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시론] 내가 6자회담에 관심 없는 이유 / 안드레이 란코프(교양과정부) 교수

신문이나 잡지를 보면 북한 관계 소식은 거의 모두 6자회담과 관련 있는 것 같은 인상이다. 이런 조건하에서 신문 독자들이 북한의 미래, 한반도의 장래를 결정하는 것은 곧 6자회담이라고 믿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역사학자의 눈으로 보면 6자회담과 같은 국제외교를 중심으로 하는 역사관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외교 협상이나 국제 조약이 역사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역사를 결정하는 힘으로서 사회의 내재적인 변화나 경제의 호황과 침체는 어떤 외교 활동이나 국제 조약보다 더 중요하다.

우리는 6자회담을 비롯한 외교 활동의 중요성을 이 역사적인 배경에 비추어 바라보아야 한다. 누구나 미래를 알 수 없지만 필자 생각에는 지금 언론의 관심을 많이 끄는 북핵 문제 협상은 100년 후에 나올 국사 교과서에서 각주(脚註)에 불과할 것 같다.

그렇다면 2107년에 역사를 서술할 사람들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할 현상은 무엇일까? 아마도 교과서에는 북한 지도부 내에서 벌이는 다툼 등 우리가 아직 알 수 없는 사실에 대한 언급이 많을 것 같다. 그러나 수많은 경우에 미래를 결정하는 현상은 (지금도 누구나 쉽게 볼 수 있지만) 국제 외교보다 드라마틱하게 보이지 않아서 언론에 의해서 무시되는 편이다.

옛날 신문에서 실증적인 사례들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면 1960~1970년대 국제 언론이 제일 많이 다루었던 문제는 무엇일까? 주로 제3세계에서 벌인 미·소 경쟁 그리고 전략무기제한협상(SALT)이었다. 당시의 잡지나 신문을 보면 소련의 대(對)아프리카 정책 변화나 장거리 폭격기 수의 제한과 같은 문제를 너무 자세하게 다루는 기사가 참 많았다.

이런 접근을 이해는 할 수 있다. 1960~1970년대에는 미·소 대립이 인류 전부를 소멸시킬 수 있는 핵 전쟁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잘 알 수 있듯이 제3차 대전의 위협이 없어진 이유는 외교 활동이 아니고 세계의 역사를 변경시킨 소련 붕괴였다. 이 붕괴 때문에 핵군비 경쟁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됐다.

그러나 소련 붕괴를 초래한 요소는 1970년대의 언론이 많이 보도했던 것이 아니었다. 소련 사회의 내재적인 위기를 보여주는 현상은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실망, 혼란해지는 경제 경영, 서양 선진국에 대한 지식의 확대 등이었다. 1970년대의 언론은 이 중요한 과정을 외교나 제3세계에서 벌이는 경쟁만큼 많이 보도하지 않았다.

북한에 대한 보도를 보면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북핵 문제는 협상에 의해서는 해결하기 어렵지만 북한 사회의 본질이 바뀐다면 북핵의 위협도 냉전 시대의 수많은 위협처럼 순간적으로 없어져 버릴 수도 있다. 1970년대 미·소 핵군비 경쟁의 결과를 결정한 것은 미국 대통령과 소련 총비서가 채택한 여러 조약이 아니고 소련의 국내적인 변화였던 것처럼.

그래서 우리는 북한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 외교중심주의라는 경향을 극복하는 게 좋다. 북한의 동향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평양의 핵 외교보다 북한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내부적인 변화를 더 주목해야 한다.

긴 안목으로 보면 북한에서 활기찬 장마당 등장이나 남한 가요의 확산을 반대하는 투쟁의 실패와 같은 내부적인 현상은 별로 드라마틱하게 보이지 않지만 정상회담이나 6자회담보다 훨씬 큰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물론 외교도 무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북한의 운명을 결정하는 장소는 외교관들이 만나는 고급호텔이 아니라는 것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북한의 미래는 바로 북한 서민들이 사는 집에서, 그들이 다니는 장마당이나 시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원문보기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7/10/2007071001115.html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