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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과학 근대성 논의 연구자가 직접 나서야 / 김환석(사회)교수
2004년 02월 03일 (화) 18:43

[한겨레] 오늘날 인문·사회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근대성’이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모두를 거대담론과 억압적 사회질서라 비판하는 서구의 포스트모더니즘이 이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최근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 ‘우리의 근대는 어떻게 형성되었나’를 구체적으로 탐구하는 식민적 근대성 연구가 붐을 이루고 있다. 이는 정신없이 앞만 보며 달려온 20세기를 반성하고, 바람직한 21세기를 위해 우리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데 꼭 필요한 학문적 작업으로서 반가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문제는 이러한 ‘근대성’ 논의에서 과학과 기술의 문제는 왠지 비켜나 있는 듯이 보인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국내의 자연과학자와 공학자들은 ‘근대성’ 논의가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근대적 과학과 기술은 비록 서구에서 먼저 생겨난 것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자연에 내재한 법칙을 반영하고 체화하였으므로 인류 공통의 보편합리성을 지니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연과학자와 공학자에게 근대란 이런 고마운 과학과 기술을 몽매했던 우리 한민족에게 뒤늦게나마 깨우치고 알게 해준 계기일 뿐, 결코 인문·사회과학의 ‘근대성’ 논의에서처럼 반성의 대상으로 떠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과학기술자들은 대체로 아직 계몽주의의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의 과학기술자들은 식민시대와 산업화 경험을 거치면서, 과학이야말로 진리이고 선진강국으로 발전하는 애국애족의 길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과학주의’가 세계에서 유례없을 정도로 강고하게 형성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과학기술학이 지적하듯이 서구의 과학도 하나의 문화적 산물이고, 따라서 절대 진리로서보다는 가변적 인공물로 대하는 좀더 성찰적 자세가 요청되고 있다. 예컨대 오늘날 생명공학의 바탕을 이루는 유전자결정론이 주류 패러다임으로 부상한 것은 19세기 빅토리아 영국의 지배이데올로기와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영국의 생물학자 매완 호는 주장한다.

과학기술을 포함한 서구의 문화적 산물에 대한 반성이 곧 그것들에 대한 총체적 부정과 거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비서구권에서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탈식민주의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되고는 있지만, 이것이 단지 전통으로의 회귀나 민족주의의 강화를 지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서구문화에 대한 무비판적 추종이 불가피하게 초래하는 서구의 일방적 지배에 저항하면서, 서구와 비서구의 공존 또는 창조적 결합을 통한 좀더 새롭고 평등한 세계질서의 모색과 실현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서구문화 가운데 과학기술은 이른바 ‘근대성’의 가장 중요한 물질적 환경과 구성요소를 이루지만, 인문·사회과학자들이 이를 파헤치기란 상당히 어렵다. 따라서 이는 과학기술자가 맡아야 할 몫이다.

김환석 국민대 교수·과학사회학 kimhs@mail.kookm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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