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광주시민을 더 이상 ‘정치적 인질’로 삼지 말라! / 김우석(행정대학원) 객원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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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석의 이인삼각> 문대통령, 한국당을 ‘독재자의 후예’로 몰아세워
매년 5월 18일이 가까워 오면, 1984년 5월의 기억이 생각난다. 필자가 고등학생 때다. 국어선생님이 옆 반에서 ‘1980년 광주이야기’를 하셨다. 눈물까지 흘리셨다고 했다. 그 일로 선생님은 학교를 그만두시게 됐다. 나를 포함한 많은 학생들이 혼란스러워 했다. 선생님을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죄책감도 있었다. 이 사건으로 우리는 ‘5. 18’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가두투쟁에 나서는 계기도 됐다. ‘6. 10항쟁’때 거리에 나서며 ‘광주민주화운동’을 떠올렸다. ‘죽기살기로’ 싸웠다. 필자도 당시 명동에서 ‘달려가(체포되)’ 경찰서 유치장에서 꽁보리밥(콩밥이 아니었음)을 먹은 경험이 있다. 며칠 뒤 아버지가 오셔서 훈방되었지만, 주변에 부끄럽고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노무현정부 들어 그 선생님의 소식을 다시 들었다. 청와대 비서관이 되셨다고 했다. 필자는 이회창 후보를 모시고 대선을 치루어 패했지만, 그 선생님 소식에는 안도감을 느꼈다. 프로필을 보니 퇴직 후 전교조에서 실장을 하셨다고 했다. 대학생활 초 ‘전교조 합법화’를 외치며 모교에 쳐들어가 은사들과 얼굴을 붉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전교조가 지금처럼 극성은 아니었다. 나름 명분을 중시했고, 기득권에 연연하지도 않았다. 이런 모습에 ‘참교육’의 의지가 있다고 느꼈다. (선생님은 문재인정부에서 대통령직속 기구의 책임자를 맡고 있다) 필자를 포함한 86세대들 대부분은 광주에 빚진 마음을 갖고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5.18이 가까워오면 착잡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정치적으로 너무 오염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2000년엔, 86세대 정치인들이 민주화운동 기념식을 맞아 광주 5.18 묘역을 참배한 뒤, 광주 시내 ‘새천년 NHK'라는 가라오케에서 접대부를 끼고 술을 마셨다는 보도가 나왔다. 너무도 실망스러웠다. 당시 현장에 있던 ’통일의 꽃‘ 임수경씨가 분을 삭이지 못하고 공개한 내용이다. 그녀는 현장에 우상호, 정범구, 김성호, 장성민, 이종걸, 김태홍, 이상수 의원 등이 있었다고 말했다. 보도된 그들의 행태를 볼 때, 이들에게는 ’그날 광주‘는 술자리 안주거리에 불과했던 것 같다. 평생 그 덕에 권력을 휘두른 사람들이 말이다. 지난 주말에도 ‘5. 18 기념식’이 있었다. 39주년이었다.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대표는 현장에서 봉변을 당했다. 그는 지난 번 광주방문 때 통진당출신 인사 등 ‘시민단체 회원’들에게 욕설과 물벼락을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념식 참석을 공표했던 황 대표는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념식장까지의 길은 너무도 험했다. 물벼락은 기본이고 의자가 날아들었다. 2분 거리의 행사장까지 20분 넘게 걸렸다. 도착한 황대표의 넥타이는 비뚤어졌고 옷은 구겨져 있었다.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있는 지친 모습이 언론에 보도됐다. 행사장 맨 앞에 앉아있는 황 대표의 바짓단에는 흙이 묻어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황 대표는 기념식에서 또 다시 봉변을 당해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 폭탄’이 쏟아졌다. 문 대통령은 메소드연기를 하는 ‘탁월한 연기자’ 같았다. 결정적인 순간에 울분을 토했고, 말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는 한국당을 겨냥한 성토를 쏟아냈다. “5·18 진실은 보수와 진보로 나뉠 수가 없다”고 했고,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가 없다”고 했다. 사실상 한국당을 ‘독재자의 후예’로 낙인찍은 말이었다. ‘보수와 진보로 나뉠 수 없다’고 말하며, 제1야당을 국민으로부터 분리해 냈다. 