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이호선 칼럼] 추미애 수사준칙의 악랄한 함정 / 이호선(법학부)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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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고발만으로 피의자되는 추미애의 수사준칙 판・검사의 임용, 공공의대, 법무부가 입법 예고 중인 수사준칙 규정 제정안, 교육부에서 10월 중에 공포할 예정이라고 밝힌 교원 임용시험 규칙 개정안, 이상의 네 가지를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점은 사람을 뽑고 관리함에 있어서 운용하기에 따라서 인사권자의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평가가 얼마든지 작동할 수 있는 길을 제도적으로 열어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2020. 9. 13. 자 치러진 MBC 기자 입사시험에서의 논술 주제 논란은 그 고무줄 잣대의 중심에 사상과 이념에 따라 피아(彼我)를 노골적으로 가르는 다양한 시도가 이뤄질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위와 같은 제도들이 모두 현 정권 세력에 의해 과거부터 추진되었고, 또 앞으로 진행되어 나갈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공정하고 투명한 인재 선발과 공직 사회의 안정성에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는 예측이 강력한 설득력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우선 일반 공직임용과 달리 현재의 판・검사의 임용은 변호사시험성적이나 그 밖의 어떤 공개된 경쟁시험이 아닌 그들만의 리그를 통해 선발하는 방식이 자리잡은지 꽤 되었고, 그 밀실 폐쇄성에 관하여는 지속적인 문제 제기가 있어 왔다. 그리고 최근에 불거졌다가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이 시민단체들이 신입생 선발권을 갖는다는 소위 공공의대 신설 정책이었다. 이것마저 성공하면 대한민국에서 보통 사람들에게 소위 선망의 대상인 판・검사와 의사라는 직업을 특정 정파의 사람들이 나눠먹는 일이 완성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현 정권과 그 주변 세력이 보여주는 집요함에 비춰 볼 때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 민주당은 어떤 술책과 선동을 써서라도 이 과업을 끝까지 밀어붙일 것이다. 판・검사와 의사라는 직업은 단지 좋은 직업을 넘어 견제와 균형이 있는 정상적 민주국가의 중추를 직・간접적으로 형성하는 관료 내지 시민 계층이라는 점에서 이 직역에 특정 정파 및 혈연과 지연으로 묶인 사람들을 채워 넣는 일이 가능해진다는 것은 더 이상 우리가 자유로운 시민에 의해 구성되는 공동체가 아님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런 어두운 전망을 더 가속화시키는 일이 빚어지고 있다. 바로 추미애 장관의 법무부가 대통령령으로 만들었다는 수사준칙(정식 명칭은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이다. 대표적 독소 조항 중의 하나가 검찰이나 경찰에 출석하여 조사를 받기만 해도 수사개시가 된 것으로 보아 즉시 입건, 다시 말해 피의자 신분이 된다는 것이다. 출석 조사니까 버티고 안 나가면, 또 경우에 따라서는 친절하게 수사기관에서 방문조사를 해 주면 되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는 처음부터 접는 게 좋을 것이다. 긴급체포와 체포・구속영장의 청구 또는 신청만 있어도 마찬가지로 입건이 되니까, 누구로부터, 어떤 일로건 고소・ 고발만 당해도 피의자가 된다. 피의자가 되는지의 여부는 대부분의 사건에서 사실상 1차 수사권을 갖게 되는 경찰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다행히 사리변별력이 있고, 정의감과 시민보호에 투철한 경찰이 커피 숍에서 만나서 자초지종이나 들어보자고 하면 피의자 신세 면할 수 있겠지만, 이런 혜택은 줄도 빽도 없는 시민들에게는 언강생심이다. 그런데 문제는 진정과 민원에 시달리는 공무원들에게는 이 조항이 더욱 더 치명적이라는 사실이다. 일단 경찰에서 경찰서 출두 외 제3의 장소로 나와 달라거나 방문해서 조사하는지 여부가 피의자로서의 신분을 좌우하는 까닭에 공무원들은 경찰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공무원들의 경우 국가공무원법 제83조 제3항이 수사 개시 때에는 자동적으로 소속 기관장에게 이 사실이 통보된다. 아무 것도 아닌 일도 직장으로 통보되고, 피의자라는 이유로 직위 해제나 전보 조치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수사개시 통보가 꼭 해당 공무원에게 불이익한 것만은 아니다. 