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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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방가르드들의 현대 시각디자인 어법 / 조현신(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교수

디자인 파노라마 3_ 조현신 국민대 교수


인류가 남긴 시각 기록물은 암각화에 그 시원을 두고 있다. 암각화에 남겨진 것들에서 보이는 구체적 형상 혹은 추상 재현물들은 풍요와 다산, 혹은 질병의 추방을 기원하는 주술적 의식의 도구이자 결집의 구심체. 힘의 상징체이기도 했다. 이후 중세의 종교화, 초상화, 궁정화 등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동양에서 상류층이 전유하였던 시각예술 역시 개인의 감성이나 해석적 표현이 아닌, 대상에 대한 경외가 담긴 집단해석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의 사회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전통기의 유일무이한 시각물들이 지니고 있는 주술성, 의식성, 일회성의 특성 등을 작품의 아우라라고 칭하면서 이 아우라는 일종의 귄위이자 힘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기술을 통한 대량복제는 이 의식성과 아우라를 파기하였으며, 이미지와 시각물은 재현 대상인 실체가 지니고 있는 힘과 에너지를 잃고 단지 망막에 소구되는 정보로만 격하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현대 시각디자인의 흐름은 이렇게 아우라를 상실한 채 대량복제 이미지로 생산되면서 대중들의 욕망을 일깨우는 매혹적 매체의 파노라마이기도 하다.


바우하우스 포스터. 좌우대칭과 구불거리는 영어 활자체를 탈피해 비대칭의 미학, 돌기가 없는 산세리프체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대량 복제기술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역시 구텐베르크 활자와 인쇄기의 발명이다. 이 기술을 통해 1450년부터 1500년까지 50년 동안 3만 종의 책이 2천만 부 인쇄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그 이전의 1천년 동안 출판된 책보다 더 많은 양이라고 한다. 복제술에 의해 성직자와 귀족에 의해 독점되어 압제의 수단으로까지 쓰여진 기독교 교리가 대중에서 파급되면서, 유럽사회는 대 변혁의 시기로 들어갔다. 마르틴 루터의 95개조 교리 반박문 역시 구텐베르크 인쇄술을 통해 단 2주 만에 독일 전역으로 퍼져나갔다고 한다. 이러한 대량인쇄술와 더불어 사진술, 1796년에 최초로 발명된 석판인쇄술은 현대 시각 디자인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기술적 근간을 형성하였다. 이후 19세기 중반부터 20세가 초부터 시작된 현대 시각디자인의 주요 매체인 책, 잡지, 신문, 포스터, 광고 등은 어떻게 당대의 욕망과 가치, 이데올로기가 텍스트를 뛰어 넘어 망막적 유혹을 통해 확대되는가를 보여준다. 

 


미래주의의 편집 디자인. 전통사회를 거부하는 새로운 시각어법을 제시했다.


근대가 시작되면서 새로운 인공 환경을 통해 사회를 변혁시키고자 하는 꿈을 꾼 일군의 집단을 디자인 아방가르드라고 칭하며 이들은 전통사회를 거부하는 새로운 시각어법을 제시했다. 장식과 전통적 미감이 혼합되어 과도기적 스타일을 보여주던 아르누보 양식이 쇠퇴하면서 20세기 초 시작된 서구 모던 디자인의 물결은 독일의 디자인 교육기관인 바우하우스에서 발화되었다. 이들이 제작한 포스터는 당시 전통기 포스터가 보여 준 좌우대칭, 구불거리는 영어 활자체를 탈피하여 비대칭의 미학, 돌기가 없어 스마트해보이는 영어활자체 산세리프체의 사용이 핵심적 미감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의 전시회 포스터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Louis H. Sullivan),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Mies van der Rohe) 등의 당대 모던 아방가드르 디자이너들의 조형철학의 아포리즘을 명확하게 재현한 실증물이었다.

 


신조형주의 운동을 펼치던 몬드리안의 작품 『콤포지션』. 몬드리안은 우주에서 조형의 기본선은 수평선과 수직선이라고 주장했다.


