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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규 건축이 삶을 묻다] 종이로 만든 집과 교회, 지진·전쟁의 상처 달래다 / 장윤규(건축학부) 교수

재난에 대비하는 건축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가 2011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지진 피해 주민을 위해 종이로 만든 임시 성당. [중앙포토]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가 비상이다. 한국에서도 사전 방역 및 사후 대응을 둘러싼 수많은 문제가 노출됐다. 지금 당장엔 의료 체계 정비, 경제 후폭풍 대비가 급선무이지만 건축 또한 국가적 재난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바이러스·기후변화 등 위험 편재
‘신속하게, 안전하게’ 건축의 책임
사회적 대응 부족했던 코로나19
컨테이너 등 임시병원 활용할 만

건축은 멋진 공간과 형태를 조성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항상 사회적 맥락과 함께해왔다. 특히 건축에 되묻는 중요한 질문 중 하나가 ‘공간의 사회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다. 과학기술과 문명 발전으로 생활은 풍요로워졌지만, 각종 사건·재해가 잇따르는 위험사회 속에서 구성원 전체를 떠받치는 건축의 책임도 무거워지고 있다. 환경파괴에 따른 가뭄·홍수·지진, 코로나·메르스·사스 같은 바이러스, 그리고 전쟁·테러 등의 재해와 마주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주지진, 포항지진, 연평도 포격사건, 세월호 사건, 메르스 등 대형 재난이 끊이지 않았다. 반면 이런 응급 상황에 대한 대처는 열악하다. 요즘 코로나19 창궐에 직면하면서 건축의 사회적 장치를 더욱 고민해본다. 음압 격리병상이 부족해 중증환자가 숨지는 경우가 많았고, 경증환자를 살필 생활치료센터를 제때 마련하지 못해 혼란이 컸다. 이런 재해를 대비하는 건축 시스템을 미리 만들어 놓을 순 없었을까.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의 종이 튜브 주택
 

시게루가 2001년 인도 부즈 지진 당시 선보인 임시 주택. [중앙포토]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坂茂·63)의 ‘페이퍼 프로젝트’는 이런 면에서 시사성이 크다. 그는 종이라는 임시 재료를 재활용한 사회적 건축을 선보였다. 종이 튜브를 이용한 교회 등 커뮤니티 시설과 주택 시리즈를 구축했다. 가장 손쉽게 만드는 사회 건축 모델이다.
 
그는 1986년 일본의 알바 알토 전시회에서 종이 튜브를 처음 사용했고, 93년 공식 건축재로 인증받았다. 94년 아프리카 르완다 내전 때 난민을 위한 종이 튜브 임시 주택을 만들었고, 95년 일본 고베(神戶) 강진 발생 당시 집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임시 주거를 지어줬다. 이후 터키 이즈밋 지진, 인도 비즈 지진 때도 손을 놓지 않았다. 종이 튜브로 만든 임시 주택은 내구성·경제성 모두 뛰어나다. 하지만 보편화·상용화까지는 숙제가 많다. 실제로 설계에서 완공까지 두 달 넘게 걸리는 어려움이 있다.
 
최근 건축계에서는 쉽고 빠르고 지을 수 있는 시스템 개발에 관심이 많다. 텐트 구조나 간단한 조립식 구조, 특히 화물 운송용 사각 컨테이너를 주목하고 있다. 무엇보다 용도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요즘 컨테이너는 공사장 사무실이나 농가 창고, 혹은 전원주택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건축가들은 컨테이너의 기능 확장에 눈을 돌리고 있다. 예컨대 미국 건축가 그룹 ‘오피스 오브 모바일 디자인’(Office of Mobile Design)은 새로운 형태의 생태마을을 실험하고 있다. 컨테이너의 업그레이드 버전쯤 된다. 컨테이너의 기동성을 활용하는 한편 도어 시스템·바닥 시스템·태양열 시스템 등에 환경적 요소를 결합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포터블 하우스(Portable House)+에코빌(Ecoville)’ 형태다.
 
컨테이너는 긴급 상황에 신속하게 동원하는 건축 재료로 손색이 없다. 이동성이 좋은 것은 물론 내부 구조 변경도 어렵지 않다. 임시 주거용으로 적당하다. 재난 지역에 새로 건물을 짓기보다 미리 제작된 키트(Kit)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필자는 일명 ‘트럭 컨테이너 키트’를 고안해봤다. 컨테이너와 모듈러(Modular·조립식) 주택을 접목한 개념이다. 트럭마다 중요한 시설과 공간을 미리 접어서 만들어 놓고, 돌발 상황이 벌어진 곳에 도착해서 펼치는 방식이다.
 
