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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지르기]“北정권 개혁 없인 식량난 못 벗어나”/ 안드레이 랑코프(교양과정부) 교수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가 북한의 기근문제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ㆍ한국사 연구하는 러시아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교수

“북한이 아사자가 생길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최근 이명박 정부의 식량지원 제의를 거부한 것은 이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반감을 가졌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런 반감의 근저에는 ‘당신(이명박)은 우리를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어요. 북한의 지도부는 자존심을 갖고 있으며 설사 주민 수십만 명이 굶어 죽어도 남측의 식량지원을 안 받고 버텨나갈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국민대학교 교수인 안드레이 란코프(Andrei Lankov·45)는 기자에게 북한의 기아문제를 언급하면서 북한 지도부에 대해 날카로운 비난을 퍼부었다. 러시아 출신인 란코프는 “북한의 식량지원 거부는 향후 남북 협력에서 북한이 원하는 조건으로만 가능할 거라는 점을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과거엔 공산주의 동맹국이었는데 이렇게 날선 공격을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북한에 대한 비난은 강력했다.

란코프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인 ‘비핵, 개방, 3000’ 구호에 관해 설명했다. “북한 지도부에 ‘비핵’이란 말은 듣기 싫은 것이죠. ‘개방’은 더욱 듣기 싫은 것이고요. ‘북한의 국민소득을 3000달러’까지 올려주겠다는 얘기는 듣기는 좋지만, 앞의 두 조건이라면 필요없다는 입장이지요.”

10여년 전 북한에 대규모 아사가 발생한 이래 또다시 북한에 아사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정토회 등 종교단체들은 이달 초 ‘굶주리는 북한 주민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 발대식’을 하는 등 북한 사람들의 아사를 막기 위한 인도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사정에 정통한 란코프 교수는 “북한의 식량문제는 농업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선택의 문제”라고 규정했다. 1984~85년간 김일성 대학에서 한국어를 배웠고, 북한의 실정을 잘 아는 한반도 역사 전문가인 란코프 교수의 발언은 기자를 놀라게 했다. 그는 북한의 최근 핵신고서 제출에 대해서도 “용도가 다된 것을 신고했을 뿐”이라며 평가절하했다.

-그런데 북한에 왜 또 다시 식량부족 사태가 발생하고 있나요.

“북한 주민들이 굶지 않으려면 연간 곡물 480만~520만t이 필요합니다. 지난해 북한의 수확은 350만~480만t으로 추산됩니다. 세계식량계획(WFP)은 올해 곡물 부족분을 165만t으로 추정하고 있고, 미국은 110만~120만t이 부족하다고 계산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식량 부족분은 평년의 1.5~1.8배에 해당합니다. 북한에서는 아무리 풍년이 와도 곡물이 부족하며 주민이 굶지 않을 만큼 식량을 생산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국제시장에 내다 팔 만한 제품이 없으니 곡물을 사 올 수도 없지요. 딱한 상황입니다. 북한 정권은 지난 20여년간 자국민을 제대로 먹이지 못했습니다.”

-북한의 농업이 안 되는 근본적 이유가 무엇입니까.

“국가 소유의 농업 방식은 옛소련을 비롯해 동유럽 등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모두 실패했습니다. 농민들은 국가 소유의 토지에서 일하는 데 대해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스스로 사(私)노비와 같다고 생각하지요. 국가 소유의 토지에서는 일을 열심히 할 만한 인센티브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베트남의 사례를 보십시오. 이 나라는 80년대 중반 쇄신(도이모이)을 하기 전까지 식량난에 시달렸고 아사자도 많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도이모이를 진행하면서 토지의 소유 구조를 바꾼 뒤 현재는 세계 3위의 쌀 수출국이 됐습니다. 농민들이 인센티브를 의식해 열심히 일하니 쌀이 증산되는 것입니다. 농업에서는 기술이 아니라 소유구조(사회구조)가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렇다면 북한도 이런 개혁을 채택하면 쌀이 증산되겠군요.

“북한은 이런 개혁을 아직 시도하지 않았고, 향후에도 이런 개혁을 할지도 의심스럽습니다. 북한은 9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농업 생산성이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북한 정부가 웬만해서는 개혁에 착수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참으로 걱정입니다.”

