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숲이 희망이다]17. 숲, 인간과 화합의 공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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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04-09-13 19:03] 교양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교정의 나무 한 그루를 임의로 선정하게 한 후, 3개월 동안 나무와 대화를 나눈 소감을 써내라는 과제를 주었다. 세상에 이런 과제가 어디 있느냐고 모두들 볼이 부었다. 그래서 물었다. 무엇이 문제냐고. “어떻게 나무하고 이야길 합니까”라는 합창이 들려왔다. 그래서 집에서 키우는 애완견하고는 어떻게 소통하느냐고 물었다. 말 못하는 동물일망정 관심과 애정으로 대하면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것처럼 나무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학기말에 제출한 학생들의 과제물을 받아보곤 놀랐다. 나무 앞에서 중얼거리는 모습을 이상하게 여기는 남들의 시선이 괴로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무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등·하교 길에 나무하고 남몰래 나누었던 대화에서 별다른 감흥없이 다니던 학교가 사랑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로 변하게 되었다는 내용까지 갖가지 사연들이 담겨 있었다. 또 생명이 없는 인형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며, 왜 진작부터 주변의 생명체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지 못했는지 자책의 소리도 담고 있었다. 나는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녹색생명체인 나무에서 자연·생명 친화본능을 일깨운 학생들의 소통에 감사했다. 나무와 숲의 존재가 사람들의 일상 행동에 변화를 초래시킨다는 점에 관심을 둔 학자들은 숲의 존재 여부와 인간의 사회성 발달, 또는 숲과 삶의 질에 대한 연구를 최근에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숲으로 둘러싸인 공공주택에 세 들어 사는 시카고 근교의 주민들이 숲이 없는 곳에 사는 사람보다 덜 호전적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는 연구 사례는 흥미롭다. 이 연구는 나무가 많은 곳에 사는 사람들이 나무가 없는 곳에 사는 사람들보다 잘 어울려 함께 살고 있다고 보고한다. 또 주변에 나무가 없는 곳에 사는 사람들은 찾아오는 방문객이 많지 않았고, 같은 거주지에 사는 사람들조차 서로 잘 알지 못했음을 밝히고 있다. 주변에 나무들이 많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의 이웃과 보다 잘 어울렸고, 서로 잘 뭉쳤으며, 강한 소속감을 가지고 있었다. 나무는 그래서 이웃간에 친구가 되도록 격려하며 보다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숲이 만들어주는 이웃 사이의 강한 유대감은 지역사회의 분위기를 보다 밝고 건강하게 만들어서, 범죄율을 낮추는 기능까지 수행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와 유사한 연구 결과는 국내에서도 최근에 발표되었다. 국립산림과학원이 서울지역 직장인 931명을 대상으로 사무실 주변 숲 존재 여부에 따라 직무 만족도와 스트레스, 이직 의사 등을 조사한 결과는 숲이 가까이 있는 곳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이 그렇지 않은 직장인보다 직무 만족도가 높고 스트레스와 이직 의사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수도권 지역 숲이 풍부한 9개교와 숲이 없는 10개교에 재학중인 1,425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학교 숲은 학생들의 정서, 자연환경에 대한 태도 및 애교심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숲이 울창한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집중력과 정서적 균형감이 숲이 없는 학교의 학생들보다 더 좋아져 인성발달에 도움을 주는 한편, 환경인식과 학교에 대한 소속감, 애교심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숲은 사회를 보다 안정시키며, 공공비용의 지출을 보다 적게 요구하는 셈이다. 이처럼 숲은 우리들이 지불해야 할 엄청난 규모의 사회적 비용을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인 방법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대체하고 있다. 환경심리학자인 로저 울리치 교수는 숲이 원기를 회복시키고, 활력을 증진시키며, 스트레스를 없애주는 살아있는 묘약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그는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우선 작업 중에 과실로 발생한 무시무시한 사고 장면을 영상으로 보여주어 인위적으로 스트레스를 갖게 만들었다. 그 후, 참가자를 여섯 그룹으로 나누어서, 각기 10분씩 다른 내용의 비디오테이프를 보여주었다. 물론 이 때 원기회복이나 스트레스의 정도를 혈압, 심장박동, 중앙신경조직으로 통제되는 이마 근육의 긴장도 측정 등으로 분석하였다. 여섯 종류의 비디오테이프 중, 두 종류의 비디오테이프는 숲이나 식생을 담은 것이고, 다른 네개의 테이프는 도심의 도로나 상가를 담은 것이었다. 생리학적 테스트와 병행하여 심리학적 테스트도 병행하였는데 도심경치를 본 사람보다 자연풍광 테이프를 본 사람들이 원기를 더 빨리 회복하고, 긴장과 피로를 더 쉽고 빠르게 풀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다. 병원의 입원 환자들 중에서 병실 창을 통해서 숲을 볼 수 있는 환자와 그렇지 못한 환자를 구분해 수술 뒤 회복률을 조사하였더니 숲을 볼 수 있는 환자가 그렇지 못한 환자보다 입원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았고 항생제에 대한 부작용도 적었으며, 의료진에 대한 불평불만이 적었다고 밝히고 있다. 지극히 제한적인 공간 속에서 갇혀 지내야만 하는 사람에게도 숲을 비롯한 녹지는 놀랄 만한 파급효과를 만들어낸다는 보고를 접하면, ‘숲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일까’라고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감방의 창 밖으로 녹지를 볼 수 있는 수감자와 그렇지 못한 수감자들의 질병 빈도를 연구한 결과는 교도소 내부의 건물만 보이는 감방에 수감된 죄수들보다 녹지가 보이는 감방에 수용된 죄수들이 병에 훨씬 덜 걸렸다고 밝히고 있다. 이 결과는 비록 육체는 감방에 수감되어 있지만 단순하게 시각적으로 녹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하나의 증거라 할 수 있다. 감금과 교화의 목적으로 폐쇄적이고 열악한 환경에서 갇혀 지낼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도 숲이나 녹지는 살아 있는 묘약임에 틀림없다. 숲의 존재가 인간의 사회성뿐만 아니라 심리나 정서에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사실을 인식하면, 반목과 불화의 폐해를 치유해줄 수단을 멀리서 찾고자 애쓸 필요는 없다. 바로 우리 주변의 숲이 화합과 상생의 묘약이기 때문이다. 〈전영우/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