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인! 국민인!!
[헤럴드경제]성공, 통찰력의 산물/(경영학전공 94)동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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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소셜커머스 중 하나인 위메이크프라이스(이하 위메프)는 업계 후발주자다. 그럼에도 에버랜드, 롯데리아와 같은메가톤급 딜을 내놓으며 완판행진을 벌였다. 잔챙이 여럿보다 제대로된 왕건을 빵빵 터트리는 그들. 대단하다 싶을 때 즈음, 슈퍼딜을 책임지는 사람이 박유진 실장(위메프 슈퍼딜팀 실장)이라는 제보를 받고 냉큼 달려가 봤다. 밝고 정직한 조도 아래 나눈 그날의 대화는, 한 남자의 히스토리이자 자기계발서를 귀로 읽은 에디터의 기록이다. 소셜의 등장, 그 자애로운 은혜 에디터가 직딩으로 살던 어느 날. 차곡차곡 적금 붓고 남은 돈 쪼개 깨알 같은 쇼핑으로 작은 행복을 충족하고, 가끔 ‘그 분’이 오시면 카드로 3개월을 날름날름 긁던 시절. 겸손한 소득과는 반대로 폭주하는 욕망에 서글픈 날들을 보냈다. “좋은 삶이 좋은 것을 누리는 것이라면, 난 그런 건 됐고 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겠다”는 이상적인 말을 하곤 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육체의 눈으로 각종 호사스러운 것들을 스캔하는 순간, 본능적으로 마음이 동했다. 맛있는 음식, 좋은 장소, 좋은 여가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누리고 싶어 하는 행복의 요소였다. 그러던 지난해 어느 날, 피할 수 없는 소비의 운명을 타고난 우리를 위한 혁신적인 서포터가 등장했다. ‘소셜커머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 이 메커니즘은 제한된 시간이기에 애틋했고 헌신적인 할인이었기에 자애로웠다. 그리고 지난 1년 사이 소셜커머스 시장은 급성장했다. 이제 매일 밤 12시면 전국 500여 개 업체에서 쿠폰을 쏟아내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소셜커머스는 소비를 운명으로 타고난 우리에게 헌신적 조공을 바치고 있는 것이다.
통 크게 쏜다, 위메프 소셜커머스는 구글 이후 가장 성공적인 온라인 서비스 모델이었지만, 우후죽순 늘어났으므로 스팸처럼 여겨지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기껏 구매했는데 구매자 미달로 취소가 되거나, 검증되지 않은 소규모 업체가 난립하거나, 화려한 할인이 무색하게 해당업체가 오지(?)에 있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셜 시장의 85%를 꽉 잡고 있는 3대 소셜에 몰린다. 티켓몬스터, 쿠팡, 위메프. 이들은 모두 1등 위치를 내세우며 고객을 유치하고 있다. 그렇다면 진짜 1등을 구별하는 관건은 뭘까? 바로 ‘슈퍼딜’이다. 얼만큼의 브랜드파워를 가진 실용적 상품을 어느 정도나 할인해주느냐는 것이 그들의 파워를 말한다. 3대 소셜 가운데 위메프(www.wemakeprice.co.kr (주)나무인터넷)는 굵직굵직한 기업의 상품들을 야무지게 내놓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8일 오픈 당시 에버랜드 자유이용권을 14,900원이라는 사상 최저가로 10만 장을 판매했고 T.G.I.F 식사권(10만 장 판매, 8억 매출), 롯데월드 자유이용권(1만 장, 1억 매출), 롯데리아 새우버거세트(25만 장, 6억 매출), 코데즈컴바인 의류교환권(5만 장, 25억 매출) 등을 팔아 치우며, 업계 최단 기간(론칭 4개월 반)에 누적 매출 200억을 달성했다. 