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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탈당 않는 첫 문민 대통령 / 조중빈 (정외) 교수

노태우 대통령은 '꿈에도 잊을 수 없는 3당 야합'을 통해서 만든 민자당을 임기 말에 탈당했다. 김영삼 대통령도 자신이 주도해서 만든 신한국당을 임기 석 달여 남기고 탈당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를 9개월여나 남기고 일찌감치 새천년민주당을 떠나야만 했다. 이 법칙에 의하면 노무현 대통령도 탈당을 해야 한다. 임기는 아직 1년 하고도 두 달 이상이 남아 있는데 말이다.

솔직히 노무현 대통령이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대통령의 '임기'와 '탈당'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보며 대통령의 진의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대통령 특유의 어법, 즉 자신의 일을 남의 일처럼 말하는 어투로 인해 매우 혼란스러웠다. '하야'를 하겠다는 이야기인지 '하야'하지 않도록 도와달라는 이야기인지가 분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언론은 용케도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하고 '하야'의 시나리오를 쓰고 '탈당'을 기정사실로 만들었다.

그러자 대통령이 하루 만에 직설법으로 돌아서서 '임기'는 마치겠고, '탈당'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확실하게 표명했다. 그리고 "… 탈당 압박 속에서 마침내 당적을 포기한 역대 세 분 대통령의 일이 남의 일 같지 않아서…"라는 심경을 밝히는 편지를 당원에게 보냈다. 거기에서 자신이 열린우리당으로부터도 차별당하는 것은 "1987년 이후 반복되고 있는 지역구도와 결합된 여소야대의 대결적 구도" 때문이며 이런 구조 아래에서는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실정을 87년 이래로 물려받은 구조 탓으로 돌리는 것을 보며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는 격이지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말로만 지역구도를 타파한다고 했지 기회만 있으면 지역으로 '재미'보려 하고, 사사건건 갈등과 대결 국면으로 치닫게 만든 것이 누구인가? 그것도 인기가 아직 있을 때, 힘이 아직 있을 때부터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

지나간 일로 왈가왈부할 시간이 없다. 필자는 노무현 대통령이 '탈당'하지 않기로 한 결심의 진정성을 믿고 싶다. 그 결심이 흔들리지 않고 열매를 맺어 수석당원으로서 대통령직을 마치는 최초의 문민대통령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려면 대통령은 먼저 스스로를 도와야 한다. 다른 전략적 사고는 아예 포기하고 지금부터라도 '여소야대'를 체질화해야 한다. 그것이 비록 지역구도에 의해서 초래된 것이라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인위적으로, 제도적으로 지역구도를 타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남 보고 '도로 지역당'이라고 비난도 하지 말아야 한다. '지역'을 이야기하는 사람마다 위선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았는가? 단 하나의 길이 있다면 말 없이 신뢰를 쌓음으로써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움직이는 일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현실을 현실로 인정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타협하는 것이 비록 '굴복'에 가깝더라도 타협해야 한다. 빈대에 물리는 것이 낫지 집에 불을 질러서는 안 된다. 국민이 무지한 것 같아도 누가 '좋은 사람인지' 누가 '나쁜 사람인지' 다 안다.

열린우리당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면 안 된다. 지금 열린우리당이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대통령 때문만은 아니다. 대통령만 소외시킨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혼할 때 하더라도 합법적으로 당이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하라. 그래서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지금처럼 고집불통인 대통령을 견제하려면 여당만으로 안 된다. 여당과 야당이 합심해서 국회라는 기관으로 대통령을 견제하는 길밖에 없다. 어떻게 하느냐고? 그사이 벌써 한 건 하지 않았는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강경 대치 국면 속에서 숨 못 쉬고 있는 민생법안을 하나, 둘씩 꺼내 합의를 해나가 보라. 국민이 얼마나 마음 편해 하겠는가. 이렇게 야당과 타협하고 대화하면서도 당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대통령과 그 추종자들을 견제할 수 있다면 대통령을 줄줄이 '탈당'시키는 한국 민주주의의 고약한 법칙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여당은 그럴 권리가 있다. 그렇게 할 수 있느냐는, 리더십의 문제다.

조중빈 국민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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