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실미도`는 내삶과 詩의 원형적 상처
2004년 02월 02일 (월) 10:30

영화 ‘실미도’가 흥행신기록을 세우고 있는 가운데 ‘무인도를 위하여’(문학과 지성사·1977)란 시집으로 70년대 한국시단을 풍미했던 시인 신대철 교수(59·국민대)가 북파공작에 참여했으 며, 지난 2001년 계간문예지 ‘창작과 비평’가을호에 북파공작 의 기억을 담은 시 ‘실미도’를 발표한 사실이 새롭게 화제가 되고 있다. 또 신교수는 이달 중순에 출간될 ‘창작과 비평’봄호 에 에세이 ‘실미도에 대한 영상’을 발표할 예정이기도 하다.
신교수에겐 20대 젊은날, 비무장지대 GP책임자로 북파공작에 참 여했던 경험이 삶 전체를 관통하고 뒤흔든 치명적인 상처였다.

그는 두 해 전 백석문학상 수상소감에서 “동족상잔 비극의 현장 에서 사선을 넘으며 공작원을 북파시킨 일이 죄의식으로 남아 밤 마다 악몽에 시달렸다.

분단의 씨앗을 키웠다는 자책감으로 제대로 시를 매듭지을 수 없 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죄의식과 상처를 대면하고, 풀 기 위해 시를 썼지만 동시에 이 때문에 시를 쓸 수 없었다. 70, 80년대 문학청년들의 필독서이자 ‘신대철 신화’를 만든 ‘무인 도를 위하여’를 통해 자신을 인간적으로 받아들였지만 원형적 상처를 씻지 못한 채 알래스카로, 황막한 고비 모래사막으로, 초 원으로 헤맸다.

결국 23년만에 자신의 고통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것이라는 답을 얻은 그는 편안하게 돌아와 2000년 시집 ‘개마고 원에서 온 친구에게’(문학과지성사)를 내놨다. 신대철 문학을 옥죄는 진원지이자, 문제의식의 출발점이 북파공작이었다는 점에 서 ‘실미도’는 이미 한국시문학에서 주요한 모티브로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계간 ‘창작과 비평’에 실은 신교수의 수필 ‘ 실미도에 대한 에세이’와 그의 시 ‘실미도’를 발췌 소개한다.

탁 트인 연병장 터에서 산길은 끝나고 먼 바다에서 불쑥 얼굴 없는 얼굴들이 올라온다, 붉은 딱지 붙어 진학 포기하고 중국집 뽀이가 된 고향의 박아무개, 싸리나무 찾아 양봉에 쫓기던 토종벌 몰고 벌통 옮겨가다 영영 자취 감춘 박아무개 가족, 그 사이사이 문신만 남은 그대들은 누구인가 아무 연고자 없이 전과자로 뒷골목으로 감옥으로 전전하다가 실미도로 끌려온 그대들은? 단두대 같은 수평선에 목을 걸고 무엇으로 하루살이 악몽을 넘기고 싶었는가 누구의 조국, 누구의 통일을 위해 그대들의 피를 씻고 씻으려 했는가 디데이 늦춰지고 불안한 나날 속에 대원들 하나 둘 생으로 죽어갈 때 -어, -어, 종적없이 숨 넘어가는 소리 흉내내는 호랑지빠귀 울음소리에 몸서리치진 않았는가 ―시‘실미도’중에서― #1. 시인과 실미도 1989년 가을 어느날 우연히 실미도에 들렀다가 비극의 현장임을 아는 순간 피가 역류하는 듯했다.

잊고 있었던 어둔 기억들이 한꺼번에 떠올라 몸을 가눌 수 없었 다. 공작원들과 마지막으로 나눈 따가운 포옹과 몸자국이 그대로 되살아났다.

이때 실미도 초고를 잡았지만 순수한 삶의 원형을 복원하기 위해 북극으로 고비사막으로 떠돌아다녔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돌 아와 다시 실미도를 드나들었다. 학생들과 또 다른 시인들과 함 께.

2000년부터 실미도를 시와 체험 과목의 야외 실습장으로 삼아왔 다.

#2. 시인과 옛기억 내가 만난 북파공작원들은 영화속의 근육질 인물들과 다르게 대 부분 중키에 날렵하고 눈이 강렬한 사람들이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눈만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들은 비좁 은 어깨로 고독과 절망을 간신히 받치고 있었다.

장비도 보잘것 없었다. 자살도구, 육포, 독핀과 미숫가루가 전부 였다. 작전도 5박6일이나 7박8일사이 교량을 파괴하거나 주요 시 설 위치를 확인하고 상주요원과 접선하는 정도였다.

그들은 모두 작전만 끝나면 보통 사람처럼 살고 싶어했다.

그들은 생을 바꿔보려고 공작원이 된 것이다. 평범한 가정을 이 뤄 농사짓고 아이들 선물 꾸러미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소박한 꿈을 마음속 깊이 간직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우연히 물색요원을 만나 절망을 애국심으로 바꾸고 인생 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자신의 운명과 마주선 것이다.

작전은 대부분 천둥번개치는 날 새벽에 이뤄졌다. 공작원은 세사 람이 한 팀이 되어 넘어갔다.

어떤 때는 한 사람만 돌아오기고 했고, 혹은 도중에 돌아온 사람 도 있었다.

#3. 시인과 영화 실미도 영화 실미도는 단순한 블록버스터형 액션물에 지나지 않는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등장인물이 살인병기로만 다뤄져 실제 인물같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

교육대장이 권총으로 자살하는 것과 훈련병과 군경이 대치한 상 황에서 조중사가 등장하는 것도 현실과 동떨어진 장면이다. 특히 자폭하기 전에 혈서로 이름을 쓰면서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부 분은 사건의 실상을 흐리게 하고 감상으로 몰아간다.

그저 단순한 폭도들의 감상적인 자살극같다. 사실이 사실대로 밝 혀지기 전 영화를 개봉해 아쉽긴 하지만 영화가 흥행해 잊혔던 국가폭력과 분단상황 아래에서의 비극적인 사건에 관심을 집중시 킨 것은 불행중 다행이다.

시인은 에세이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분단상황하에서 삶이란 무엇인가? 적? 죽음이란? 적? 민족이란 ? 이념이란? 영화 실미도를 보면서 나는 아직도 이십대 때의 질 문을 그대로 남긴다’고.

최현미기자 chm@munhw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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