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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규 건축이 삶을 묻다] 볼품없는 여의도 국회 돔, 시민홀로 개조하라 / 장윤규(건축학부) 교수

21세기에 맞는 국회의사당


국회의사당은 각 나라의 정치문화를 대변한다. 통독 이후 시민들에게 개방한 독일 베를린의사당 돔 내부. [중앙포토]

제21대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선거철마다 등장하는 현란한 유세와 정책이 이번에도 춤을 추고 있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갑갑하기만 하다. 자기 목소리만 앞세우는 우리의 정치는 언제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건축이 바뀌면 정치문화도 발전
권위주의 흔적 지운 독일 배워야
방글라데시 국회는 신성한 공간
스코틀랜드는 쾌적한 공원 닮아

사회를 떠난 건축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공공 영역의 건축은 우리 정치의 현재, 나아가 미래를 반영한다. 이를 드러내는 역사적 사례는 수없이 많다. 과거 독재자들은 그들의 이슈와 목적을 극대화하기 위해 건축을 이용했다. 무솔리니·히틀러·스탈린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절대권력은 주로 거대 건축에 집착했다. 히틀러의 총통 관저 길이는 400m에 달했다. 스탈린은 모스크바를 사회주의 이념에 맞게 개조했다. 권위주의와 질서, 절대성과 규율성을 강조했다. 불행하게도 민중을 억압하는 듯한 구조를 띠게 됐다.
 
한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이다. 관료주의 분위기가 물씬하다. 건물 기단 위에 열주(列柱)를 돌리고, 수평 지붕 위엔 본회의장 공간과 전혀 관계가 없는 ‘가짜 돔(Dome)’을 올려놓았다. 권위의 과시다. 겉만 요란하되 실체는 빈약한 우리 정치와 닮은꼴이다. 여의도 의사당은 60년대 비슷한 시기에 기획된 방글라데시 의사당과 사뭇 비교가 된다. 그들은 경제적인 여유는 없었지만 정신적이고 신성한 정치를 실현하기를 원했다. 수도 다카에 완공된 미국 건축가 루이스 칸의 작품으로, 관료적 의사당이 아닌 빛과 침묵, 정신성이 살아 숨쉬는 공간을 재현했다. 실제 그 목적이 현실에서 얼마나 구현됐는지는 의문이지만 정치인과 시민이 함께 토론하는 정치에 대한 염원을 부정할 수는 없다.
  
독일 통일의 상징적 장소로 재탄생
 


베를린 의사당 외경. [중앙포토]

19세기 말 베를린 국회의사당은 현재 우리나라 의사당과 유사했다. 제국주의 영향을 받은 데다 거대한 돔에 방점을 찍었다. 하지만 베를린 의사당은 새롭게 부활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의 공격으로 돔을 비롯한 많은 부분이 파괴됐는데, 1990년 통독 이후 통일국가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여기엔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의 역할이 컸다.
 
포스터는 새 의사당에 네 가지 변화를 시도했다. ①민주주의 포럼으로서의 독일 하원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것. ②역사에 대해 이해를 하는 것. ③대중의 접근성에 헌신을 다 하는 것. ④환경적 아젠다로서의 건축을 완성하는 것이다. 포스터는 전쟁·화재 등으로 파괴된 돔을 현대적으로 재탄생시켰다. 기존 돔의 흔적을 모두 지워버리고, 대신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꿔놓았다. 특히 시민들이 돔 아래 의회실 토론 광경을 직접 볼 수 있게 설계했다. 여기에 투명유리로 된 돔 내부의 가장자리를 따라 나선형 램프를 배치해 입체감을 살렸다. 돔 중앙에 설치한 원뿔 모양의 거울 패널에 반사된 햇빛이 의사당 내부를 비추도록 했다. 건물 환기에도 신경을 썼다. 돔 상단을 통해 의사당 내부의 뜨거운 공기가 빠져나가도록 했다.
 


자연과 지역의 특색을 적극 활용한 방글라데시 의사당. [중앙포토]

스페인 건축가 엔리크 미랄레스가 설계한 스코틀랜드 의사당도 주목된다. 스코틀랜드 민주주의의 부활을 알렸다. 돌로 만든, 권위주의적 기념물을 닮은 런던의 의사당과 달리 시민들과 함께하는 공원 혹은 정원처럼 조성한 점이 흥미롭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습을 그대로 땅에 새기는 것이 의회 자체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의회 좌석 또한 시민들이 앉아서 바라볼 수 있는 원형 극장 형태로 구성했다.
 
