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지역봉사 참일꾼 뽑아야 - 조중빈 국민대 정치학 교수


2002년 5월 27일(월) - 세계일보 -


6월13일 우리는 월드컵 열기의 한 가운데서 지방자치선거를 치르게 된다. 자칫하면 지방선거가 월드컵에 파묻혀 버릴 수 있다고 우려하는 소리도 있다. 우리가 16강에라도 들어가는 기색이 보이면 지방선거가 축구경기 홍수 속에 떠내려갈 판이다.

설사 그렇게 되더라도 이해할 만하다. 중앙정치는 '게이트' 홍수 속에 있고, 지방정치라고 쌈박하게 틈새를 공략하고 나오는 인물도 없으니 누가 정치며 선거에 관심을 가질 것인가? 이렇게 될까보아 이번 만큼은 지방선거 날짜를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들을 했었던 것 아닐까? 하지만 그렇게 안 하기 천만다행이었다. 군사정부도 아니고 진정한 문민의 시대인데 한편으로는 세계적 축제를 주선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의연하게 우리의 살림살이를 꾸려나갈 수 있을 만큼 성숙했음을 내외에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자부심에 걸맞은 지방선거를 치르기 위해 도움이 되는 관전법을 생각해 보자. 지방선거 몇 번 안 치르고도 혹시 지방선거에 식상해 있는 사람이 있다면 노태우 정부가 왜 지방자치 선거를, 그것도 단체장선거는 빼고 서둘러서 실시했는지 상기해 보기 바란다. 지방자치 선거는 바로 민주화의 상징이었다. 소위 '민주주의 학교' '풀뿌리 민주주의' 등 언사들이 이를 말해준다. 준비도 안된 선거를 마지못해 치르면서도 혹시 이를 계기로 시민참여가 폭발할까 봐 '지방정치' 또는 '지방정부'라는 말의 사용을 극구 배제했다. 시민들이 지방자치를 지방행정의 효율화 정도로 이해해 주기를 바랐다. 4개의 지방선거가 동시에 정해진 날짜에 꼬박꼬박 치러지는 지금에 와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하품 나는 소리로 들릴지 모르나 우리의 지방자치가 그 만큼 성장했다는 이야기도 된다.


이제 지방자치는 우리의 생활이다. 이를 느끼지 못한다면 과거의 구청, 동사무소와 지금을 비교해 보라. 얼마나 효율적이고 친절하고 깨끗해졌는가? 경우에 따라서는 주민보다도 월등히 풍요롭게 사는 관공서를 보며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가 의아할 때도 있지만 자치가 가져온 경쟁의 결과이다. 우리의 지방자치 수준이 아직은 민원실 혁신에 머물러 있고, 난개발과 부패로 상징화되는 어두운 측면도 있지만 우리의 치안, 도로, 교통, 주택, 물 등의 생활영역에서 민원실만한혁신을이룰수있다면상상만해도즐거운일이아닐수없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할 일이 있다. 이번 선거에서 우리 지역을 위해 진정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일꾼을 뽑는 것이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도 눈비비고 찾아보아야 한다. 중앙의 정치인들은 벌써부터 지방선거 현장을 자기의 텃밭으로 생각하고 "호남은 어데, 영남은 어데, 충청은 어데" 하고 있고, 지방자치 결과에 따라서 대통령 후보 재신임을 자청하는 등 지역주의와 부패로 물든 중앙의 마수를 뻗치고 있지만 이를 결단코 막아야 한다.


지방자치를 탈정치화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질이 다른 정치, 즉 생활정치를 위한 개혁의 방향은 '중앙에서 지방으로'가 아니라 '지방에서 중앙으로'라고 하는 말이다. 아무리 중앙정치를 개혁하려고 해도 시민의 생활에서 멀기 때문에 정치가는 자기의 정체와 실력을 은폐할 수 있게 되고 유권자는 무관심해도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 결과 우리에게 돌아 온 것은 지역주의 및 부패와 피폐한 민생이다.


지금은 우리에게 수혈이 필요하다. 민주화의 시대를 맞이했는데도 지도자의 풀(pool)이 번데기같이 쪼그라들어, 사람 고를 때 하는 말이 늙어서 싫고 젊어서 좋다고 한다. 젊은 피만이 아니라 늙은 피, 중년의 피인들 어떻겠는가? 우리의 삶을 책임질 비전있는 지도자, 그동안 묻혀 있던 지도자를 이번 선거에서 발굴하자. 그래서 중앙을 한 번 때려 보자. 조중빈 /국민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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