위 법 제2항은 “검찰·경찰, 그 밖의 수사기관에서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하여는 제3항에 따른 수사개시 통보를 받은 날부터 징계 의결의 요구나 그 밖의 징계 절차를 진행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당초 이 법은 비위나 범죄를 저지른 공직자가 그 범죄로 인하여 받게 될 연금 제한 등의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의원면직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취지로 만들어졌으나, 사람을 봐주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실제로 징계를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 이 조항 덕분에 징계 시효가 지나도록 멀쩡히 공직 생활하고, 나중에 무혐의로 흐지부지 끝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결국 개정된 수사준칙에 따르면 공무원들의 경우 1차적으로는 경찰 단계에서 제3의 장소에서의 조사라는 시혜를 베푸는지 여부, 그리고 2차적으로는 인사권자의 눈 밖에 났는지 여부에 따라 그 공직 생활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도록 되어 있는 헌법 제7조 제2항을 위반하여 공무원을 권력에 줄 세우는 반헌법적 행태를 조장할 뿐 아니라, 우리가 경찰공안국가화로 접어들었다는 명백한 징조이다. 국가공무원법은 사립학교 교직원에게도 그대로 준용되기 때문에 공무원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공립은 물론 사립학교 교직원들에게도 그대로 해당한다. 추미애의 새로운 수사준칙은 ‘법치’ 아닌 ‘인치’의 끝판 왕이다. 고위공직자들은 공수처로, 일반 공무원, 각 국・공・사립대 교직원들은 이 준칙으로 목줄을 죄겠다는 의도가 보이지 않는가. 사실상 대한민국에서 보통의 교양과 상식을 가진 합리적 시민 집단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공무원도, 학교 교직원도 아니니까 상관없다고? 안심하지 마시라. 보통 직장인들의 목줄은 더 무겁다. 굳이 역사왜곡금지법, 포괄적차별금지법, 성평등 관련법 등 이리저리 손쉽게 마음만 먹으면 옭아 넣기 좋게 만든 법들을 열거할 필요도 없다. 당신이 누군가로부터 고발당하기만 하면 직장에서는 관(官)이 두려워 일단 자르거나 징계부터 할 것이다. 국가공무원법상의 징계유예 보호규정도 없으니 일반 기업 종사자의 목숨은 파리 목숨이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교육부가 2020년 9월 10일 ‘교육공무원 임용후보자 선정경쟁시험규칙 일부 개정령안’을 10월 중 공포한다고 밝혔다. 이 규칙은 2023학년도 교원 임용시험부터 적용된다. 개정의 핵심은 교육감의 자의적 평가가 최종 선발의 결정적 요인이 되게 한다는 것이다. 지금 교원 임용시험은 1차 필기시험에서 1.5-2배수를 뽑은 뒤 2차에서 실기와 수업시연, 그리고 심층면접을 하고, 1차와 2차 성적을 각 50%씩 반영해 성적순으로 최종 합격자를 결정한다. 심층면접에 평가자 주관이 들어가더라도 그나마 최소화될 수 있다. 그런데 1차 필기 시험 후, 2차 시험은 교육감이 과목을 정하고, 1, 2차 시험 성적 반영 비율도 교육감이 결정한다. 실기나 수업시연 대신 면접 비율을 절대적으로 높일 수 있다. 면접관의 이념, 가치에 부합하는 사람을 뽑을 수 있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끊임없는 면접과 자기고백을 통한 한 인간의 내면까지 들여다 보고 이를 사회적 계층화에 써먹는 방식은 국민을 출신성분과 사회적 성분으로 나누고, 이념 주입을 강요하는 공산 독재 체제의 오래된 전통이다. “정치교양사업에 등한시하며 1948년 4월 12일 당증을 분실하여 당에서 엄중경고 처분을 받았다. ....타협주의 사업 작풍이 강하고 원칙문제의 올바른 취급을 싫어한다. 교원이 적당하나 약하고, 앞으로 책임적 지위에는 약하다.” [1] 1949. 5. 20. 평양 교원대학 지리과 간부 이력서에 나와 있는 구절 중의 일부인데, 한 사람의 내면을 검증하여 그 성향에 따라 사회적 지위를 결정해 주겠다는 야만적인 폭압의 실상을 드러내 준다. 그런데 이와 같은 우려가 생각 외로 빨리 현실화되고 있다. MBC가 13일 치러진 기자 입사시험에서 ‘박 전 시장 성추행 문제 제기자를 피해자로 칭해야 하는가, 피해 호소자라고 칭해야 하는가(제3의 호칭도 상관없음)?’라는 주제를 제시하여 논술시험을 치렀다고 한다. 명백한 사상 검증이 아닐 수 없고, MBC가 평소에 어떤 논조의 방송을 하고 있는가 알고 있는 수험생의 입장에서는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쪽으로 글을 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양심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이다. 논술의 주제를 이렇게 노골적으로 낼 정도면, 특정 성향의 간부들이 요직을 독차지하고 있는 법원과 검찰에서 판・검사를 뽑고, 시민단체가 의대생을 선발하며, 이념적으로 편향된 교육감이 교원 임용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어떤 면접 주제가 주어지고, 어떤 식으로 내편과 니편,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을 가를 것인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여기에 이런 식으로 평소에 분류해 두었던 성향을 쫓아 어떤 공무원은 남겨두고, 누구는 쫓아낼 수 있는 도구를 고안해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 추미애식의 수사준칙이다. 그 집요함과 악랄함, 그리고 사실상 경찰공안국가화를 꾀하면서 이 모든 것을 검찰개혁으로 선동하는 그 궤변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이호선 객원 칼럼니스트(국민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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