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니다 / 이대현(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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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에 내걸린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 현수막 @논객닷컴
언어가 사고와 의식을 지배한다
문제는 ‘사회적’이 가진 다의성(多義性)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 이유는 공간에 서로 어울려 살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회에는 물리적 공간만이 아닌 심리적, 감정적, 의식적 공간도 함께 있다. 우리의 잠재의식과 의식은 ‘사회적’이란 기호(언어)를 그렇게 해석한다. ‘거리’역시 ‘공간적 위치’로만 한정하지 않는다. ‘사회적 거리두기’란 말을 함부로 쓰는 것이 위험한 이유이다.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ing)’의 원래 개념도 물리적 공간 개념과 거리가 멀다. 1924년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파크가 처음 사용한 이 용어는 ‘개인과 개인, 집단 간의 관계를 특정 짓는 친밀도’를 말한다. 거리 역시 심리적, 감정적인 것이다. 사회적 거리는 지하철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보다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친구가 훨씬 가깝다. 물리적 거리와는 크게 상관이 없다.
사회적 거리는 개인을 넘어 계급, 인종, 국가, 성별, 세대 간에도 가까울수록 좋다. ‘코로나19’가 어느 한 곳 가리지 않고 지구촌 전체를 공포와 고통으로 몰아가고, 어느 한 집단, 민족, 국가의 힘으로 극복이 불가능한 지금은 더 더욱 필요하다. 어쩌면 코로나19가 우리에게 그것을, 나아가 인간과 자연, 인간과 동물 사이에서의 ‘사회적 거리’까지 좁혀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는지 모른다.
‘물리적 거리두기’가 맞다
지금부터라도 ‘물리적 거리두기’라고 해야 한다. 정부와 언론부터 그렇게 하면 된다. 세계보건기구(WHO)도 바꾸겠다고 밝히지 않았는가. 코로나19 전염을 피하기 위한 물리적 고립이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일 것이다. ‘물리적 거리두기’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니다.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얼마든지 ‘사회적 거리’는 좁힐 수 있는 세상이다.
무심코 쓰는 말, 그에 따른 단순한 목적의 행동이 의식과 감정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란 말을 떠올리면서 사람을 피하고,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는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는 시간들이 계속되고 있다. 불가피하고 일시적인 선택이지만 그 시간 속에서 조금씩 스며들고 있는 고립과 경계와 불신이 우리에게 어떤 변화와 영향을 가져올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코로나19’ 팬데믹 만큼이나 그것이 사라진 이후의 우리 모습 역시 두렵다.
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언론학 박사
전 한국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저서 <내가 문화다>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글쓰기>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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