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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규문 밀레코리아 대표 "'믿고 맡기는 Mr. 안'의 비결이요? '진심 다하면 통한다'는 믿음 덕이죠" / 안규문(경제학과 72) 동문

태국 시멘트 중개무역 따낸 상사맨서
밀레 최초·최장수 현지인 CEO까지

쌍용서 상사맨 ‘첫발’
남보다 빠르게 쿠웨이트지사장 발령
쪽잠 자며 현지어 공부하고 낮엔 일해
‘한국 건 못믿겠다’던 업체들 사로잡아

1997년 외환위기 때 방콕지사장 맡아
시멘트 100만t 수출 중개 '대박'
‘신뢰男 미스터 안’ 애칭 얻어

‘외국産 가전 무덤’에서 승승장구 
판매사원·수리기사 모두 정규직 
‘한국式 경영’으로 국내 시장서 우뚝 

“한국의 미스터 안 배워라”
獨 본사, 해외법인장들에 조언

독일 가전업체 밀레는 해외법인장을 새로 임명할 때 “한국에 가서 미스터 안을 만나고 오라”고 한다. 미스터 안은 안규문 밀레코리아 대표(64·사진)를 일컫는다. 해외법인장 가운데 안 대표만큼 일 잘하는 사람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신임 법인장이 찾아오면 안 대표는 웃으며 말한다. “매사에 진심을 다하면 안 되던 일도 다 됩니다.”

안 대표가 추천한 단골 맛집은 서울 서초동의 독일 맥주 전문점 ‘크롬바커하우스 양재점’이다. “편한 사람들과 저녁때 식사를 겸해 독일 맥주 한 잔 마실 때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그는 말했다. 역삼동 밀레코리아 본사에서 차로 10분 거리로 가까워 더 부담이 없다. 안 대표는 “언제 마셔도 맛있는 독일 맥주처럼 한결같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며 껄껄 웃었다. 그는 “안주를 시키기 전에 시원하게 맥주 한 잔 들이켜자”며 독일 맥주의 대명사 필스너를 주문했다.

상사맨에서 최장수 CEO로

밀레는 냉장고 세탁기 진공청소기 등을 판매하는 프리미엄 생활가전업체다. 이 업체의 47개 해외 법인을 맡은 법인장 중 안 대표는 ‘가장 튀는’ 인물이다. 1899년 설립된 밀레 역사상 처음 독일인이 아닌 사람으로 법인장이 됐다. 밀레는 통상 3~4년에 한 번 법인장을 바꾸지만 안 대표는 2005년 밀레코리아 설립 때부터 11년째 대표를 맡고 있다.

장수 비결이 뭐냐고 물었다. “나도 궁금해 본사에 물어보니 ‘미스터 안한테 맡기면 걱정할 일이 없다’고 하더라. 믿을 수 있는 존재라는 얘기인 것 같아서 내심 행복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안 대표 얼굴엔 생기가 가득했다. 50대 초반이라고 해도 믿겠다는 말에 “재미있게 일하느라 나이 먹는 걸 까먹었다”며 웃었다.

안 대표는 가전 전문가는 아니다. 1977년 국민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상사맨을 꿈꾸며 쌍용에 입사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당시만 해도 상사업계에서 삼성물산에 이어 2위였다.

안 대표는 입사하자마자 쌍용의 주력 제품인 시멘트 수출을 맡았다. 영업망도 제대로 없던 시절, 그는 시멘트를 배로 실어 수출하는 과정 하나하나를 직접 챙겼다.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아 1982년 비교적 이른 나이에 쿠웨이트지사장에 임명됐다. 안 대표는 “당시 쿠웨이트는 한국 사람이 지내기에 너무 열악했다”며 “한국인이라고 조롱당했고 ‘한국 것은 못 믿겠다’는 비아냥도 많았다”고 했다. 그래도 버텼다. 트레이드 마크인 ‘편안한 미소’를 끊임없이 보여줬다. 그러자 신뢰가 조금씩 쌓였고 업무도 한층 수월해졌다. 안 대표는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믿음을 주면 결국은 통한다는 깨달음을 얻은 게 그 시절의 가장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시멘트 파동도 척척 해결

쿠웨이트에 간 지 2년 만인 1984년 제2차 중동전이 터졌다. 쌍용은 쿠웨이트에서 철수했다. 한국으로 복귀한 그는 이후로도 시멘트사업을 맡았다. 1990년대 초 분당, 일산, 평촌 등 신도시가 한꺼번에 건설되면서 ‘시멘트 파동’이 일어났다. 시멘트를 수출하던 그는 중국 일본 멕시코 등 해외 각지에 줄을 대 기민하게 시멘트를 수입했다. 그 덕분에 회사는 돈을 많이 벌었다. “자나 깨나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시멘트를 저렴하게 들여올 수 있을까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회사에는 ‘시멘트는 미스터 안에게 맡겨라’라는 말이 돌았다.

이후 그는 미국(로스앤젤레스)에서 5년, 중동에서 또 2년을 일했다. 안 대표는 “밤에는 쪽잠 자며 외국어를 공부하고 낮에는 눈코 뜰 새 없이 일했다”고 말하며 맥주잔을 들었다. 고생한 시절을 회상하니 맥주가 더 씁쓸한 것 같다는 농담을 던졌다.