특히, 1일 10만장 판매 기록은 아직까지 국내 모든 온라인 쇼핑몰을 통틀어 최초이자 최고의 기록이다. 이제 위메프는 전국 64개 지역을 서비스한다. 국내 소셜커머스 사상 최단 기간 최대 직영 점(80개)으로 확장하며 하루에 거래되는 딜(deal)만 해도 50개나 된다. 회원수 80만 명, 일일 평균 방문자수 150만 명에 달하며, 명품 소셜커머스인 ‘프라이빗 라운지’까지 확장해 진화하고 있다. 슈퍼딜의 중심, 박유진 박유진은 위메프 슈퍼딜 팀의 실장(팀장)이다. 위에서 언급한 기록들은 그의 근성과 역량의 결과다. 박 실장은 기획부터 제휴사와의 만남, 세부 조건 협의(수량, 유효기간, 할인율 등)부터 판매 후 관리에 이르기까지 슈퍼딜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을 책임진다. 그는 격동의 70년대 지나온 것도 아닌 94학번이면서, 스스로를 운동권의 마지막 세대라 말한다. 박실장은 대학 입학 후 7년 동안 데모만 했다. 이 뿌리는 고교시절 비전인 교육에 저항한 전교조의 영향이었는데, 이때부터 사회구조의 문제를 인식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고교시절 신문반을 통해 의식 있는 글쓰기 훈련을 했고 94년도에 국민대 경영학과에 입학해 총학생회장을 지내며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박 실장에게 학생운동은 정의와 공익을 위한 일이었고 가치 있는 행동이었다. 그래서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을 갖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고 한다. 대학 졸업반 무렵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치열하게 고민했다. 경영학과였기에 마케팅을 공부하면서 광고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는데, 삼성을 보고 문득 ‘어떻게 저렇게 돈을 잘 벌까?’라고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단순한 호기심은 즉시 적극적 탐구심으로 바뀌었다. 직접 몸으로 부딪혀 알고 싶어 삼성그룹 계열사인 제일기획에 들어간 것. “2001년에 제일기획 AE로 입사했어요. 근데 워낙 어렸을 때부터 운동권에 관심 있던 애가 삼성 계열사에 간다니까, 친구들이 전부 ‘민족의 배신자’니 ‘변절자’니 하면서 말이 많았어요(웃음). 그때는 총학회장은 감옥 가거나 정치하거나 둘 중 하나였으니까요. 사실 전 운동권 학생들이 꼭 그런 삶을 사는 게 싫었어요.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고 이롭게 하는 일은 다른 것도 있으니까요. 어차피 정치를 할 수 있는 그릇도 아니라고 생각했고요. 그럴 바엔 전문가가 돼서 사회에 실질적으로 기여하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딱 5년만 있자고 생각하고 들어갔습니다.” 그는 5년 동안 제일기획의 지식경영시스템으로 선배들의 훌륭한 프레젠테이션 자료들을 숱하게 보고 공부했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PT를 만들고 발표했다. 이 시절은 그가 살아온스토리를 세탁하는 기간이자, 직업인으로서 평생 이 일을 해도 되는가를 테스트하는 기간이었다. 광고 마케팅의 세계를 마음껏 헤엄치며 성장한 그에겐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살겠다는 소망이 자라났다. 그 옛날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 청년의 열정이 ‘광고’의 세계로 확장된 것이었다.