란코프 교수는 최근 북한의 쌀값이 크게 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쌀 1㎏이 3500원(북한돈)”이라면서 “이것은 매우 비싸다”고 말했다. 통상 여름에는 쌀 1㎏이 1000원이었음을 감안하면 가격이 3.5배로 폭등했으며 이것은 그만큼 식량사정이 나쁘다는 현실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쌀값이 비싸다”고 말하는 것은 북한에는 시장 경제가 가동하고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요.

“95년쯤부터 작은 물건들은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어요. 소수의 당 간부들은 배급을 받아서 먹는 것을 해결하지만, 일반인들은 소규모 개인 농장에서 나온 곡물을 장마당(시장)에서 구입하고 있습니다. 김정일 정권은 시장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들이 굶지 않도록 한다는 차원에서 시장을 방치하고 있지요. 경제가 좋아지면 시장을 다시 통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북한의 일반 국민들은 배급제가 잘되던 김일성 시대를 그리워합니다.”

-식량사정이 그렇게 나쁘다면 북한 정부는 농업 발전을 위해 투자해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북한의 기득권층은 권력(정권) 유지에만 관심이 있어요. 때문에 농업 생산성 향상을 위한 투자보다는 핵 개발에 돈을 쓰고 있습니다. 북한 기득권층은 현재의 체제가 붕괴되면 그들의 특권이 박탈당하고 나아가 감옥에 갈 수도 있다며 불안해 합니다. 이 때문에 북한의 특권층은 체제 유지에만 관심이 있으며 서민들이 굶어 죽더라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죠. 한국 대통령들은 임기가 끝나면 은퇴할 수 있지만, 북한의 특권층은 체제가 무너지면 미래가 보장되지 않을 것에 대해 걱정하고 있습니다.”

란코프 교수는 러시아의 레닌그라드 대학에서 조선시대의 당파와 정치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92년 한국에 입국해 4년간 체류한 이후 1996~2004년 호주 캔버라에서 호주 국립대의 조교수-부교수로 호주 학생들을 상대로 조선 역사를 가르쳤다. 그에게서 한국사를 배운 사람들은 한국계가 아니라 호주 학생들이었다. 란코프는 호주 국립대에서 정년을 보장받았지만 2004년부터 국민대 교수로 옮겼다. 그는 이제 부교수로 한국 학생들을 상대로 북한 역사, 조선 역사, 세계사 등을 주로 한국어로 가르친다. 란코프는 한국에 오면 한국사 연구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한국에 왔다. 그의 영어와 한국어는 상당한 수준이며 중국어로도 일상 대화가 가능하다. 그는 “인문 사회과학을 하는 학자들은 폭넓은 학문적·어학적 배경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여년 전 조선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웠다.

기자는 왜 러시아 사람인 란코프가 머나먼 나라 한국의 역사를 공부하게 됐는지 궁금해졌다.

“저는 원래 중국 역사를 전공했습니다. 당시 옛소련에는 한국에 관한 정보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동아시아 문화권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주로 일본이나 중국에 관해 공부하고 싶어했지요. 나도 그랬어요. 하지만 대학생이 됐을 때 중국보다는 한국이나 베트남을 전공하면 더 좋다는 조언을 지도 교수님한테서 들었어요. 저는 대학원을 졸업한 뒤 연구 생활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전공을 중국 역사에서 한국 역사로 바꾸었죠.”

란코프 박사는 북한을 좋게 보는 발언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기자는 북한을 비판적으로 보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물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느냐고요. 백성들을 그토록 학대하고, 민중의 기본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극소수의 세습적인 엘리트의 특권만을 보호하려는 사회체제를 비판적으로 보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나요. 저는 러시아와 동유럽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스탈린주의 체제가 어떤지 잘 알고 있어요. 저는 북한에서도 살았고 북한 사람들과 자주 만났기 때문에 이런 체제의 진짜 모습을 매우 잘 압니다. 이런 체제는 긍정적인 부분이 전혀 없진 않지만, 부정적인 부분이 훨씬 많아요. 유감스럽게도 세월이 갈수록 체제의 부정적인 측면만이 늘어나는 것 같아요.”

원문보기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1967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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