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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욕심 때보다 ‘아무 생각 없이’ 즐길 때 ‘라베’ 가능성 커 / 최우열(스포츠교육학과) 겸임교수


 

‘생애 최고 스코어’ 심리학

최고 실력 발휘하는 긴장 수준 
‘최적활동구간’은 개인마다 달라 
‘라베’ 의식땐 긴장 너무 높아져 
이런저런 생각 많아 실수 유발 
많은 연습 통한 자연스러운 스윙을 

女 최초 59타 기록한 소렌스탐 
“아무 걱정 없이 클럽 휘둘렀다” 
무아지경 상태서 최고 성적 나와

골프장을 향해 집을 나설 때면 누구든 매번 꾸는 달콤한 꿈이 있다. 바로 ‘라베’다. 라베는 영어 ‘라이프타임 베스트 스코어’의 줄임말. 생애 최고의 스코어를 기록하는 것이다. 

그동안 꾸준히 연습했고 최근에 골프 채널 레슨 프로그램에서 고질적인 약점을 보완할 팁도 하나 건졌다. 무엇보다 컨디션까지 좋아 오늘은 반드시 라베를 할 수 있으리란 부푼 기대와 희망을 안고 1번 홀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선다. 하지만 첫 티샷부터 영락없이 살짝 당겨진 공은 왼쪽 언덕의 러프 지역으로 날아간다. ‘첫 홀이라 긴장해서 그럴 거야’라며 애써 자신을 위로해보지만, 러프에서 친 두 번째 샷마저 뒤땅을 치며 바로 앞 벙커 속으로 공이 굴러 들어간다. 오늘도 이렇게 라베의 꿈은 점점 멀어져간다.

골퍼라면 누구나 한두 번쯤은 경험해봤음 직한 뻔한 시나리오다. 모든 조건이 완벽한 상황에서도 라베를 기록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심리적인 영향이 크다. 스포츠에서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적정한 수준의 신체적 각성(긴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성 수준이 너무 낮으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주의가 산만해진다. 반대로 각성 수준이 너무 높으면 근육이 경직되고 시야가 좁아져 경기력에 방해가 된다.

사람마다 최고의 실력을 발휘하는 자신만의 고유한 긴장 수준이 있는데, 핀란드의 세계적인 스포츠 심리학자 유리 한닌은 이를 개인별 최적활동구간(zone of optimal functioning)이라고 불렀다. 

흔히 중계에서 골퍼들이 높은 집중력을 보일 때 쓰는 “존에 들어갔다”라고 하는 표현도 여기서 나온 말이다. 대체로 내성적인 사람은 개인별 최적 각성 수준이 낮은 편이고, 외향적인 사람은 평균보다 높다. 그런데 보통 라베를 의식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신체의 각성 수준은 급격히 높아진다. ‘존’을 벗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작정하고 플레이를 하는 것보다 오히려 아무 생각 없이 골프를 즐길 때 라베가 나올 가능성은 커진다.

스포츠선수들이 최상의 경기력을 맘껏 발휘하는 순간을 절정수행(peak performance)이라고 한다. 

1991년 스포츠 심리학자인 패트릭 콘의 연구에 따르면 골퍼들은 절정수행에서 모두 9가지의 심리적 상태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하나가 바로 자동적이면서 자연스러운 플레이다. 

실제로 생애 최고의 경기를 펼친 골퍼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무아지경의 몰입 상태에서 플레이했다고 말한다. 

1989년 디오픈에서 자신의 유일한 메이저대회 우승을 거둔 마크 칼키베치아(미국)는 당시 “샷도, 바람도, 거리도, 갤러리도, 그 무엇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클럽을 잡아당기고 휘둘렀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2001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스탠더드 레지스터 핑 2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만 13개를 잡으며 여성 골퍼로는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59타 18홀 최소타 기록을 세운 골프 여제 애니카 소렌스탐(스웨덴) 역시 “나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았다. 티에 올라가면 그냥 클럽을 휘둘렀고, 페어웨이로 가면 단지 공을 그린에 올리는 것만 생각했으며, 공이 어디로 날아갈지는 걱정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자동적이고 자연스러운 스윙을 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오로지 목표한 방향으로 공을 보내겠다는 것 외엔 자신의 동작이나 폼에 대해 말 그대로 아무 생각 없이, 무의식의 경지에 올라야 한다. 보통 좋은 스코어를 내겠다고 마음먹고 라운드에 임하는 순간, 자신의 스윙 자세와 동작에 많은 신경을 쓰게 된다.

어드레스 자세가 좋은지, 백스윙은 적정 플레인을 따라 잘 진행되는지, 스윙 도중 머리를 들거나 움직이지는 않는지 등등 스윙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들은 자연스러운 동작을 방해한다. 

오랜 연습을 통해 이미 자동화된 동작을 의도적으로 제어하려는 순간, 마치 초보자의 동작처럼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워지기 때문이다. 잘 걷던 사람이 발의 움직임과 순서를 생각하는 순간 스텝이 꼬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라베 달성에 꼭 필요한 ‘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과거의 라운드 경험을 떠올려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했을 때 자신만의 적정 긴장 수준을 파악해야 한다. 그런 다음 이전 칼럼에서 소개한 횡격막(복식) 호흡법 등 다양한 심리기술을 활용해 라운드 내내 이 상태를 유지하도록 노력을 기울인다. 

또 라운드 전 충분한 스트레칭을 통해 신체를 이완시키고 특히 우리 몸의 각성 수준을 조절하는 자율신경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술이나 커피 등의 음식물 섭취에도 주의한다.

국민대 골프과학산업대학원 교수

스포츠심리학 박사

 

원문보기: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09040103283900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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