1. PT를 앞두고 떨리는 것은 당연한 일. 긴장하고 있음을 인정하라. PT는 떨리는 게 당연하다. 안 떨리면 몸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남 앞에 서는 게 두렵고 떨리는 게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 이게 PT의 자신감을 떨어트리는 첫 번째 문제다. 두렵고 떨리고 걱정되는 마음을 인정하라. 이것이 첫 번째 자세다. 2.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 모범답안처럼 완벽하고 매끄러운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자기 얘기를 하는 게 관건이다. 사람들은 올바른 얘기에 끌리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에 끌린다. mbc에서 방송했던 <신입사원>만 봐도 안다. 모범답안을 준비해 정답만 얘기하는 사람들은 모두 탈락했다. 사람들은 이야기에 굶주려 있다. ‘나’의 얘기를 하는 사람이 호감이 간다. 모두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는 것을 명심할 것. 이것이 확장되어 스토리텔링이 되는 것이고 내 생각이 정리가 되어 히스토리가 탄생하는 것이다. 3. 있는 그대로의 관점에서 얘기하라 당신의 얘기를 하라고 해서 있어 보이는 척, 좋은 사람인 척하면 이 순간 모든 것이 박살 난다. 사람들은 진실을 원한다. 너무 잘하려고, 재밌으려고 과장하지 마라. 모르는 데 아는 척, 없는 데도 있는 척하는 것. 보는 사람들은 질색팔색한다. 4. 모든 것은 라이브! 잘 짜여진 각본으로 즐기며 연극하라. 프레젠테이션은 매 순간이 라이브고 진검승부의 장이다. 이것은 “ALL or Nothing"이다. 10분 안에 담당자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면 승패는 갈린 것이다. 10분 동안 전력 질주해서 관계자의 호감을 획득해야 한다. 이것이 관건이다. 마케터 이상의 컨설턴트 계획대로 5년의 ‘수련’과도 같은 기간을 보낸 후 그는 모의고사 주관업체인 유웨이(UWAY)중앙교육의 팀장으로 이직했다. 유웨이는 대한민국 대입 원서의 인터넷 접수를 독점하고 있었다. “대학생활에 애증을 가진 아이(본인)가 어떤 운명처럼 광고인이 됐고 다시 대학 광고시장으로 들어간 거예요. 오퍼의 스카우트 제의에 임했을 때, 전 이미 대학 광고의 전문가가 되겠다는 타이틀을 세웠어요.” UWAY는 전국 대학에 원서 접수하는 모든 고교생 DB를 가지고 있었고 매년 원서비만으로 100억씩 벌어들이는 곳이었다. 400여 개의 대학이 광고를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시장. 한 대학이 10억씩만 광고비를 써도 4,000억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블루오션이었다. “5년 동안 출장을 일 년에 100일 이상 다녔어요. 광고 기획부터 시작해서 관계자를 설득하고 실제로 구현하는 것까지, 컨셉츄얼리스트의 역할까지 만끽한 거죠.” 한양대학교의 개교 70주년 캠페인 『The Engine of Korea:누가 한국의 대학을 이끌었습니까?』부터 한국해양대학교의 『우리에게 바다는 땅입니다』라는 캠페인까지. 그는 5년간 50개의 대학 광고 캠페인을 만들었다. ‘통찰력’을 이용해 생각을 전환하는 습관이 실체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해양대는 개교 이래 매일 ‘바다는 우리의 미래입니다’라는 식의 광고만 했던 곳이었어요. 게다가 당시 해양대가 KU라는 이름으로 밀고 나가려던 차였는데, 민족고대가 KU로 바뀌고 있는 마당에 말도 안 되는 소리였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생각을 바꿨습니다. 그때 해양대 캠페인 타이틀을 『우리에게 바다는 땅입니다』로 정했어요. 그리고는 바다가 대륙이 되고 대륙이 바다가 된 포스터를 만들었어요. 오대양 육대주의 세계지도를 새롭게 그렸고 ‘서울대의 꿈보다 3천 6백배 큽니다’라는 메시지도 넣었습니다.” 그가 만든 광고는 표면 너머 숨겨진 짜릿한 반전이었다. 물론 힘든 점도 있었다. 절대적인 지식을 가진, 가장 고집 세다는 대학교 총장과 교수들을 설득시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척박한 환경이었다. 