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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퍼스라이프]서커스의 실루엣에 삶을 담고 / 오진령(입체미술4)
2004-06-13 16:26

-국민대 입체미술과 오진령씨-

국민대 입체미술과 4학년 오진령씨(24)는 지난달 국민아트갤러리에서 ‘상황실종’이란 제목의 사진전을 열었다. 모래밭 위로 솟은 두 다리, 허공에 펼쳐진 붉은 천막 등 소재와 색감이 남다르다. 오씨는 “서커스단 이미지를 빌려왔다”고 설명했다.


“작은 상자 안에 몸을 구겨 넣는 묘기 아시죠? 차곡차곡 집어넣고 나면 두 다리가 상자 밖으로 나와 있어요. 붉은 천막은 환하게 불 켜진 서커스 천막에서 영향을 받았고요.”


6년간 동춘서커스단을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지난해까지 매달 한번씩 서커스단을 찾았다. 짧을 땐 3~4일, 길 땐 한달을 동거동락했다. 그동안 찍은 사진을 모아 지난 1월 사진집 ‘곡마단 사람들’(호미)을 펴냈다.


서울 덕성여고 3학년이던 1998년 봄. 신문 광고를 보고 동춘서커스 공연장에 갔다. 막간에 몰래 무대 뒤를 들여다봤다. 5~6살 먹은 꼬마들이 발가벗은 채 피에로 분장을 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낯선 세상. 장롱 속에서 꺼내온 낡은 카메라를 들고 숙소를 기웃거리다 쫓겨났다.


그해 가을 짐을 싸서 동춘서커스단이 머물던 춘천으로 갔다. 처음엔 몰래 숨어있었지만 나중엔 친구가 됐다. 함께 TV를 보고, 밥도 먹고, 잠도 잤다. 묘기도 배워봤지만 영 재주가 없었다. 입장권을 팔고, 무대 뒤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한달동안 살았다. 학교에선 불량학생 취급했지만, 부모님은 딸이 하는 일을 말리지 않았다. 서커스 사진으로 서울예대 사진과에 입학했다.


서커스단은 전국을 유랑한다. 봄엔 서울에 머무르고, 남쪽으로 천천히 내려가 대구·창원 등 따뜻한 지방에서 겨울을 난다. 서커스단이 옮길 때마다 버스를 타고 쫓아갔다. 2년쯤 지나자 단원들이 먼저 전화해 “이번엔 언제 오느냐”고 물었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화부터 내던 사람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해 주었다.


사라져가는 서커스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사진과 원고를 들고 출판사마다 찾아갔다. 몇번이고 퇴짜를 맞았다. 책이 나오는 데 3년이 걸렸다. 그동안 많은 단원이 서커스를 그만뒀다. 오씨는 서울예대를 졸업하고 국민대 미대에 편입해 본격적으로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서커스라는 작은 공간에 모든 것이 들어있습니다. 욕망·사랑·자부심·인간관계, 빨강과 노랑의 강렬한 색감…. 제 경험을 다른 이에게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서커스 경험이 작업의 통로를 만들어준 셈이죠.”


서커스단에서는 그만둘 때 ‘사회로 나간다’고 말한다. 오씨는 지난해 여름을 마지막으로 ‘사회로 나갔다’. 서커스의 이미지를 주제로 사진작업을 하고 있다. 서커스단을 따라다니며 소녀는 어른이 됐고, 사진작가가 됐다. ‘작가 오진령’에겐 한동안 서커스의 그림자가 남아있을 것 같다.


〈글 최명애기자 glaukus@kyunghyang.com〉


〈사진 정지윤기자 colo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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