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동대문운동장 철거 논쟁’을 보며 / 이경훈 (건축) 교수

도시공간의 공공적 운용 담당하는 건축가들의 의견은 무시된 채 시민단체에 의해서만 담론 지배 역사적 기억을 살린 도시공간의 효율적 배치를 개발욕으로 오도해선 안돼

동대문운동장 철거와 디자인플라자를 건설하려는 서울시의 계획을 둘러싸고 개발과 근대 문화재의 보존이라는 해묵은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문화재의 보존과 개발에 대한 끝이 보이지 않는 논쟁의 반복은 도시를 바라보는 건축가의 시선과 관점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도시공간의 공공적 재편을 위해 역사적 기억을 보존하고 있는 문화 유적을 어디까지 개발할 수 있는가는 문화적·도덕적 정당성 이전에 새로운 도시공간의 창조를 책임지고 있는 건축가라는 직업인으로서의 한계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도시의 보존과 개발 방향에 대한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은 대개 두 개의 유형으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런던과 로마, 파리 등 역사적 건축물의 존재가 도시의 인상을 만들어내는 경우다. 이 도시들은 건축물을 통한 역사적 기억의 보존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암묵적이고도 사회적인 합의가 전문가 집단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인식되고 있는 경우다. 반면, 두 번째 부류로는 뉴욕이나 도쿄 등 새로운 경제 중심지로 떠오른 국제적 도시들로서 좀더 경제적인 필요에 의해 도시공간의 효율적이고 전략적 재편성의 필요성이 존재하는 경우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이를 주도하는 전문가들의 합리적 의견이 대중들에게 효율적으로 전달되고 합의에 이르는 구조로 정착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와 다를 것이다. 두 경우 모두 공통적으로 도시의 공간적 인상을 결정짓는 것은 어느 개인 또는 집단의 이익이나 독단적 견해가 아니다. 도시공간의 공공적 운용에 대한 책임을 짊어진 전문가, 즉 건축가의 견해가 합리적 의사로 인정받으며, 그것이 도시공간을 운용하는 보편적인 합의로 존중받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작금의 동대문운동장의 철거와 반대를 둘러싼 논쟁을 보며 착잡함을 금할 수 없는 것은 도시공간의 공공적 운용을 담당하는 건축가들의 의견은 무시된 채 전문가적 이해가 부족하거나 사회적 책임이 없는 일부 이익집단이나 시민단체에 의해서만 모든 담론이 지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동대문운동장은 일제가 의도적으로 성벽을 헐고 왕세자 결혼을 계기로 다소 불온한 식민통치의 의미로 조성되었고, 그 후 수차례에 걸친 증축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이의 보존은 서울의 성벽 복원이라는 다른 역사적 가치와 충돌하게 되며 이때의 선택은 공공의 거시적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정책적, 전문가적 합의를 이룬 것이어야 한다.

한편, 풍물시장 상인이나 노점상 등 서민들의 경제적 권리는 그들 당사자에게 있어서는 일차적으로 생존권이 걸린 당면한 문제이지만 동대문운동장을 삶터로 그대로 유지하는 것만이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체육 관계자를 비롯한 시민 단체들이 요구하는 동대문운동장 보존도 단지 현대적으로 단장된 대체 운동장을 요구하는 협상용 대상이 되는 것이거나 맹목적·감성적인 역사 문화인식에서 비롯한 것이라면 역시 경계해야 할 일이다. 오히려 이러한 이해 관계자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고 이를 공간적으로 효율적으로 배분된 도시공간으로 운용하는 것이야말로 전문가 집단인 건축가의 임무가 된다. 실제로 외국의 건축가이기는 하지만 서울이라는 역사도시가 가진 공간적 딜레마, 즉 역사적 기억의 보존과 도시공간의 효율적 재편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자하 하디드의 설계안이야말로, 운동장 이전과 서민 생계대책 마련을 전제로 실행된다면 새로운 서울의 도시적 인상을 만들게 될 획기적 제안이 될 것이다.

도시는 개별적 기억을 만들고 저장하는 집합체이면서 동시에 도시가 그것을 위해 집합적 공공성을 확보함으로써 개인의 이러한 기억을 좀더 행복하고 의미있는 것으로 만들어 준다. 도시의 성능을 개선하고 다수의 공적 이익에 부합하는 전문가에 의한 도시공간의 효율적 재편을 단지 개발욕과 역사성의 파괴라는 주장으로 오도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원문보기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id=etc&sid1=110&mode=LPOD&oid=028&aid=0000217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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