몇날 며칠을 팀원과 고심해서 나온 아이디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막무가내로 반대하는 대학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PT 설득력은 광고 효과로 빛을 발했고 박유진은 대학 광고계의 새 지평을 열었다. 전례가 없던 대학 광고시장에서 독보적 전문가가 된 것이었다. 이후, 그는 한국의 스티브잡스를 꿈꾸는 사람들이 모인 프레젠테이션 전문가 그룹, 파워PT(powerPT)에 PT전문가 그룹에 들어가게 된다. 제일기획과 대학 광고시장을 거쳐 기업마케팅의 제3시즌이 펼쳐진 것이었다. 2009년부터 그는 파워PT에서 기업 프레젠테이션 세계에 대해서 강의하면서 실무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박유진은 ‘PT의 달인’이 되어 있었고 어떤 프로젝트를 요청해도 해결할 수 있는 마케터 이상의 컨설턴트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난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을 때 위메프의 슈퍼딜을 책임지게 됐다. “처음 제가 왔을 때 시장에서 36번째 주자였고, 위메프의 이름도 원래 우후닷컴이어요. 저런 이름으로는 다 망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후발주자로 등장하면서 위메프가 1등을 하려면 시장 전체의 질서를 완전히 흔들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었으니까요. 바로 서울 시내버스 7천대 중에 천대를 광고로 도배했습니다. 빨간색 바탕에 ‘We make Price’라고 썼고 그 옆에 작게 ‘우리가 만드는 가격’이라고 적었습니다. 티저광고에 지친 사람들에게 얼토당토 않는 내용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실체가 있는 모습을 그대로 노출시킨 거였죠.” 결과는 대박이었다. 방문자는 점점 늘었고, 그가 초기에 기획한 슈퍼딜이 전부 완판됐다. 그때부터 위메프는 ‘올렸다 하면 핫이슈, 띄웠다 하면 초대박’ 행진을 벌이고 있다. Insight, The Truth is out there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마케팅의 비밀은 뭘까? 박유진은 분명하게 ‘통찰력(Insight)’이 가장 중요하다고 대답한다. 생각은 살아 있음의 증거이고 현상에 대한 깨달음이며, 통찰력은 내부의식의 깨침이다. 기존에 존재하는 것들을 뒤엎는 혁명적 사고는 인식의 재인식으로 이어지는 통찰력을 키운다. 패러다임의 이동(paradigm shift)를 불러일으키며 사물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박유진은 대학광고 시장에서도, 위메프에서도 통찰력, 인사이트(Insight)라는 필터를 이용했다. “인류역사 이래로 지구 상의 인류는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봤어요. 우리에게 보이는 표면의 생각은 ‘사과는 익으면 떨어진다.’가 전부죠. 하지만, 숨겨진 진실은 사과가 익어서 떨어지는 게 아니고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지구가 당겨서 떨어지는 것이잖아요. 쉽게 말해 이런 것이 통찰력입니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는 거죠.” 2002년 거리를 휩쓸었던 700만 붉은 악마를 이용한 SKT의 ‘붉은악마’ 마케팅도 성공을 거뒀다. “한·일 월드컵 때 KTF가 ‘KOREA TEAM FIGHTING’를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마케팅을 펼쳤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월드컵=붉은 악마의 ‘오 필승 코리아’로 기억합니다. SKT가 이용한 ‘오 필승 코리아’는 한민족의 의지를 반영한 표어에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멍석을 깔아주면 오히려 피하지만, 실은 그 안에 뜨거운 조국애와 이에 못지않게 뜨거운 신명이 숨어 있죠. SKT는 흥이 나면 한마디로 미쳐버리는 민족이라는 티칭 포인트를 건드려 자발성을 기반으로 한 길거리 응원을 유도했습니다. 인사이트를 제대로 끌어낸 거죠.” 소비자의 본성을 이해하여 마음속 심층부에 가라앉은 뒤틀림을 떠오르게 하는 것. 소비자의 자유와 자발성을 드러내는 일. 내면의 수행자와 외면의 혁명가 기질을 터치하는 것. 이것이 그가 말하는 대중을 사로잡는 법칙이다.
