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라는 사상…이연숙|소명출판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표준어를 사용하는(또는 표준어를 사용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왜 아니겠는가.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교양이 없는’ ‘조금 모자라는’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어떻게 해서든 ‘표준 국어’를 사용하기 위해 애쓰는 ‘촌놈’들의 무의식 속에는 ‘교양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완강하게 자리잡는다.
그렇다면 표준어는 누가 왜 정하는가. 왜 표준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고상하게 보이고, 사투리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저열하게 보이는가. 우리가 아무런 이의 없이 사용하는 ‘국어’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흔히 한국의 ‘국어’에는 민족 정신이 깃들어 있으며 ‘국어’의 보존과 순화야말로 민족 정신을 지키는 보루라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처음부터 그러했을까.
“‘국어’라는 표현은 그 자체는 ‘정치적 개념’이면서도 실은 그 정치성을 은폐하고 언어를 자명화하며 자연화하는 작용을 띠고 있다”는 도전적인 결론을 끌어내는 ‘국어라는 사상’은 일본에서 ‘국어’라는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포되는지를 방대한 실증적 자료를 동원하여 증명한다. 일본 근대 언어학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우에다 가즈토시(上田萬年)와 그의 충직한 제자 호시나 고이치(保科孝一)를 두 주인공으로 하여 일본의 ‘국어학’과 ‘국어 정책’의 이면을 파헤치고 있는 이 책은 자명한 것으로 간주되는 ‘국어’라는 말이 사실은 ‘대일본제국’의 욕망을 현실로 옮기는 강력한 무기였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저자는 “언어는 이것을 쓰는 인민에게 있어서는 흡사 그 혈액이 육체상의 동포를 나타냄과 같이 정신상의 동포를 나타내는 것으로, 그것을 일본 국어에 비유해서 말하면 일본어는 일본인의 정신적 혈액이라 할 수 있다”는 우에다의 선언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이 일본인의 ‘정신적 혈액’이야말로 일본의 ‘국체(國體)’를 유지하는 근간이며 일본인을 가장 강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저자에 따르면 우에다 이전에는 ‘국어’라는 이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국어’라는 이념과 제도는 일본이 근대 국가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창안해 낸 하나의 작품이자 픽션이었다.
물론 일본만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한국을 포함하여 근대 국민 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거의 모든 국가들이 자신의 ‘국어’에 국민 통합의 이념을 새겨넣었고, 이를 통해 국민의 ‘평준화’와 ‘동질화’ 프로젝트를 실천에 옮겼다. 우에다와 그의 제자 호시나가 하나의 모델로 삼았던 독일의 예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예컨대, 야콥 그림(Jacob Grimm)은 “독일이 진정한 통일체가 되기 위해서는 정치에도, 경제에도, 종교에도 도움을 청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서 독일어라는 언어가 국민적 통합의 상징이 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말했다. 독일이란 무엇보다도 ‘언어 민족(Sprachnation)’으로서밖에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국민 의식의 형성을 위해 창안된 ‘국어’는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내부를 통일하고 급기야 외부(=식민지)로 향한다. ‘언어와 민족의 정신적 유기적 결합’을 강조함으로써 ‘국민’이라는 신화를 작성한 근대 국민국가 일본은 자신의 ‘국어’를 무기로 하여 제국 건설에 나선다. 근대 국민국가는 필연적으로 제국을 욕망한다. 그리하여 일본의 ‘국어’는 ‘제국의 국어’를 욕망한다. ‘대일본제국’이 식민지를 확장함에 따라 일본의 ‘국어’는 ‘대동아공영권어’를 지향한다. 자연스러운 이치다!
우에다는 ‘국어’에 의한 ‘국민’의 동질화·획일화가 근대 국가의 존립에 있어서 필요불가결한 과제라는 것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국어’의 대외 진출을 위해서는 표준어 제정과 표기법의 통일 등 ‘국어 개혁’이 불가피했다. ‘대일본제국’은 ‘새로운 영토’, 곧 조선과 대만을 비롯한 식민지에 ‘국어’를 전파하기 위해 부심한다. 국어 정책을 학문적으로 총괄한 사람이 바로 우에다 가즈토시의 충직한 제자 호시나 고이치였다.
반대가 없진 않았지만 호시나 고이치가 주도한 ‘국어 정책’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식민지 조선에서도 예외 없이 관통한다. 즉, 조선에서도 ‘대일본제국’의 ‘국어’는 유감없이 그 힘을 발휘하여 ‘내지인’은 ‘국어를 상용하는 자’, ‘조선인’은 ‘국어를 상용하지 않는 자’로 법적으로 규정되었고, 그 결과 조선의 독자적인 민족성은 완전히 부정되기에 이른다. 제국을 욕망하는 국가의 지원을 등에 업은 ‘국어’는 이렇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국어라는 사상’을 읽으면서 주시경을 비롯하여 한국의 ‘국어학자’들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한국의 ‘국어’가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는 강력한 무기 중 하나였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우리의 ‘국어’란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한국이라는 국가의 ‘국어’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 안에 웅크리고 있는 이념의 실체는 어떠한지, 우리는 진지하고도 성실하게 묻고 또 대답해야 한다. 이 책이 한국의 ‘국어’와 ‘국어학계’에 몰고 올 파고는 예사롭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은 필자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정선태|국민대 교수·국문학〉
원문보기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611171650081&code=90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