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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발발 60돌] 학도의병 명예선양 사업회 박양호위원장/정치학과 동문(56년 졸업)

“학도병들 숭고한 위국충정… 이제라도 공적 인정해줘야”
“정부는 이제라도 공산주의를 무찌르고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하에 자발적으로 6·25전쟁에 참여한 학도병들의 공적을 인정해야 합니다.”

박양호(79·사진) 대한학도의병 명예선양 기념사업 추진위원장은 “전쟁이 끝난 뒤 60년이 지나도록 학도병을 알아주는 정부가 하나도 없었다”며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여든 전후의 학도병들을 이번 정부에서조차 위로해 주지 않는다면 후세에 큰 오점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위원장은 “미국은 군번 없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사람들을 위해 특별법을 만들어 대우를 해주고 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최근 군번 없이 군 항공기를 조종한 90살이 넘는 여성들을 국회의사당으로 초청해 금메달을 수여하기까지 했다”며 미국 사례를 들어 우리 정부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평남 양덕군 대륜면이 고향인 박 위원장은 북한에 공산정권이 들어선 뒤 지주와 지식계층 등에 대한 박해가 계속되자 동양중 4학년 때인 1950년초 ‘호림부대’라는 유격대에 들어가 활동했다.

6·25전쟁이 터지면서 북진한 해병대에 학도의용군으로 입대한 박 위원장은 12월초 북한 패잔병 소탕작전에 나섰다 양 무릎에 관통상을 입었다. 결국 박 위원장은 중공군 개입으로 원산항에서 부산으로 철수하는 국군을 따라 남하한 뒤 무릎 수술을 받고 상이용사가 돼 전역했다. 휴전으로 사회가 안정을 찾자 다시 공부를 시작한 박 위원장은 1956년 국민대 정치학과에 입학 후 졸업과 동시에 61년 심계원(현 감사원) 공채시험에 합격해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박 위원장은 1974년 대통령비서실 ‘특명 암행감사관’으로 임명돼 공직자와 사회지도층 비리를 적발하기도 했다. 그는 감사원 공보관과 제3국장, 제2국장을 거쳐 1991년 사무차장을 끝으로 30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사)한국경영·기술컨설턴트협회장을 역임했다.

지금도 통증으로 무릎을 압박붕대로 감싸고 다닐 정도로 후유증에 시달리는 박 위원장은 “젊은이들이 병역을 기피하는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학도병들은 훈련도 받지 않은 채 전투에 참여했고 죽으면서도 ‘대한민국 만세’를 불렀다”며 “정부가 안보의식 강화 등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가 혼란해 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전쟁의 실상과 학도병 이야기’를 출간한 박 위원장은 학도병들의 공적을 기릴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학도병들의 위국충정 사실을 교과서에 싣고, 첫 전투에 참여한 6월29일을 ‘학도의병의 날’로 지정해 달라고 정부에 건의했다”며 “후세의 귀감이 될 수 있도록 학도병을 배출한 349개 학교에 기념탑을 세우고, 학도병전사(戰史)도 출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원문보기 : http://www.segye.com/Articles/NEWS/SOCIETY/Article.asp?aid=20100622003405&subctg1=&subctg2=

출처 : 세계일보                 기사입력 : 2010.06.22 (화)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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