1. 생각을 표현하고 정리하라 소설이나 드라마가 재밌다. 이것이 왜 재밌는가를 정리해봐라. 머릿속으로 혹은 종이에 써 가며 구체적으로 ‘나는 이렇게 생각해서 이런 느낌이다.’라고 명확하게 표현할 것. 이것이 광고기획자, 마케터가 되든지 꼭 필요한 습관이다. 형이상적인 느낌만으로는 크리에이티브를 탄생시킬 수 없다. 훈련이 필요하다. 모든 생각의 결과물은 누적치로 반영되는 법. 생각의 양이 많아야 물이 차고 넘친다. 2.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라 매일 아메리카노를 먹는 내가 어느 날 카페모카가 땡긴다고 치자. 그냥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피곤해서 당이 필요한 건가?, 기분이 울적해서 단 게 먹고 싶은 건가?’식으로 사소한 질문을 끊임없이 날려라. 이런 습관은 후에 광고마케터나 MD가 되어서 광고주에 무슨 질문을 하든 간에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순발력을 키워 준다. 청춘들이여, 삶의 궤적을 만들어라 40대를 살아오며,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듯한 그에게 물었다. 20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 그가 청춘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요즘 대학생들은 도서관에 앉아서 공부 열심히 하고 영어 점수 올리고 너무 스펙을 만들기에만 열중하고 있어요. 평점만점, 영어만점을 회사에서 좋아할 것 같나요? 그런 이력서를 받는 순간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인생에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돈으로도 못 사는 게 청춘입니다. 청바지에 티만 입고도 예쁜 시절이 그때뿐이에요. 40대에도 예쁠 수 있다고? 그럼 뭐합니까. 피부가 구린데(전원폭소). 응당 그 시절에 누릴 수 있는 것을 누리는 청춘이 되세요. 한마디로 불같이 연애하고 불같이 행동하란 말입니다. 남들 다 하는 스펙 쌓기와 취업에 몰두하는 것에서 벗어나십시오. 이런 것에서 관점을 바꾸면 너무나 풍요로운 20대를 보낼 수 있어요. 방학 때는 토익학원에 다니는 대신, 한 달 동안 4주 주말을 시간 내서 평창동 미술관 투어를 해보세요. 도서관에서 미술 책 50권 읽는 것 정도의 인프라가 당신에게 만들어지는 겁니다. 글로 배우지 않고 직접 보고 느끼며 배운 것들은 평생 잊히지 않아요. 그렇게 한다고 해도 낭비한 시간은 불과 하루에 3시간, 한 달 동안 채 20시간이 안 돼요. 인생에 있어 새털만큼 짧은 시간이 아닙니까." 그리고 박유진은 말을 이었다. “서해안 청둥오리떼처럼 군집 생활하지 마십시오. 순간의 외로움을 은폐하고자 몰려다녀 봤자 소용없어요.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길 바랍니다. 김연아가 회전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고 있습니까? 무려 1만 2천 바퀴를 넘게 돌았다고 합니다. 대학생들에게 묻고 싶어요. 과연 여러분들은 1만 2천바퀴를 돌만큼 열정적이었던 적이 있었느냐고요. 김연아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질시만 하진 않았나요? 여러분의 인생에서 1만 2천 바퀴는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editor's comment 정의를 사랑하여 유년기부터 청년기까지 세상에 저항하던 한 남자가 그 올곧은 집념을 광고와 마케팅이라는 세계에 쏟아 부은 결과는 놀라웠다. 국민의 삶에 영향을 주는 퀄리티 있는 딜을 공급한다는 목표는 모든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 이념과도 같았다. 한 회사의 제품이 세월의 시련을 견디기 위해 제품의 편익 이상의 가치를 가져야 하는 시장 속에서 그들의 마음은 딜 이상의 진정성을 가지고 있었다. 날카로운 비판의식에 차 사회를 바꿔보겠다는 신념은 마케팅이라는 도구를 통해 공익으로 전환되었지만, 맥락은 같았다. 불패신화는 큰 매력이 없지만, 독한 열정은 언제나 부럽다. 출처 : 헤럴드경제 기사입력 2011-06-15 14:00 원문보기 : http://biz.heraldm.com/common/Detail.jsp?newsMLId=201106150000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