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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디즈니 애니메이터 김상진 감독/(경제학과 78) 동문

중앙일보가 진행하는 ‘공부의 신 프로젝트’는 청소년들이 진로에 대해 사회 각계의 명사들로부터 구체적인 조언을 받는 명사 멘토링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 첫 번째로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터이자 캐릭터 디자이너 김상진 감독이 멘토로 나섰다. 예술의 전당에서 개막한 ‘월트 디즈니 특별전’을 위해 한국을 찾은 그를 11일 임유리(인천 인명여고 2)·서한솔(경북 김천여고 1)·강승화(서울 정원여중 2)양이 만났다.



고2 임유리 “디즈니에 들어가 한국을 알리는 애니메이션 프로듀서가 되고 싶어요.”

▶유리=디즈니는 내 꿈이다. 김 감독님이 미대가 아닌 경제학과를 나와 디즈니에 들어간 과정이 궁금하다.

▶김 감독=난 적록색맹이 있다. 일상엔 지장이 없지만, 내가 대학에 들어갈 때 색맹이 있는 사람은 미대에 진학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림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대학에서도 늘 그림을 그렸다. 국민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작은 애니메이션 회사에 들어갔다. 3년 정도 일하며 기본기를 닦다가 캐나다에서 TV용 애니메이션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한국을 떠났다. 7년을 일했는데, 회사가 문을 닫게 됐다. 그때 마침 디즈니가 애니메이터 채용 공고를 냈다. ‘드림웍스’가 새로 생겼을 때라 디즈니에서 많은 사람이 빠져나갔다. 좋은 기회였다. 시험은 없고 포트폴리오를 내야 했다. 4개월 동안 밤낮 없이 그림을 그려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 디즈니는 내게 기회를 줬고 난 꿈을 이뤘다.

▶유리=디즈니 입사가 1995년, 한국 나이로 서른일곱 살 때다.

▶김 감독=동료들보다 늦은 나이였지만 꾸준히 노력하고 준비해 꿈을 이뤘다는 게 참 자랑스러웠다. 운이 좋아 어느 날 갑자기 디즈니에 들어온 게 아니다. 몇 년 동안 다른 회사를 다닌 경험이 모두 꿈을 이루기 위한 준비였다. 그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다. 당장 꿈이 멀게 느껴져도 포기하지 말고 부지런히 그려라. 기회는 언젠가 온다. 준비된 사람만이 기회를 잡는다.


고1 서한솔 “멋진 캐릭터 디자이너가 돼 제 이름이 엔딩 크레디트에 올라가는 날 꿈꿔요.”

▶한솔=정규 미술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아 힘든 점은 없었나.

▶김 감독=물론 힘들었다. 상사로부터 “다시 그려오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잘 훈련된 미대 출신들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오히려 정규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남과 다르게 그릴 수 있었고 더 창의적인 아티스트가 되는 데 큰 힘이 됐다.

▶한솔=지방에 살다 보니 다닐 만한 미술학원이 없어 혼자 그림 연습을 해 불안하다.

▶김 감독=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혼자 할 수 있다. 나도 초등학교 6학년 때 잠깐 다닌 것 말고는 미술학원을 다니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조언하자면 먼저 다른 사람 작품을 따라 그려라. 베끼는 게 시시해질 때쯤 자기만의 그림을 그려라. 난 가방 속에 손바닥만 한 스케치북을 넣고 다니며 행인들을 스케치하곤 했는데 큰 도움이 됐다. 5초 정도 관찰하고 순간의 느낌으로 그 사람을 상상해 그려라. 수북이 쌓인 스케치북만큼 실력이 부쩍 는다.

 그린 그림은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반응을 들어라. 난 반 친구들에게 내 그림을 보여주며 느낌을 묻곤 했다. 애니메이션은 전문가가 아닌 대중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일반인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도 중요하다.

▶한솔=주변에서 “취업도 어려운데 그림은 접고 공부나 하라”는 말을 많이 해 고민이다.

▶김 감독=하고 싶은 걸 할 것이냐, 현실에 타협할 것이냐. 어려운 선택이다. 15살 난 내 딸이 같은 고민을 한다면 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다른 사람 말이 아니라 네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머리가 아닌 마음이 원하는 길을 가라고.


중2 강승화 “꿈과 희망을 그리는 세계적인 애니메이터가 되고 싶어요.”

▶승화=내 롤모델은 감독님이다. 김 감독님이 그린 라푼젤의 남자 주인공 ‘플린 라이더’만 봐도 두근댄다. 감독님의 멘토는 누군가.

▶김 감독=미녀와 야수, 인어공주, 알라딘 등 디즈니 대표작들의 주요 캐릭터를 디자인한 글렌 킨 감독이다. 라푼젤의 여자 주인공도 그의 연필 끝에서 태어났다. 큰 덩치에 굵은 연필을 쥐고 미간을 찌푸린 채 온 힘을 다해 그려낸다. 힘이 느껴지는 그의 그림에 반했다. ‘나도 이렇게 그릴 수 있다면’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의 그림을 수없이 따라 그리며 실력을 키웠다. 캐릭터 디자인도 그의 권유로 시작하게 됐다. 그의 그림과 열정 모두 존경한다.

▶승화=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애니메이터가 되려면 어떤 능력을 키워야 할까.

▶김 감독=탄탄한 그리기 실력은 기본이다. 두각을 나타내려면 번뜩이는 상상력이 정말 중요하다. 나도 이 때문에 머리에서 쥐가 난다. 왕도는 없다. 기발한 생각을 하려면 많이 봐야 한다. 책, 소설, 영화, 그림을 닥치는 대로 보며 상상력을 키워라. 난 특히 고전 그림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는다. 이 일은 좋아해야 평생 할 수 있다.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는 결론을 얻었다면 도전하라. 내가 디즈니 최초의 한국인 애니메이터이자 캐릭터 디자이너였는데, 지금은 3명의 한국인 애니메이터가 더 있다. ‘당장 뭘 이뤄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꿈을 향해 긴 호흡으로 준비해 세계 무대의 문을 두드려 열어라.

 

라푼젤의 남자 주인공 플린 라이더.

 

김상진 감독은
1959년생. 국민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미술 ‘비전공자’지만 1995년 한국인 최초로 월트 디즈니사에 애니메이터로 입사했다. 캐릭터 디자이너로 수많은 캐릭터를 창조,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라푼젤’과 ‘볼트’의 캐릭터를 디자인했으며, ‘타잔’ ‘보물섬’ ‘치킨 리틀’ 등에 수석 애니메이터로 참여했다.

원문보기 :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1/05/25/5187968.html?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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