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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경제-세상읽기]몸이 아니라 마음 다쳤을 때 의료소송/이은형(경영학) 교수

의사 선생님들은 잘 들으시라. 한국에서도 상당한 마니아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맬컴 글래드웰(Malcom Gladwell)은 의사가 의료소송을 당할 확률을 거의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자신의 저서 ‘블링크’에서 밝히고 있다. 그 방법은 무엇일까. 첫 번째 방법은 의사의 의료기술 수준, 그가 졸업한 의대의 순위, 최근 2년간 실수를 한 기록, 그리고 그에 대한 평판 등을 정밀하게 살펴보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의사와 환자 사이의 대화를 잠시 들어보는 것이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첫 번째 방법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 의료기술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데다 실수한 적이 있는 의사라면 소송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할 것이다.

하지만 글래드웰의 판단은 다르다. 실제 사례를 토대로 분석해본 결과, 의료기술이나 실수 경험, 평판 등과 소송 가능성은 별다른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분야에서 뛰어나다고 인정받거나 실수를 저지른 적이 없었던 의사가 소송을 당할 확률이 높았다. 왜 그럴까.

 
의사가 의료소송을 당하는 가장 큰 이유는 환자에게 품질이 나쁜 진료를 제공함으로써 해를 끼치거나 실수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의사가 소송을 당하는 이유는 ‘뭔가 다른 일(something else)’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소송을 하면서 환자들이 제시하는 이유를 보면 의사가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거의 쫓기듯이 진료했거나,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무시했거나, 또는 불쾌하게 대했다고 느끼는 것이다. 실제로 어느 여성 환자는 유방암 조기진단을 하지 못한 데 대해 소송을 준비하면서 책임당사자인 X-레이 기사보다 의사를 지목했다. 이 환자는 의사가 자신의 증세에 대해 얘기할 시간을 주지 않았고 전혀 물어보지도 않았다면서 그 의사가 밉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의사와 환자 사이의 대화를 아주 간단하게 듣기만 해도 의사가 소송당할 확률을 예측할 수 있을까. 글래드웰은 의사의 태도, 말투, 그리고 어휘 선택 등을 통해 ‘따뜻함’ ‘친절함’ ‘지배적임’ 그리고 ‘걱정스러움’ 등의 정서가 어느 정도 있는지를 측정함으로써 거의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의사의 목소리 톤만을 들려주면서 소송을 당할 가능성이 있는 그룹과 없는 그룹으로 나누게 했던 실험에서도 결과는 거의 일치했다. ‘지배적인 목소리 톤’을 가진 의사는 소송을 당할 가능성이 있는 그룹으로, ‘따뜻하고 친절하면서 상대를 걱정하고 배려하는 목소리 톤’을 가진 의사는 소송을 당할 가능성이 없는 그룹으로 분류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기서 의료계의 고질적인 문제점 중 하나인 의료소송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의사는 환자에 대한 충분한 문진을 통해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진단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표현함으로써 환자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한다. 전문가가 비전문가에게 친절하게 설명하기란 상당한 ‘감정노동’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이것을 하지 않으면 전문가로서의 존재가치도 사라진다.

우리 사회의 리더들도 마찬가지다. 리더는 자신들이 ‘유능하고 판단력이 뛰어나며 경력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판단과 결정도 자신들이 해야 한다고 믿는다. 판단과 결정이 옳기 때문에 이에 대해 구성원을 설득하는 데 시간을 쓰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가진 리더는 모두 ‘품질 나쁜 리더십에 대한 소송 대상’이다.
이은형 국민대 교수


원문 보기 : 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9/10/09/200910090415.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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