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손영준의 미디어 비평] 선정성 핑계로 신문 절독? / 손영준 (언론정보학부)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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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대통령과 국민을 연결하는 다리다. 다리는 이쪽과 저쪽을 연결한다. 막힌 곳을 뚫어 소통하는 통로이자 만남의 광장이다. 대통령은 언론을 통해 시민사회를 만나고, 사회는 언론을 통해 대통령을 만난다. 대통령과 언론은 서로 의존한다. 대통령이 국민을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는데 있어서 언론은 필수적이다. 행정부와 여당을 통해서도 가능하지만, 언론을 통한 직접 접촉이 오늘날 대통령제 하의 보편적인 통치 방식이다. 대통령에게 언론은 또 여론의 실체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권위주의 시절에는 통치 철학을 전파하는 수단이었지만,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언론은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듣고 세상사를 접하는 중요한 정보원이다. 대통령과 언론은 그러나 서로 필요한 만큼만 의존한다. 양측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필요에 따라서 협력이 이뤄지는 전략적 제휴관계다. 적어도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렇다. 언론 입장에서 보면 대통령은 중요한 취재원이다. 말 한마디, 몸짓 하나가 모두 뉴스가 된다. 언론은 그러나 공익적 목표와 상업적 목표가 있다. 둘 다 중요하다. 언론은 또 대통령(권력)을 견제하는 워치독(Watchdog)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관련된 기사일지라도, '필요에 따라' 재구성한다. 대통령과 언론은 서로를 필요로 하지만, 해피 엔딩을 기대하기 어렵다. 양자의 갈등과 긴장은 민주주의의 운영과 발전을 위해 필연적인 것이다. 갈등은 잘 드러나지 않지만, 한 번 터지면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대통령과 언론은 서로 '존재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은 언론에 보도된 뉴스를 잘 믿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언론에 보도된 뉴스를 취사선택하는 경향이 강했다. 팩트와 의견을 구분하려 했다. 정책 결정의 당사자로서 더 많은 정보를 가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판적인 생각이라도 마음에 차지 않으면 비록 집단적 여론일지라도 잘 수긍하지 않았다. 정치 권력의 생리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도 언론 보도에 늘 불만을 표시해왔다. 언론의 자유를 강조하며 '신문 없는 정부보다는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는 명언을 남겼던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도 정작 재임 중에는 언론 보도에 불편함을 많이 호소한 것으로 유명하다. 언론이 대통령의 힘과 권위에 도전했다는 이유다. 민주당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재임 중 뉴욕 지역의 권위지였던 '뉴욕 헤럴드 트리뷴' 구독을 중단한 적이 있다. 트리뷴의 보도가 공화당 입장을 두둔해 케네디 정부에 지나치게 비판적이었다며 불만을 가졌다고 한다. 청와대가 문화일보 구독을 중단했다고 한다. 그 신문 연재소설인 '강안남자'의 선정성이 지나치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번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논란이 됐던 대목이다. '강안남자'에 나타난 도착적인 성 묘사는 우리 사회의 상식을 벗어난 것이다. 판매 부수를 고려한 회사의 상업적 이해관계가 직접 반영된 결과이다. 그 소설은 신문윤리위원회 심의에서 그 동안 모두 27번이나 경고를 받았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최고의 권력기관인 청와대에서 신문 구독을 중단한 배경에는 권력과 언론의 본질적인 갈등 관계가 개입돼 있을 것으로 유추하지 않을 수 없다. 참여 정부는 2003년 2월 출범했다. 그 소설은 2002년 1월 연재를 시작했다. 서로의 존재를 안 것은 오래된 일이다. 또 그 신문은 참여 정부를 비판해 온 신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 매체를 보지 않는지는 알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도 신문과 방송을 취사선택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은 기억하자. 신문을 포함한 언론은 대통령과 사회를 연결하는 매개자이자 만남의 광장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는 이번 결정을 통해 그 신문 뉴스 제작자와 독자의 생각을 접할 통로를 차단했다. 대통령은 인의 장막에 둘러싸이게 마련이다. 정보의 흐름은 보좌진의 판단에 따라 취사선택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이 우리 사회와 소통할 수 있도록, 눈과 귀는 열어 두는 것이 좋다. 정보의 흐름이 차단되거나 왜곡된다면 소통을 막는 벽이 생긴다. 구독 중단은 취소돼야 한다. '강안남자'의 선정성은 제도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다.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쓸 수는 없는 것이다.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