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시론] '사람냄새' 나야 소통할수 있다 / 이호선(법)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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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에서 말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언어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의사전달 과정에서 언어의 비율은 45%에 그치는 반면 비언어적 요소인 자세,몸짓,얼굴표정 등이 55%에 달한다고 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언어적 요인 중에서도 음색과 음조 등을 뺀 말의 내용은 겨우 7%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때론 숙맥처럼 긁적거리며 머쓱하게 짓는 미소 하나가 그 어떤 달변보다도 상대방의 이해와 관용을 이끌어내는 이유가 여기 있다. 위의 수치가 보여주는 사실은 자명하다. 공감하지 않는 한 인간은 논리와 이성으로 설득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취임한 지 100일째인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부족을 토로하고,여당은 청와대와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정치인들의 입각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 여당이 지금의 낮은 지지율로 대변되는 민심의 이반 내지 무관심을 단순한 소통 부족 정도로 여긴다면 전임 정권이 국정홍보처를 통해 일방적으로 제 자랑과 변명만 일삼다가 국민들의 염증만 키웠던 전철을 답습하게 될 것이다. 현 정권에서는 '사람냄새'를 맡기 어려워 보인다. 탁월한 생존력과 성공주의만으로는 설득의 기회를 독점할지는 몰라도 설득해 낼 수는 없다. 정권 초기에 말도 많고 탈도 많게 단행된 인사는 겉으론 종지부를 찍었는지 모르지만 그들이 서민과 공감하며 울거나 고민할 것 같지 않아 보인다는 관념이 국민의 정서 속에 자리잡고 있는 한 문제가 터질 때마다 그것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 정부와 여당이 정말 국민과의 제대로 된 소통을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대다수 국민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이런 잠재적 저항심리 기제를 누그러뜨리는 일에 힘써야 한다. 중국 쓰촨성의 대지진 참사 후 바로 현장을 찾은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그곳에서 보여줬던 눈물과 진정 어린 애정이 슬픔에 젖은 중국인에게 큰 감동과 위로를 주었던 사실을 교훈으로 새겨야 한다. 소통의 전제는 공감과 함께 공유에 있다. 공유란 대척점에 서 있는 듯이 보이는 전혀 무관하거나 상충되는 개념들의 공통분모를 찾아 서로 윈윈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찾는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위해 촛불 집회와 시위에 참가하는 학생들,그리고 우리 경제의 활로가 될 수 있는 한·미 FTA가 자칫 무산될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이들은 겉으로 보기엔 긴장과 대립관계에 있는 것 같지만 이들의 공통된 관심을 한데 묶으면 '공동체의 생존과 번영'이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광우병 논란과 시위에 대한 정부의 담화 및 그 이후에 이뤄진 일련의 행태는 미숙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고 정체성과 배후를 따지기 전에 먼저 '공공선(公共善)에 관한 우려와 관심이 많은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는 진심 어린 메시지가 선행돼야 한다. 가령 하루 평균 1.8명 꼴로 청소년들이 자살하고 한 해 자살자가 1만명이 넘는 이땅의 비극적 사회현실의 원인이 먹고 사는 문제와 무관하지 않으며,그 해결책 가운데 하나가 한·미 FTA로 상징되는 자유교역이라는 점이 설명될 때 정서적 대립관계는 훨씬 더 쉽게 이성적 대화로 유도될 것이다. 다른 정부 정책들도 마찬가지다. 동병상련의 공감이 없고 희망이 공유되지 않는 한 공기업 민영화 등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정책들도 기껏 자본과 권력,정보의 활용이 손쉬운 사람들에게만 기회를 줄 것이라는,시민 대중의 냉소와 무관심만 불러일으킬 것이다. 어떤 정책이건 왜 그것이 희망인가,그리고 어떻게 그들의 것만이 아닌 모두의 희망이 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답을 갖고 있어야만 정책을 국민과의 소통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공감과 공유 없는 소통은 그저 일방통행이고 희망사항일 뿐이다. 원문보기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15&aid=00019733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