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시론] 비상구 없는 북한 엘리트 / 안드레이 란코프(교양과정부)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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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공산권 나라들을 보면 어디에나 눈에 띄는 현상이 있다. 대체로 공산주의 시대에 간부로 지냈던 사람들이 개방 후에도 여전히 실권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만 봐도 옐친 초대 대통령은 원래 당 중앙 정치위원이었으며 현 푸틴 대통령은 소련 정보 기관인 KGB 출신이다. 예외가 있긴 하지만 구소련에서 등장한 신흥 부자들은 압도적으로 1970·80년대에 공산당 간부나 정보 기관 직원 아니면 국영 회사의 고급 경영자를 지냈다. 다른 공산권 국가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있다. 이처럼 간부 출신들이 권력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공산주의 말기에 조성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그들에게 도전할 수 있는 사회 세력은 없었다. 그들은 경험도 있었고 교육도 있었다. 게다가 ‘국가 소유’로 돼 있는 것을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들은 혼란한 사회 분위기를 타고 그동안 경영·통제했던 국가 소유 기업이나 재산을 자신들 소유로 변화시키다가 하루아침에 공산당 간부에서 민주주의를 칭찬하는 정치인이나 자본주의를 찬양하는 사업가들이 되어 버렸다. 물론 기회주의자들이 국민들의 노력과 고생으로 창조된 ‘국가 소유’를 훔치는 것에 박수치기는 어렵다. 그러나 소련의 간부들이 자본가로 바뀔 기회가 있었다는 것은 공산주의체제의 ‘평화로운 몰락’에 기여한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 그 사람들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바뀌면 자기 이익을 보장 받을 뿐 아니라 더 잘 살 수 있다는 걸 간파했다. 그래서 국민들의 개혁운동을 힘으로 압박하지도 않았고 민주화도 인정했다. 그러면 북한 간부들은 왜 그들을 모방하지 않을까? 북한 간부들의 사정이 소련이나 중국 공산당 간부와 본질적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도 자본주의체제로 바뀐다면 국가가 무너져서 남한과의 흡수 통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북한 간부 계층들은 동유럽의 경우처럼 자기 재산과 실권을 유지할 기회가 없을 것 같다. 흡수 통일 이후 북한에서 시장경제를 건설할 세력은 하루아침에 자칭 ‘민주주의자’가 된 노동당 간부들이 아니라 남한의 삼성그룹이나 현대그룹의 경영자들이다. 북한 간부들이 자기 통제하에 있는 국영 공장들을 사유화한다고 해도 이러한 공장의 시설은 1950년대의 수준이므로 정상적인 공장이라고 할 수 없다. 그저 기술역사박물관 수준일 것이다. 게다가 간부 출신 북한 사업가들은 자본과 경험 그리고 기술 지식이 너무 없어서 이북으로 진출할 남한 기업과 경쟁할 희망도 없다. 또 북한 간부들, 특히 보위부와 같은 특무 기관 간부들은 개인의 신변문제까지 걱정해야 한다. 소련의 경우 공산주의가 무너졌을 때 정치범의 숫자는 수천명에 불과했다. 비폭력적 활동을 했던 정치범으로서 사형 선고를 받는다는 것은 1953년 스탈린 사망 이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소련 인구의 10%에 불과할 만큼 작은 북한에서는 정치범의 숫자가 15만명에 달하고 정치범을 사형하는 것도 예외적인 일이 아니다. 체제가 무너지면 수많은 정치범들이나 그들의 친족, 친구들이 과거 청산을 요구하고 한국사에서 전례가 없는 독재에 대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북한 간부들은 자신들에게 비상구가 없다고 판단한다. 그들은 북한의 개혁이 체제 붕괴, 그리고 흡수 통일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경우에 그들은 자본가로 변신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자유마저 박탈당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의 체제가 얼마나 효율성이 없는지 알고 있지만 개혁이나 자유화를 피하고 어떻게 해서든 자기들 체제를 끝까지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북한 간부들의 이러한 우려를 고려하지 않으면 북한에 대한 올바른 정책을 시행할 수 없다. 원본보기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3/19/2007031900990.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