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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공 신익희선생 51주기 추도식 열려

우리대학의 초대 학장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 법무총장, 내무·외무총장 등을 두루 역임했고 광복 후에는 국회의장으로 의회민주주의의 초석을 세운 해공 신익희 선생 51주기 추도식이 5일(금) 오전 11시 서울 강북구 수유동 선생의 묘전에서 열렸다.

`해공 신익희선생 기념사업회'(이사장 유기정) 주관으로 열린 이날 추모식에는 정일권 국가보훈처 차장과 장영달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등 100여명의 외빈과 장언효 국민대 부총장, 각 처장, 노조위원장, 교직원, 총학생회, 졸업준비위원회 간부 등 내빈이 참석하였다. 
 
장언효 부총장은 추도사를 통해 “구국의 인재를 양성하고자 국민대를 설립하신 해공의 뜻을 학교 발전으로 보답하겠다”고 다짐하였다.

이 날 행사 중 ‘해공신익희 선생 기념사업회’는 국민대학교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김문환  총장에게 공로패를 수여하였다.


신익희 선생(1892. 6. 9 ~ 1956. 5. 5)은 경기 광주에서 출생하여 1908년 한성외국어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의 와세다(早稻田)대학 정경학부 졸업 후, 귀국하여 고향에 동명강습소(東明講習所)를 열었으며 서울 중동학교(中東學校)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7년 보성법률상업학교(普成法律商業學校) 교수가 되었다.

1919년 3 · 1운동 당시에는 해외와의 연락업무를 맡았으며, 그 해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조직을 위한 비밀회의를 갖고 임시의정원 회의를 열어 국호, 관제, 정부관원 및 임시헌장 등을 의결 선포하는 등 역사적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탄생에 기여하였다.

광복 후에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부위원장, 자유신문사 사장, 국민대학교 초대학장을 겸하다가 남조선과도입법의원 대의원에 피선되어 1947년 의장이 되었으며, 1948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되어 부의장이 되었고, 1949년 민주국민당을 결성하고 위원장에 취임하고, 1950년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다시 국회의장(연4회 역임)에 피선되었다.

1955년 민주국민당을 민주당으로 확대·발전시켜 대표 최고위원이 되었으며, 1956년 민주당 공천으로 대통령에 입후보하였으나 유세 중 서거하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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