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횡설수설]배규한/절망과 희망

2003년 3월 3일(월) - 동아일보 -



테리 폭스는 암으로 다리를 절단했지만 낙심하지 않고 암 연구기금 10만달러 모금을 위해 ‘희망의 마라톤’을 시작했다. 의족으로 달리는 그의 모습은 국민적 감동을 불러일으켜 2410만달러의 기금을 모았다. 조지 실레터는 소아마비, 전염성 단구 증가증, 폐렴에 걸리고 폭발사고로 화상까지 입었지만 시련을 겪을 때마다 더 강해졌으며 코미디쇼 제작자로 에미상 특별상까지 받았다. 토드 휴스턴은 사고로 한쪽다리를 잃었지만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하고 ‘수족절단자 재활센터’ 의료책임자가 됐으며, 미국 50개주의 최고봉 등반에 도전해 정상인의 최고기록을 35일이나 단축했다. 4세 때 다리가 마비된 윌마 루돌프는 피나는 노력으로 13세가 되자 기우뚱거리면서 달리기 시작했고, 마침내 올림픽에서 3개의 금메달을 땄다.
▷역경을 뚫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과연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사람들은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 이런저런 역경에 부닥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온갖 종류의 시련을 겪으며 번민하거나 생을 포기하고 있을 것이다. 입시에 실패하여 좌절한 학생이 있는가 하면, 직장이나 재산을 잃고 실의에 찬 사람도 있고, 불의의 사고나 병마의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다. 누구에게나 닥치는 크고 작은 시련 가운데 성공하거나 좌절하는 사람의 차이는 단 한가지다. 그것은 상황이나 여건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 속에 있다.

▷비록 작은 어려움이라도 절망하는 사람은 결코 이겨낼 수 없으며, 아무리 큰 시련이라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은 결국 승리한다. 사람을 주저앉히는 것은 역경이 아니라 절망이다. 몇 년 전 강원도에 큰 산불이 지나간 후 모든 것이 시커멓게 타버린 모습은 절망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듬해 봄이 되자 그을린 돌 틈을 비집고 또는 타다 남은 등걸에서 뾰족뾰족 희망의 새싹이 돋아났다. 어떤 절망의 순간에도 희망의 싹은 숨어 있다.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절망을 느끼게 한다. 안전대책은 고사하고 그토록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 바로 그때에 축소, 은폐에만 급급했던 관련자들을 보면서 분노를 느낀다. 화상을 입고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유가족들의 심정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헬렌 켈러는 “시련과 고통을 통해 강한 영혼이 탄생한다”고 했다. 이 절망의 순간에, 큰 시련을 딛고, 그만큼 더 극적인 인간승리의 드라마가 생겨나길 희망한다.

배규한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khbae@kookm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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