 보수 매체 관련 사안에는 추상같은 칼날을 겨눴다. KBS 사장도 ‘토크쇼 J’의 내용과 구성에 문제가 있다고 공개적으로 시인한 바 있다. 사장의 발언 이후 폐지까지 1년이 걸렸다. 한때는 개혁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불과 2년여 만에 퇴출당했다. 세월이 무상하다. 
   

상법으로 언론 보도 규제하면 취재 활동 위축될 수밖에 없어
국가가 정해주는 범위 안에서 만드는 뉴스가 바로 가짜뉴스
국가가 보도의 영역·범위·깊이 설정하는 건 언론 자유 침해
좋은 저널리즘은 정부가 아니라 논쟁·토론 통해 인정받아야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우선 공영방송 KBS는 언론 자유를 성찰하지 못했다. 자유는 외부의 간섭이나 억압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문제는 자유의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공영방송에서 언론 자유의 주체는 제작자뿐 아니라 시청자도 포함된다. 제작자의 자유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공영방송이라 할 수 없다. 무늬만 공영이라면 법으로 위상을 보장할 필요는 없다. 시청자의 언론 자유는 제작자의 자비심이나 선의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청자는 간섭이나 견제 없이 골고루 정보를 듣고 얻을 자유와 권리가 있다. 공영방송은 개인의 자유를 증진할 의무가 있다. ‘토크쇼 J’는 반쪽 방송이었다. 시청자에게 봉사할 자유는 설 자리를 잃었다. 
    
취재 보도는 상행위로 규정할 수 없어 
  
정부는 겉으로는 방관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침묵의 카르텔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정부는 한술 더 떠 언론 자유를 본격적으로 옥죌 태세다. 법무부가 이달 안에 국회에 제출한다는 상법 개정안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에 언론 보도가 포함됐다. 한국기자협회와 신문협회·신문방송편집인협회의 반대에도 강행 태세이다. 
   
우선 언론 보도를 상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언론사가 광고라는 상행위를 하는 것은 맞지만, 취재 보도는 상행위로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행위는 상인이 하는 것인데, 정부 논리가 맞는다면 모든 기자는 상인이어야 한다. 법안이 통과되면 인격권 침해와 명예훼손을 이유로 언론에 대한 위협이 늘어날 것이다. 악의적인 보도로 인격권을 침해하면 언론은 최대 5배의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토크쇼 J’가 문을 닫아도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의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이런 방식으로 언론 보도에 대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능하지도 않다. 우리는 이미 방송법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법·정보통신망법 등에 명예훼손, 청소년 보호, 음란 등에 대한 제재 규정이 있다. 언론 보도로 인한 인격권 침해는 언론중재위원회 신속 구제나 법원을 통한 방법이 있다. 
   
언론 규제에 법이 더 필요한 것일까. 보도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논쟁과 토론에 부쳐야 한다. 토론의 진정한 가치는 논쟁과 비판을 통해 살아남는 진리를 확인하는 것이다. 논쟁과 비판을 통해 옳음을 인정받는 것과 비판을 허용하지 않고 옳음을 미리 상정하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르다. 옮음이 옳은 것은 논쟁과 토론에서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생각되더라도 반대 생각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손해배상으로 윽박지르는 것은 비판을 제한해 진실을 독점하는 것과 같다. 
   
보도의 악의성과 고의성을 누가, 어떻게 증명할 것이냐도 쉬운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악의성과 고의성을 판단한다면 ‘토크쇼 J’의 재판(再版)이 될 것이다. 공동선을 임의로 판단한다면 반대 의견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비판할 자유는 위축될 것이다. 오보를 이유로 하나하나 응징해 나간다면 남는 것은 순치된 보도일 뿐이다. 비판의 자유가 없는 언론에는 박제화된 뉴스만 남을 것이다. 
   
정책에 우호적인 뉴스는 권력에도 좋은 것은 아니다. 비판 뉴스가 자리를 잃게 되면 권력은 무소불위가 된다. 이것은 정부가 좋은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해 이미지 전문가에게 의존하는 것과 같다. 일시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린다. ‘악의 평범성’을 지적한 한나 아렌트는 이런 행위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생산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언론과 여론 관리하려는 권력의 유혹 
  
안 그래도 언론에 대한 신뢰는 매우 낮다. 불신은 오래됐다. 미디어 난립, 공정성 위기, 미디어 상업주의를 원인으로 지적한다. 언론의 당파적 보도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언론 자유에 대한 철학이 정립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언론 자유도는 높아졌지만, 언론에 대한 신뢰가 낮은 것은 언론을 둘러싼 이해 당사자들이 언론 자유의 의미를 아전인수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힘을 가진 측은 언론과 여론을 관리하려 한다.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쪽은 반대 세력에게 말할 자유를 허용하지 않으려 한다. 지금 정부가 추진 중인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그 사례이다. 
   
그러나 국가가 보도의 영역과 범위·깊이 설정에 관여하는 것은 언론 자유가 아니다. 국가가 정해주는 범위 안에서 생산되는 뉴스는 반쪽 뉴스, 가짜 뉴스다. 
   
말길과 물길은 막는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논쟁과 토론을 허용하라. KBS의 대표적 불공정 프로그램으로 알려진 ‘토크쇼 J’의 쓸쓸한 퇴장과 언론 보도에 대한 손해배상제 도입을 지켜보면서 언론 자유의 의미를 되돌아본다. 좋은 저널리즘은 정부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 한국인

 

국가별 언론 신뢰도 지수  


.영국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발표한 뉴스 신뢰도 조사에서 한국은 조사에 포함된 2016년 이후 매년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 연구소가 올해 발간한 ‘디지털 뉴스리포트 2020’에 따르면 한국의 언론 신뢰도는 21%로 조사 대상 40개국 중 꼴찌다. 공동 1위를 차지한 핀란드·포르투갈(56%)의 절반도 안 된다. 한국 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협력을 받아 우리나라 뉴스 이용자 2304명을 대상으로 지난 1~2월 온라인 설문 조사한 결과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에델만이 발표하는 신뢰도 지수에서도 한국은 언론 불신 국가다. 에델만이 매년 발표하는 한국인의 언론 신뢰도 변화 추이를 보면 최근 10년간 한국 사람들은 언론을 믿는다는 사람보다 믿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신뢰한다는 사람은 50% 미만이었다. 이런 비율은 조사 대상국 중 중하위에 해당한다.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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