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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인문학] "근대엔 착취의 땅… 서해안 시대엔 풍요의 땅으로"/박종기(국사학과) 교수

 군산 탐방
일제가 남긴 수탈의 흔적, 불법 수집한 문화재 창고
고려 보물 가져다 꾸민 정원 "참… 해도 해도 너무했네"

 

 

"참, 해도 해도 정말 너무했네."

전북 군산시 개정면 발산리에 있는 콘크리트 3층 건물 '시마타니 금고'를 본 '길 위의 인문학' 탐방단은 길게 탄식했다. 시마타니 금고는 1930년대 군산 지역의 대표적 농장주인 일본인 시마타니 야소야(嶋谷八十八)가 서화(書畵) 및 도자기 등 불법 수집한 한국 문화재를 보관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MADE IN USA'가 선명하게 찍힌 두꺼운 철문과 이중 쇠창살은 조선을 영구 지배하려 했던 일본인의 심리를 보여준다. 시마타니는 현재 발산초등학교 뒤편에 있는 건물 주위에 전북 완주군 봉림사에 있던 고려시대 5층 석탑(보물 276호)과 석등(보물 234호) 등 아름다운 석물(石物)을 가져다가 정원을 꾸몄다.

조선일보·국립중앙도서관·교보문고가 주최하고 문학사랑·한국도서관협회·대산문화재단·한국연극협회가 후원하는 '길 위의 인문학' 일곱 번째 탐방인 '금강 따라 흐르는 우리의 역사'에 참가한 67명은 26일 군산 일대의 근대 문화유산을 둘러보았다. 초빙강사인 박종기 국민대 교수(국사학)는 "시마타니가 가져다 놓은 우리 문화재의 이름을 '발산리 5층 석탑' '발산리 석등'으로 붙였는데, 그러면 원래부터 여기 있던 유물로 오해할 수 있다"며 "'시마타니 약탈 5층 석탑' 등으로 이름을 불러야 아픈 역사를 되새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군산은 일제가 남겨놓은 근대 건축물의 원형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이다. 탐방단은 일제의 착취기관이었던조선은행과 옛 세관 건물, 이 지역의 유명 포목상이었던 히로쓰의 일본식 가옥, 일본식으로 지어진 대웅전이 그대로 남아 있는 국내 유일의 사찰인 동국사, 조선인 소작인 3000가구(2만명)를 거느린 대농장을 운영했던 구마모토의 서양식 별장(광복 후 농촌보건위생의 선구자 이영춘 박사가 사용해 '이영춘 가옥'으로 불림) 등을 보며 착잡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군산은 일제가 호남평야에서 나오는 질 좋은 쌀을 수탈하기 위해 키운 도시지만 우리 역사에서 볼 때는 백제의 금강문화권 중심 지역이기도 하다. 박종기 교수는 "백제가 금강 유역인 공주·부여를 수도로 했던 5~7세기에 금강 하구인 군산 지역은 중국과 일본을 잇는 국제교통의 중심이었다"며 "근대에는 수탈의 대상이었지만 서해안 시대인 지금은 다시 주목해야 할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탐방단은 군산 시내를 주로 걸어서 이동했다. 군산시가 도보여행길로 지정한 '구불길'의 제1코스인 '비단강길'을 따라 걸은 탐방단은 금강하굿둑 인근에 있는 '채만식 문학관'을 찾아 군산(옥구) 출신인 일제시대 소설가 채만식의 작품 세계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초빙강사 서경석 한양대 교수(국문학)는 "채만식의 소설 '탁류(濁流)'는 주인공 일가(一家)가 돈을 받고 부잣집에 딸을 시집보내고, 은행돈을 횡령해서 투기하는 등 돈이 중심가치가 된 세태를 '탁한 물'이라고 비판하고 있다"며 "우리 안에도 여전히 들어 있는 '탁류'를 해결하려면 보다 많은 사람이 '길 위의 인문학' 같은 행사를 다니면서 바람직한 윤리를 고민하고 배우고 익혀야 한다"고 말했다. '길 위의 인문학' 행사에 매번 지원했다는 김영호(50·서울 방배동)씨는 '채소도 먹기 힘든 시절에/만 석도 넘는 쌀을/식솔인 양 일만 시켜 빼앗아간 일본인들'이라는 '채만식 3행시'를 즉석에서 발표해 박수를 받았다.

원문보기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6/27/201006270144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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