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김형준 정치비평] 탐욕을 향한 야만의 탈당 / (정치대학원)교수

그제 열린우리당 의원 23명이 집단 탈당해서 ‘국민통합신당’ 창당 추진을 선언했다.‘백년정당’을 표방했던 우리당은 창당 3년 3개월 만에 사실상 분당되면서 원내 제2당으로 추락했다.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한다.’고 했는데 탈당으로 흥한 정당이 결국 탈당으로 망하는 형국이 펼쳐지고 있다. 집단 탈당한 사람들은 “열린우리당이 국민의 외면을 받게 된 것에 책임을 통감하며 기득권을 선도적으로 포기함으로써 국민통합신당의 밀알이 되고자 한다.”고 했다.

아무리 정치판에 ‘후안무치’(厚顔無恥)와 ‘적반하장’(賊反荷杖)이 판을 친다 하더라도 이들의 집단 탈당은 정치 도의상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우리당의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을 지낸 사람들이 집단 탈당을 주도했는데 이것은 자기 부정을 넘어서 국민을 능멸하고 조롱하는 것이다. 탈당직전까지 원내 활동과 정책 수립의 총괄책임을 맡으면서 중산층과 서민을 고통의 나락으로 몰아넣었던 당사자들이 어떻게 감히 “중산층과 서민이 잘사는 미래 선진 한국을 건설하기 위해 탈당한다.”는 궤변을 늘어놓을 수 있는가?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법이다. 근본이 없고 최소한의 양심마저 저버린 사람들이 어떻게 국민을 설득할 수 있겠는가?

탐욕을 향한 야만의 탈당은 분명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들이 진정 국민을 두려워하고 책임을 통감했다면 탈당이 아니라 정계를 은퇴하는 진정성을 보였어야 옳다. 문제는 왜 3김정치 이후에도 이런 황당하고 야만적이며 염치없는 탈당과 분당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일까?

직접적인 원인이야 차기 총선에서 살아남겠다는 처절한 몸부림일 것이다. 국민들로부터 버림받고 있는 우리당 간판으로는 도저히 재선될 수 없다는 판단이 작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 정치에는 ‘탈당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정당일체감이 지극히 낮은 것이 한 원인이다. 정당일체감이란 유권자가 어떤 정당을 대상으로 상당한 기간 내면적으로 간직하는 애착심 또는 귀속의식이다. 이러한 정당일체감은 실제 선거운동과 투표를 할 때 특정 정당과 후보를 선택하고 지지하는 준거 틀이 된다.

따라서, 국민들의 정당일체감이 높으면 기존 정당을 버리고 뛰쳐나가는 것은 사실상 자살 행위이다. 탈당하는 순간 유권자들부터 지지 준거 틀을 박탈당해 여지없이 버림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당간에 차별성이 희박하며 이합집산이 빈번하게 발생했던 척박한 한국 정치상황에서는 국민들의 정당일체감이 지극히 낮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17대 총선직후 한국선거학회가 실시한 국민여론조사에서도 국민들의 67.8%가 자신의 의견을 잘 대변해주는 정당이 ‘없다.’고 응답했다. 국민들의 정당일체감이 낮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기존 정당을 박차고 나와 딴 살림을 차리는 것이다.

정당에 대한 기존의 잘못된 국고보조금 제도도 또 다른 원인이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정당간의 공정성을 기한다는 취지에서 전체 국고보조금의 절반을 원내교섭 단체를 이룬 정당에 균등하게 배분하도록 되어 있다.23석을 가진 정당이나 127석을 가진 정당이나 동일하게 배분하는 것이다.

원내 교섭단체를 만들면 최소한의 정당 운영자금이 확보되는 상황에서는 국민의 혈세가 비뚤어진 의원들이 결탁해서 탈당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정치는 개만도 못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공자님의 말씀을 믿고 외면하면 외면할수록 단물만 빨아 먹고 버리는 기회주의적인 정치인이 판을 치게 된다.

정당을 살리고 정치를 바르게 하기 위해서 이제 국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정치를 제대로 봐야 한다. 누가 국민의 피를 빨아 먹고 사는 ‘거머리 정치인’인지, 누가 국민과 미래를 위해 희생하는 ‘참 정치인’인지 가려내서 심판해야 할 것이다.

국민대 정치대학원 부원장

원본 :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70208030007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