1997년 초 태국에 나갔다. 얼마 안 돼 외환위기가 터지자 회사가 어려워졌다. 안 대표는 살아남기 위해 태국 아시아시멘트와 제휴를 맺고 태국 시멘트 100만t을 동남아시아에 판매하는 계약을 성사시켰다. 안 대표는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서 먹고살 대형 프로젝트를 따낸 것”이라며 “당시 계약 사실은 한국경제신문에도 실렸다”고 말했다. 이 계약은 본지 1997년 10월22일자 13면에 보도됐다.

임원 승진 포기하고 가족 품으로

안 대표가 추천한 안주 슈바이네 학센이 나왔다. 독일 남부식 돼지족발 요리로 크롬바커하우스의 대표 먹거리다. 안 대표가 학센을 처음 맛본 건 1991년 2월 쌍용 시절 베를린 출장을 가서였다. 당시 거래처 사람이 “최고의 맛을 보여주겠다”며 맥주집으로 그를 데려갔다. 그는 “학센을 처음 베어 물었을 때의 감동은 아직 잊히지 않는다”며 “그후 학센이 머릿속을 맴돌아 독일에 출장 가면 무조건 학센을 시켜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바삭한 껍질에 감칠맛 나는 살코기가 알싸한 독일 맥주와 정말 잘 어울린다”고 소개했다.

2000년은 그에게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찾아온 해다. 10년 이상을 해외에 머물다 한국에 돌아온 그에게 회사는 “태국에 문제가 생겼는데 몇 년간 더 나가 일을 해결하면 임원을 시켜주겠다”고 제안했다. ‘떠돌이 생활’을 하느라 챙기지 못한 자녀(중학생, 고등학생)의 교육 문제가 가장 마음에 걸렸다. 그는 승진을 포기하고 그해 6월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돈은 가족과 먹고살 만큼 벌었고, 가정에 충실하고 싶었지요.”

수리기사도 모두 정직원 “신뢰가 중요”

2003년 여름, 안 대표는 쌍용 시절 옛 상사의 전화를 받았다. 쌍용 자회사이던 코미상사를 맡아보라는 내용이었다. 밀레와의 인연이 시작된 게 이때다. 코미상사는 당시 독일 밀레 제품을 수입해 판매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알지 못하는 분야에 뛰어드는 게 망설여졌지만 젊은 시절 쌓은 현장 노하우를 살려 회사를 잘 이끌어보고 싶다는 도전정신이 발동했다.

그가 코미상사를 맡아 조금씩 영업체계를 구축하고 있을 무렵, 모회사 쌍용이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코미상사는 매물로 나왔다. 파트너였던 독일 밀레가 2005년 코미상사를 인수했다. 이때 밀레는 인수조건으로 ‘미스터 안이 쌍용으로 돌아가면 매매 계약은 취소’라는 조항을 인수계약서에 넣었다. 그만큼 밀레는 안 대표를 믿었다.

밀레코리아의 출발을 진두지휘하게 된 그는 독일 본사로 향했다. “처음 마르쿠스 밀레 회장과 만났을 때 1~2년 안에 실적을 늘릴 수는 없지만, 꾸준히 오래갈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마르쿠스 밀레 회장은 ‘그게 바로 밀레의 전략’이라며 안 대표의 뜻을 지지해줬다. 베스트셀러보다는 스테디셀러가 되는, 한 번 구입하면 20년 이상 쓸 수 있는 ‘명품’으로 차별화하는 게 밀레의 전략이다.

안 대표는 “‘믿는 사람이 되자’는 인생 신조를 가전사업에도 반영했다”고 말했다. 제품은 밀레 본사에서 들여오지만 한국 시장의 경영과 전략은 모두 그의 몫이었다. 그는 밀레가 프리미엄 제품인 만큼 소비자가 믿고 살 수 있도록 판매사원과 수리기사를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그는 “판매사원과 수리기사는 소비자가 현장에서 마주하는 밀레코리아의 얼굴”이라며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근무체계를 갖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입 가전업체 중 직영 수리기사를 운영하는 곳은 밀레코리아가 유일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주름잡는 한국 시장에서 외국 가전업체는 견뎌내기 어렵다’는 업계 상식을 깨고 밀레코리아가 살아남은 비결이다. 밀레는 삼성전자 LG전자 임직원 사이에서 ‘가장 무서운 경쟁사’로 꼽힌다.

“진심을 다하고 있습니다. 한결같이 믿을 수 있는 ‘미스터 안’으로 계속 살아가는 게 제 목표입니다. 독일 맥주처럼 언제 찾아도 좋은 그런 존재말이죠.”

■ 삼성·LG 격전 속에서 살아남은 밀레코리아

밀레코리아는 고가의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등을 판매하는 117년 전통 독일 프리미엄 가전업체 밀레의 한국법인이다. 2005년 설립됐다.

밀레코리아가 설립될 때 독일의 한 경제지는 ‘삼성, LG의 나라인 한국 가전시장에서 독일 밀레가 성공할 수 있을까’라며 성공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하지만 밀레코리아는 “한국 시장에서 프리미엄 가전업체로 확고히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소폭이지만 꾸준히 늘고 있다. 밀레코리아 매출은 2013년 176억원에서 2014년 201억원, 작년에는 215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2013년과 2014년 20억원을 낸 데 이어 작년에는 29억원을 올랐다.

■ 안규문 대표

△1951년 광주 출생 △1970년 광주제일고 졸업 △1977년 국민대 경제학과 졸업 △1977년 쌍용 입사 △1997~2000년 쌍용 방콕지사장 △2003~2005년 코미상사 대표 △2005년 8월 밀레코리아 대표

 

원문보기 :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606169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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