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시론]국가 엘리트의 문민화 / 김동훈 (법) 교수

2003년 3월 13일(목) - 경향신문 -



난산 끝에 교육부총리가 임명됨으로써 새정부의 비서진과 각료 등 주요 인선이 마무리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밝힌 대로 ‘적재적소’의 원칙이 얼마나 구현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평가가 있겠지만 몇몇 부처의 파격적인 발탁 인사는 개혁적 성향을 나타내고 있어 신선한 감을 주고 있다.


그런데 이번 인사의 개혁 지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유력한 지적의 하나는 이번 인사들의 출신 대학이 압도적으로 서울대 중심이라는 것이다. 특히 청와대의 장·차관급 비서진 12명 중 국방보좌관과 민정수석 외에 10명이 서울대 출신이다. 국무위원도 21명 중 13명(61.9%)이 서울대 출신으로 이 비율은 과거의 국무회의에 비해 특히 높아진 것은 아닐지라도 실망을 느끼게 하는 수치이다.


노동이나 교육 관련 시민단체 등에서는 노대통령이 평소 학벌 타파 등을 외치면서도 서울대 출신을 중용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대해 노대통령은 출신 대학까지 고려할 경우 인사가 전체적으로 흐트러질 수 있다면서 오로지 직책에 적합하고 유능한 인재인지만을 보았다고 한다.


사실 정부측의 해명은 수긍할 만한 데가 있다. 인선의 유일한 원칙은 자리에 적합한 인재인가만을 보면 되는 것이고, 오히려 지역에 따른, 또는 출신 대학에 따른 안배는 인사의 원칙을 흐려놓을 수 있다. 그 자리에 꼭 필요한 인재인데도 어느 대학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쓰지 못한다는 것은 여간 불합리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적재적소 원칙에 의한 인재 등용 결과 특정 대학 출신이 독식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이처럼 인재가 서울대 출신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는 근본 구조에 관한 것이다. 서울대 출신 독식은 개개인의 능력이라기보다는 서울대가 수십년간 매머드 ‘국립중앙’ 대학으로서 국가 엘리트를 거의 독점적으로 공급해온 누적적인 결과이다. 즉 국가가 국가를 이끌어갈 엘리트의 교육과 양성을 민간에게 맡기지 않고 일종의 후계자 그룹 양성의 정신에 따라 최고 권위의 국립대학을 직영하여 온 것이다. 그리고 이들 출신에게는 더 많은 경험의 기회가 주어지고 선배가 후배를 추천하고 끌어주는 네트워크의 힘을 덧입어서 이제는 공정한 듯한 인선의 결과가 서울대 출신의 독식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서울대 출신의 독식은 여러 심각한 사회적 폐해를 드러내고 있다. 서울대 출신이라는 국가 학벌의 위세와 이에 대항하는 다수 민간 학벌의 대립구도로 파벌 사회가 강화되고 있다. 공공사무의 집행이 시스템이 아니라 학교 선후배 등의 ‘문중의식’에 지배되어 왜곡되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으며, 또 사회구성원들에게는 서울대 출신만이 이 나라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공고히 하여 서울대 입학을 향한 학벌지상주의와 교육 황폐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서울대를 없애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도 하고 있다. 문제는 국가가 관리 양성을 위해 대학을 설립·운영해온 일본식 관학주의 전통의 연장에 있는 국립 서울대의 근본적인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다. 그 출발점은 국립 서울대에서 국가가 후견임임을 나타내는 국립이라는 타이틀부터 떼어내는 것이다. 신임 교육부총리가 언급한 서울대의 공익법인화안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국가운영의 핵심에 참여할 인재가 폭넓고 다양하게 민간에서 육성되는 것이야말로 국가주의적 사회에서 진정한 시민사회로 옮아가는 핵심적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서울대 출신의 공직 독식은 ‘학벌 일당독재’라는 혹평을 받기에 충분하다. 이제는 구조적 변환이 필요하다. 그 방향은 한마디로 ‘국가 엘리트의 문민화’라고 이름붙일 수 있겠다. 국가의 핵심 인재가 국립대학이라는 너울을 쓴 국가 체제 내부에서 압도적으로 배출되는 시스템은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매우 위험하기까지 하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