한국당을 ‘독재자의 후예’로 몰아세운 것이었다. 근래까지 민주당도 한국당을 ‘군부독재의 후예’라고 공격했다. 사실에 부합하지 않은 ‘정치공세’였다. 한국당은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을 함께 계승한 통합정당이다. ‘산업화세력’은 박정희정부, 민주화세력은 김영삼정부를 계승했다. 지금의 한국당엔 군부독재를 대표하는 민정당출신의원이 한명도 없다. 반면 민주화세력을 대표하는 YS 상도동 계보가 중진으로 남아있고, 민주화이후에 입당한 신진 정치인들이 주류를 이룬다. 구성만으로 봐도 ‘독재자의 후예’라는 표현은 거짓이다. ‘광주민주화운동’를 바라보는 한국당 태도에 대한 여권의 평가도 ‘거짓뉴스’다. 한국당 시조 중 하나인 YS가 집권하고 ‘광주사태’를 만든 군부독재세력을 ‘내란음모죄’로 처벌했다. 또 ‘5. 18’을 ‘민주화운동’으로 승격시켜 재조명했다. 그 이후 현 정권의 시조쯤 되는 DJ가 집권하고 이 기조를 계승했다. 지금 집권세력 중에 YS의 수혜를 받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이쯤되면 ‘배은망덕(背恩忘德)’이라 말할 수 밖에 없다. 여권은 ‘5. 18망언’에 대한 처벌도 주장했다. ‘망언’이라고 하지만, 여권은 그 ‘망언’의 정확한 내용을 전하지는 않는다. 아니 회피한다. ‘망언’의 주장은 “‘5. 18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라”는 것이었다. ‘독립유공자 명단’도 공개되는데, ‘5. 18 유공자 명단’은 왜 공개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냥 ‘개인정보보호’ 때문이란다. 현창(顯彰)해야 할 일을 왜 숨기려고만 하는가? ‘개인정보보호’는 권력자가 숨기고 싶은 일을 감추기 위한 흔한 핑계다. 이후 유공자로 거론되는 이름들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최고위층을 포함한 여권 정치인들 상당수가 합당한 근거 없이 유공자명단에 포함돼 있다. 최근 심재철 의원이 ‘유공자 등록’에 대해 공격을 받자, 현역 여권 정치인들의 이름과 그들이 받은 꽤 큰 보상금 액수를 공개했다. 본인은 3500만원을 받았는데,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자신보다 3.5배를 더 받았다고 했다. 억대가 훌쩍 넘는 액수다. 이대표가 광주항쟁과 직접 관련이 있다는 근거는 아직 없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 분명한 입장을 표하지도 않고 있다. 현 정부 인사들의 특징은 ‘역사왜곡을 통해 이득을 얻는 것’이다. 자신들만 챙기기는 눈치가 보이니, 온갖 핑계를 대 국고를 쏟아 붇는다. 때로는 현금으로, 때로는 일자리로 이득을 챙기고 이를 통해 공범들을 만든다. 공범들을 육성하기 위해 ‘갈등’은 필수다. 세월호 유가족을 앞세워 정권을 잡았고, 다시 생업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분노를 부채질했다. 그리고 ‘5. 18’, ‘4. 3’, ‘4. 19’... 이제 ‘동학혁명’이다. 120년이 훌쩍 지난 동학혁명까지 국고로 보상하겠다고 한다. 그 사전작업으로 야당을 친일세력으로 몰아 입을 막았다. ‘일거양득(一擧兩得)’이다. 멀쩡히 살던 유가족들은 졸지에 ‘억울한 피해자’가 되어 거리로 내 몰린다. 그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특정정파의 보급대와 총알받이가 된다. ‘역사의 피해자’를 볼모로 삼아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챙기는 것이다. 현 집권세력은 말은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행동은 항상 ‘과거’에 집착한다. 이것이 진정 ‘수구세력’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필자는 지난 해 오늘, <‘5. 18 민주항쟁 38주년’, 이제 국민통합의 길로 가자>는 제목의 컬럼을 썼다. 거기서 “38주년 ‘5.18 기념일’을 맞아, 국민통합의 길을 찾는 것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길이고 정권이 생존하는 방법일 것이다.(2018.5.19.)”라고 했다. ‘국민통합이 정권생존의 길’이란 충고였다. ‘국민통합’은 국민들을 갈라 가해자와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다시 그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할 가능성은 지난 해 보다 크게 떨어지지만 말이다.
출처: http://www.dailian.co.kr/news/view/796576/?sc=naver ※ 이 기사는 '뉴스콘텐츠 저작권 계약'으로 저작권을 확보하여 게재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