이들 초기 모던 시각디자인물의 미감은 시간과 노동, 자본의 집약체인 장식을 거부하고, 민주적이고 누구나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고 해석할 수 있다고 추정되는 감성의 재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지크프리드 기디온의 『기계화는 명령한다』(Mechanization Takes Command) 라는 책 제목이 보여주듯이 당대 기술의 총화인 기계미학을 모방하고 구현한 것이기도 하다. 미캐닉 기계가 요구하는 반복적인 리듬의 모듈과 그리드의 사용, 기하학적 형상과 단순한 색채 등이 이들 시각물의 조형적 특성이다. 이들은 인공환경물의 기본 원리에 대해 타협할 수 없는 뚜렷한 철학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 중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들어보자. 1920년대 네덜란드에서 반 도스브르크와 함께 『데 스틸』 잡지를 발행하며 신조형주의 운동을 펼치던 몬드리안은 우주에서 조형의 기본선은 수평선과 수직선이라고 주장하였는데 도스브르크가 사선을 그림에 도입하자 『데 스틸』 지의 기고를 중단해 버린다. 세계에 대한 조형적 해석이 어긋나자 결별한 것이다. (사족을 붙이면 이런 에피소드는 서구 디자이너들의 조형원리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보여주는 일면이기도 하고, 한국의 디자인계는 가져 보지 못한 철학과 논리에 근거한 디자인 행위를 보여주는 예시이기도하다.) 그의 이런 철학이 명징하게 재현된 것이 그 유명한 『콤포지션』이다. 수평선과 수직선, 빨강, 노랑, 파랑의 삼원색과 비 삼색인 흰색, 회색, 까망으로 이루어진 이『콤포지션』은 몬드리안이 해석한 우주의 조형원리인 것이다. 이에 동조한 디자이너 게리 리트벨트는 이를 ‘레드 블루 의자’로 구현했고, 쉬뢰더 부인의 청으로 이 그림은 ‘쉬뢰더 주택’으로까지 구현되면서, 현대 디자인 조형원리의 근간을 상징하고 있다. 
 


디자이너 게리 리트벨트는 ‘레드 블루 의자’로 신조형주의를 동조했다.

 

 

러시아 구성주의 포스터. 혁명을 지지한 러시아 디자이너들은 “모든 것은 선과 그리드로 이루어지며, 네모의 장미를 만들겠다”고 선언하면서 추상성과 운동성만으로 구성된 ‘구성주의’라는 혁명적 시각어법을 만들어 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유럽은 또한 정치사회적으로 격동의 시기였다. 러시아에서는 혁명이 일어났고, 혁명을 지지한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은 “모든 것은 선과 그리드로 이루어지며, 네모의 장미를 만들겠다”고 선언하면서 추상성과 운동성만으로 구성된 구성주의라는 혁명적 시각어법을 만들어 냈다. 이태리의 젊은 예술가들은 1차 세계 대전의 참패에 격분하면서 과거의 이태리를 부정하고 역동적인 힘과 속도를 찬앙하는 화법을 구사했다. 마리네티는 미래주의 선언문에서 “탄환처럼 달리며 으르렁대는 자동차는 사모트라케 섬의 나이키 여신상보다 아름답다”고 공표하면서, 기계가 주는 다이너미즘의 미학을 찬양했다. 전통기가 끝나고 근대기가 탄생하던 시기, 이렇게 유럽을 중심으로 한 인공환경물의 근간 논리는 확실했으며 이들은 이 원리의 구현으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으로 현대 시각 디자인의 장을 열었다. 하지만 이런 아방가르드적이며 혁명적인 조형사상과 활동은 전쟁과 파시즘의 대두, 대중의 외면으로 사그라들면서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고, 이렇게 ‘새로운 조형, 새로운 사회’의 열기는 비지니즈와 결합을 하면서, 대중의 개인적 욕망을 자극하고 일깨우는 시각 어법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조현신 국민대 교수

국민대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에서 디자인 역사와 이론을 가르치고 있으며, 우리의 일상에서 친근하고 낯익은 디자인물에 관심이 많다. 특히 한국의 근대기 시각디자인문화사를 주 연구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대표 저서로 『일상과 감각의 한국디자인문화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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