일단 트럭 안에는 다양한 구호 기능을 갖춰 놓는다. 임시 거주용으로도 쓸 수 있다. 또 코로나19 위험 지역처럼 병실이 부족할 경우 이동 음압 병실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트럭 여러 대를 연결하면 임시 주민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이 될 수 있다.
  
허리케인 피해 극복한 MIR 프로젝트
 

2007년 미국 뉴올리언스 ‘핑크 텐트’ 운동에 앞장선 할리우드 스타 브래드 피트. [중앙포토]

사실 재난 극복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재해 지역민을 수용할 공간을 신속히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재난 발생 이후 복구 및 상황 종료까지 주민들이 지낼 임시 주택을 짓는 것도 그 못지않게 필수적이다. 경우에 따라선 임시 공간을 항구적 주거 공간으로 변모시킬 수도 있다. 우리의 지속적 관심과 참여가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
 
2005년 허리케인으로 폐허가 된 미국 뉴올리언스 지역의 재건사업 ‘MIR 프로젝트’를 모범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공간 기부라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구체화했다. 재난의 응급 단계부터 항구적 주거 시설 구축까지 흥미로운 프로세스를 실현했다.
 
MIR 프로젝트는 ‘지금 당장 하자’라는 뜻인 ‘메이크 잇 라이트’(Make It Right)의 약자다. 2007년 12월 3일, 허리케인의 최대 피해 지역인 ‘로어 나인스 워드’ 여기저기에 앞으로 지을 집들의 위치·크기 등을 표시하는 분홍색 텐트(Pink tent)를 설치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기부를 받을 때마다 폐허 현장의 ‘핑크 텐트’가 하나씩 늘어가는 식이다. 말하자면 공간 기부의 사회적 실험이고, 공간 기부를 통한 사회적 책임의 실현인 셈이다.
 

축가 장윤규씨가 트럭과 콘테이너를 활용해 고안한 긴급재난 거주 및 치료 시설.

이 프로젝트는 철저히 기부금으로만 꾸려갔다. 미국의 모포시스, 일본의 반 시게루, 그리고 네덜란드 MVRDV 등 전 세계 13개 건축가 팀이 제안했고, 친환경 주택 150여 채 건축을 목표로 내걸었다.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할리우드 스타 브래드 피트가 있었다. 그는 피해 주민들과 직접 만나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프랭크 게리 등 전 세계의 유명 건축가, 환경 전문가, 그리고 에너지 컨설턴트 등 다양한 전문가 집단도 참여했다. 전 지구적 차원의 숙제로 떠오른 기후 변화 이슈를 주택 문제라는 현안으로 풀려고 노력했다.
 
물론 소수 스타에 의존하는 사회적 캠페인은 한계가 분명하다. 그럼에도 건축의 사회적 중요성을 일반 대중 속으로 확산한 기여는 부정할 수 없다. 이제 건축은 생존이자 도덕의 문제로 이해되고 있다. 공간의 기부와 공유, 그에 따른 사회적 책임, 환경 문제 해결과 이를 구현하는 건축 디자인 등등, 사회 구성원 전체의 공조가 필요한 시점이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재난을 이겨내는 힘도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올 것이다.
 
 


종이 튜브의 매력…싸고 가볍고 튼튼하고


반 시게루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사진)는 재난 건축의 대명사로 통한다. 르완다 내전, 고베·타이완 대지진 등 지난 20여 년간 지구촌 재난 현장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공공 건축을 시도해왔다. 무엇보다 소수나 약자들의 주택 문제에 관심이 많다. 2014년에는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종이 등 혁신적 재료 사용과 인도주의적 노력을 인정받았다.
 
반 시게루는 ‘행동하는 종이 건축가’로 불린다. 특히 재활용 종이로 만들어진 종이 튜브(紙管)를 효율적으로 사용했다. 종이 튜브는 건축재로도 훌륭하다. 재질이 안정적이고 견고하다. 콘크리트나 목재보다 가벼운 대신 구조재로서의 충분한 강도를 갖춰 수송 및 가공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전문가에 크게 의존할 필요도 없다. 값이 저렴한 것은 물론 누구든지 쉽게 조립할 수 있다. 단열 성능이 뛰어나 여름과 겨울 날씨를 버텨낼 수 있다. 가공이 간편한 까닭에 건축 외관을 아름답게 꾸밀 수 있다.
 
반 시게루는 우선 모래주머니를 넣은 맥주 상자로 가로 4m, 세로 4m 크기의 기초 바닥을 다졌다. 그리고 벽은 종이 튜브, 천장·지붕은 천막으로 마감했다. 벽의 종이 튜브 사이에는 점착 테이프가 달린 방수용 스펀지를 끼워넣는 방식을 사용했다.


원문보기:https://news.joins.com/article/23729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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