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안보문제선 한국이 北을 움직일수 없다는 사실 증명” | |||||||
---|---|---|---|---|---|---|---|
[동아일보] 본보는 북한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초빙교수와 북한대학원대 류길재 교수의 긴급 대담을 통해 이번 사태를 진단하고 그 해법을 들어봤다. 두 전문가는 “대북 강경대응 목소리가 높아지겠지만 큰 효과는 없을 것”이라며 “북한의 의도적 도발에 휘둘리지 말고 국제 공조를 통해 차분히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 양쪽에서 연구 활동을 한 란코프 교수는 우리말과 영어를 섞어 가며 대담에 임했다.》
▽ 류 교수 =(북한이 대포동1호를 발사한) 1998년에는 북한 내부의 사정이 너무 어려워서 정권 안정이나 인민들의 단결을 꾀하고, 대외적으로는 자존심도 세우려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미국에 대한 시위로 봐야 한다. 미국과 양자회담을 하자는 요구다. 북한이 1998년과 달리 미국의 낮 시간대에 맞춰 새벽에 미사일을 발사한 것도 미국에 충격을 주려는 의도다. ▽ 란코프 = 동의한다. 북한의 내부 상황과는 큰 상관이 없다. 최근 경제 상황은 3∼4년 전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는 안정돼 있다. 다만 날짜까지 일부러 미국의 독립기념일(7월 4일)에 맞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 류 = 북한으로서는 잃을 것도 없는 상황이다. 경제 제재를 한다고 해도 실제로 취할 수 있는 조치가 많지 않다. 대외적 경제관계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효과를 보려면 한국과 중국이 동참해 줘야 하는데 기대하기 어렵다. ▽ 란코프 = 중국은 한반도의 분단 유지를 원하고 있다. 또 북한의 미사일이 자국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국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막기 위해 압력을 가한 것은 상징적인 제스처일 뿐이다. 헛된 위협(empty threat)이다. ▽ 류 = 남한 정부가 비료나 쌀의 추가 지원을 중단하는 등의 영향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개성공단 같은 사업을 중단하겠는가. 북한은 ‘위기 외교’로 남한에서 잃는 것과 미국에서 얻는 것의 두 가지 중에서 후자가 더 크다고 판단했다. ▽ 란코프 =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도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때처럼) 북한의 위기 외교가 통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도 효과적인 강경대응 방안이 많지는 않다. 또 제재라는 것은 그것이 가해졌을 때 궁핍해진 국민이 들고 일어나 정부에 압박을 가하면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민주주의적인 요소가 전혀 없는 나라다. 앞으로 100만 명이 더 굶어 죽어도 큰 영향은 없을 거다. 일반적인 제재 메커니즘은 북한에 통하지 않는다.
▽ 란코프 = 그럴 수도…. 다만 새로운 위협이 생기지는 않을 것 같다. 북한의 직접적인 공격에는 1960년대부터 이미 노출돼 왔던 것 아닌가. 부시 정부도 히스테릭하게 반응할 정도의 일은 아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응도 ‘이러시면 안 됩니다’ 식의 시끄러운 경고로 끝날 것이다. ▽ 류 = 맞다. 유엔 안보리가 지금까지 이런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이라크나 리비아에도 마찬가지였다. 실효성은 없을 거다. 다만 미국에서는 11월에 중간선거가 있으니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에 여러 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 북한은 미 공화당에 호재를 주고 있다. 실제로는 위협이 아닌데 위협으로 여겨지니 상대할 만하다고 보는 것이다. ▽ 란코프 = 어찌 보면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몇 개월 뒤, 적어도 1년 내에는 잊혀질 사건이다. 이것 자체로 동북아에 큰 긴장이나 변화를 가져온다고 보지는 않는다. ▽ 류 = 6자회담은 사실상 뇌사 상태다. 더는 재개될 모멘텀도 별로 없고 실효성도 없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6자회담에 대한 기대를 접고 미국과 이야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준 것이다. ▽ 란코프 = (엄지손가락을 밑으로 내리꽂는 제스처를 하며) 6자회담은 시작부터 죽은 채로 태어난 사산아였다. 처음부터 희망이 없었다. 지금 같은 국면에서 무슨 6자회담인가. 올해 안에는 힘들 것 같다.
▽ 란코프 = 최근 한국의 외교 방향을 보면 우려스럽다. 한미 동맹이 ‘흔들린다’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은 아예 ‘없어지고 있다’는 표현이 맞다. 한국은 이제 (고래 싸움 속의) 새우는 아니지만 고래처럼 크지도 않은 참치 정도다. 한반도 정세 속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한다. 이번 사건의 핵심이 북한의 ‘도발’이라면 최고의 대응책은 일단 무시한다고 할 정도로 차분하게 대응하는 것이다. ▽ 류 = 미사일 발사는 북-미 관계의 개선을 노린 시도니까 한미 동맹이 강하다고 해서 막아낼 수 있는 종류의 사건은 아니다. 그러나 한미 동맹의 이유가 꼭 북한 때문만은 아니다. 고래끼리 싸우면 참치도 다친다. 초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상황에서 어떻게 생존하고 미래를 그려낼 수 있을지가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가 남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미국이 잇속을 챙기려고 개입한다’는 식으로 보니까 자꾸 본질을 벗어나 엉뚱한 곳으로 빠지고 있다.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원리에 따라 미국과 동맹을 튼튼히 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다. ▽ 란코프 = 그렇다. 한국이 진짜 고민해야 할 문제는 북한 미사일이 아니라 중국의 위협적인 등장, 되살아나는 일본과 미국의 경제, 다시 고개를 드는 러시아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남느냐 하는 것이다. ▽ 류 = 답답한 것은 결정적인 안보적 상황에서 한국이 북한을 움직이지 못하는데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고수하는 것이다. 주변국과의 충돌도 이에 대한 기본 인식의 차이에서 시작된다. ▽ 란코프 = 한국 정부가 취해 온 지금까지의 대북 정책은 고쳐야 할 부분이 많다. 탈북자 관리나 북한 인권 문제, 조건 없는 퍼주기 원조 등은 비판받을 요소가 많다. 하지만 북한을 관리하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햇볕정책밖에 없다. 포용정책이 합리적이어서라기보다 유일하게 가능한 정책이기 때문이다. 전쟁 위험이나 미사일 발사 같은 도발의 증가 문제 때문에 전략적으로 다른 방법은 어렵다. ▽ 류 = 같은 생각이다.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같은 경협사업은 계속돼야 한다. 다만 추가 지원을 중단하는 식으로 명확한 정부 입장을 보여 줘야 한다. 곧 열릴 19차 장관급 회담도 열지 않을 수 있다는 자세로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에는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정부가 끌려가는 게 문제다. ▽ 란코프 =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기를 무서워하는 것 같다. 좋은 말만 하려고 하는데 북한에 해 줄 좋은 말이 별로 없다. 그것이 한국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에피소드다. 필요한 경고는 해야 한다. ▽ 류 = 냉정하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도, 미국도, 우리도 북한에 대해 뭔가 할 수 있는 행동의 폭이 좁다.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
정리=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초빙교수 △1963년 러시아 레닌그라드 출생 △1989년 러시아 레닌그라드국립대 한국역사학과 박사 △1992∼94년 중앙대 노어학과 객원교수 △1996년 호주국립대 한국학과 교수
△1959년 출생 △1984∼95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학사 석사 박사 △1987∼96년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1999년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2004년 북한연구학회 총무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