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전자민주주의와 정보 격차 / 홍성걸(행정)교수

2003년 3월 20일(목) - 국민일보 -



지난 10년간 우리나라는 정보화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그 결과 오늘날 대다수 국민이 초고속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으며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전자정부’의 행정서비스 전자화도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정보화의 진전은 자연스럽게 사이버 공간을 통한 정치활동을 증가시켰으며 궁극적으로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인터넷은 특유의 쌍방향성과 익명성,그리고 불특정 다수에 대한 신속한 정보 전달을 바탕으로 이제 현실정치를 보완하는 단계를 넘어 대체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불과 1년 전 정치적 외톨이로서 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든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인터넷을 통한 전자적 정치 과정의 활용은 선거운동의 핵심이었다.

컴퓨터와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은 온라인화된 정치 과정에서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했다. ‘노사모’를 비롯한 정치 팬클럽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네티즌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은 생각을 같이하는 동호인들을 전국적으로 순식간에 동원할 수 있었다. 이들은 필요한 경우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노후보의 당선을 위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눈부시게 활약(?)했다. 그리고 전문가들도 예상하기 어려웠던 노무현 정부가 탄생했다.

이제 한국에서 전자민주주의는 보편적 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여론조사는 가장 쉽고 빠르고 저렴하게 여론을 파악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으며 인터넷을 통해 더욱 다양한 정치 관련 정보가 양산,공유되고 있다. 그리고 네티즌들은 정치적 이슈에 대하여 견해를 자유롭게 피력함은 물론 정치인들의 입장이나 주장을 비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바야흐로 인터넷을 통해 직접 민주주의가 부활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정보화의 진전과 더불어 각종 정보 격차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인터넷정보센터에 의하면 세대 간 정보 격차의 경우 20대는 90% 가까운 인터넷 이용률을 보이고 있는 반면 50대 이상은 10% 미만이다. 더욱이 60대 이상의 노인들은 불과 5% 남짓만이 컴퓨터와 인터넷을 접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학력 수준에 따른 정보 격차도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대졸 이상의 82%가 인터넷을 주기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중졸 이하의 경우 5.8%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소득차에 따른 정보 격차도 상당하여 생활 수준의 격차가 정보 격차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정보 격차는 사이버 공간상의 직접 민주주의적 정치 과정에 그대로 적용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사이버 공간을 통한 정치 과정에서 젊은 세대,고학력자,부유층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훨씬 과다하게 반영되고 있다. 즉 노년층을 비롯하여 인터넷을 이용하는 데 한계가 있는 사람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는 오프라인을 통해서만 나타나지만 젊은 유권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네티즌의 경우 온라인을 통한 정치적 참여가 가능하게 됨으로써 그들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이뿐만 아니라 익명성에 바탕을 둔 인터넷은 사이버 공간에서 안면 몰수와 패거리 정치를 가능하게 한다. 즉 자신들과 다르거나 반대되는 의견에 대해서는 동호인들을 동원하여 이른바 홈페이지를 무차별 ‘폭격’함으로써 기능을 마비시키거나 변명의 기회를 아예 주지 않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사이버 폭력은 나중에 잘잘못이 가려진다고 해도 그로 인한 정치적 결과를 돌이킬 수는 없다. 이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전자민주주의의 주요 역기능 중의 하나로 시급히 고쳐져야 한다.

대통령 선거의 결과를 바꿀 만큼 한국의 정치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징으로 자리잡은 전자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발휘하게 하려면 또 커져만 가는 정보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가속되어야 한다. 다만 노인들 스스로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나 견해를 사이버 공간을 통해 활발히 표출할 수 있도록 정보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아울러 지속적인 교육과 홍보,그리고 법제도적 정비를 통해 인터넷을 통한 정치 참여의 역기능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홍성걸(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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