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시론] 정쟁의 희생양 헌법재판소 / 김동훈 (법) 교수

〈김동훈/국민대교수·법학〉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성과로 볼 수 있는 87년의 헌법개정은 헌법재판 제도를 도입했고, 이에 따라 설치된 헌법재판소는 지난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우리 사회에 헌법적 가치와 사고를 뿌리내리는 데 많은 기여를 해왔다. <<격동하는 시대의 첨예한 이익과 가치의 충돌을 헌법적 질서 안에서 수용하면서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헌법재판제도의 성공적인 정착은 많은 나라들에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극단 치닫는 정치권에 실망-

이러한 헌법재판소 수장의 임명을 둘러싸고 100여일이나 정치적 논란만 증폭되어 오다가 돌연 대통령의 지명철회라는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러한 사태로 인해 무엇보다 상처를 입은 것은 대법원과 더불어 최고의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의 위상이다. 석달 이상 대행체제로 운영되다 끝내 소장후보가 헌법재판소를 떠나게 된 결과는 권위를 존중받아야 할 최고사법기관이 정쟁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또한 임기를 1년여 남겨두고 있는 대통령의 리더십도 결정적인 상처를 입었다. 대통령 스스로 ‘굴복’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이니 향후 대통령이 권위를 가지고 국정을 수행해 나갈 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지명철회까지 정국을 주도해온 야당도 정쟁만을 일삼는 무책임한 집단이라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정치권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표출하고 자연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전효숙 후보자도 개인적으로는 가장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일 것이다.

처음에 헌법과 헌법재판소법에 “헌법재판소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임명한다”라는 조항의 ‘재판관 중에서’란 문구의 해석을 둘러싸고 시작된 법률논쟁이 이러한 정치적 갈등으로 증폭된 데에는 당사자들의 책임이 크다. 헌법재판소장은 대통령이 임명권을 갖지만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한 것은 그만큼 여론의 소리에 귀기울여 신중한 인사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후보자가 인정받는 여성 법조인이고 진보적인 소수의견 등을 내온 점 등 평가할 만한 부분도 있고, 이른바 ‘코드인사’ 등의 비판이 과장된 것이라고는 할지라도, 과연 최고사법기관의 수장에 걸맞은 적절한 인사였는가에 대해 의문이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울러 헌법재판소장의 임명이라는 중대한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 있어 이러한 절차적 하자가 문제되었다는 것은 그 보좌진들과 전후보자 본인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도 입법기관으로서 그 역할을 방기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국민들은 후보자가 소장직에 걸맞은 인물인지를 놓고 그녀가 그간 판결 등을 통해 밝혀온 성향 등을 기초로 국회청문회에서 치열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기를 원했다. 그러나 국회는 민의의 대변자로서 이에 대해 실질적인 검토와 판단을 외면했다. 절차적인 법률적 하자를 문제삼으면서 끝내 정치적 타협에 이르지 못하고 단상점거 등 극한적인 대응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로써 국민들에게 또 한번 우리의 정치문화에 대한 깊은 불신을 심어주었다.

-사법기관의 권위회복 과제-

이번 사태가 남긴 상처를 어떻게 수습해 나가야 할지는 어려운 문제이다. 우선 급한 것은 속히 후임 재판소장을 임명하여 현재의 대행체제라는 불안정한 상태를 끝내는 것이다. 대통령은 널리 여론을 수렴하여 국회에서 흔쾌히 동의를 받을 수 있는 인물을 지명해야 할 것이다. 정치권도 더 이상 사법기관을 정치적 다툼의 대상물로 삼아서는 안된다. 대통령이나 국회처럼 선출직이 아닌 사법기관의 권위는 정치적 집단들과 국민들이 함께 세워나가야 한다. 사법부의 권위는 우리 사회의 갈등 해결의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이 취임식때 대법원장 앞에서 선서하는 행위의 의미를 깊이 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아무쪼록 이번 아픔을 통해 헌법재판소가 더욱 성숙해지고 우리 사회의 헌법적 가치의 수호자로서 굳건히 뿌리내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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