미랄레스는 스코틀랜드의 풍경에서 영감을 얻었다. 인근 해안가에서 볼 수 있는 보트 형태를 끌어들였고, 스코틀랜드 건축가 매킨토시의 줄기와 잎·꽃을 모티브로 빌려왔다. 의사당의 잎·줄기 모티브는 건물 내부 창문의 격자 크기 및 토론실 벤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양·스케일로 변형·반복되며 유쾌한 변화를 창출해낸다.
 


스코틀랜드 의사당. [중앙포토]

본회의장 토론실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기둥이 없는 완전한 빈 공간이라는 점이다. 소통 공간이란 국회의 기능을 극대화한 모양새다. 나무를 주요 재료로 사용해 방문자들의 마음도 편안해진다. 또 다른 특징은 웅장한 자연 채광 시스템이다. 의사당 상층의 위원회 회의실에까지 이어진다. 이런 곳에선 활발한 토론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 같다. 막말이 아니라 상대를 배려하는 대화가 오갈 것 같다. 이게 바로 시민과 함께하는 공간의 힘이 아닐까 싶다.
  
실내 기둥 없애고 토론 공간 극대화
 


건축가 장윤규씨가 그려본 새로운 국회의사당. 시민 공간을 크게 늘렸다.

민주주의의 시작은 흔히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아테네는 개방적인 민주주의 사회를 최초로 이룩한 도시국가였다. 정치적으로는 직접 민주주의가, 문화적으로는 학문과 예술이 꽃피웠다. 이러한 복판에는 아테네 특유의 광장문화가 있었고, 그 중심에 아고라(Agora)가 존재했다. 아고라는 원래 시장에서 출발했지만 이후 정치·사회·문화·일상의 중심지가 됐다. 운동경기·정치집회·연극공연·종교축제·시민재판·철학토론 등 다양한 행사와 모임이 이곳에서 열렸다. 시민들은 정보를 교환하고 토론하며 광장문화를 일궈나갔다.
 
한국 정치에 대한 바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아테네 아고라 같은 곳으로 커나갔으면 한다. 우리 사회는 더욱 평평하고 수평적인 형태로 바뀌었다. 정보의 무한 공유와 네트워크 사회는 관료적 정치를 요구하지 않는다. 모든 시민에게 열려 있고 일 방향이 아닌 쌍방향 소통의 정치를 원한다. 국회의사당이 권위와 권력의 상징에서 벗어나 민의와 민주라는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열린 공간으로 탈바꿈돼야 한다.
 
소통의 시대에 걸맞은 국회의사당을 제안해본다. 회의장 좌석 공간부터 바꿔보면 어떨까. 영국 의회처럼 서로 마주 보는, 빼곡하고도 좁은 벤치에 앉아 토론하는 그런 구조 말이다. 꾸벅꾸벅 졸거나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는 의원이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의사당 내부도 들여다보이는 열린 광장처럼 만들면 좋겠다. 안팎 구분 없이 시민과 의원이 서로 대화하는 공간을 생각해본다. 볼썽사나운 돔을 시민홀로 개조하고, 누구나 찾아와 정치에 대한 작은 생각을 나누는 명소로 되살아났으면 한다.
 
빛과 명상의 건축가 루이스 칸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은 이 나라의 랜드 마크다. 빛과 명상의 건축가로 불리는 루이스 칸(1901~74)의 유작으로 유명하다. 1962년 개발도상국인 방글라데시는 칸에게 의사당 설계를 의뢰했다. 20여 년 공력을 들여 83년 완공됐고, 방글라데시 민주주의의 상징이 됐다.
 
루이스 칸은 권력은 바로 민중이고, 민중 누구나 쉽게 들어가서 누리는 공간이 되기를 원했다. 이 지역 일대의 자연과 시대를 담는 건축을 시도했다. 구체적으로 방글라데시의 사막 기후로부터 건축물을 보호하는 지역 재료를 사용하며 현대성과 역사성을 한 맥락 안으로 끌어들였다.
 
방글라데시 의사당은 콘크리트와 백색 대리석으로 이뤄졌다. 두 이질적 재료의 조화가 눈에 띈다. 건물 전체를 사각형·삼각형·원형이 어울리도록 구성했다. 홍수에 대비하려고 인공호수 안에 의사당을 배치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느낌마저 든다.
 
건물 안에 들어서면 빛과 침묵이 교차하는 시적인 공간이 펼쳐진다. 의사당 중앙 팔각형 공간이 본회의장이다. 천장은 우산 모양으로 꾸몄다. 시간에 따라 빛이 달라지는 오묘한 공간을 빚어냈다. 경건한 마음으로 국정을 토론하고 결정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다.
 
장운규 국민대 건축대학 교수·운생동 건축 대표

원문보기:https://news.joins.com/article/23751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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