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스포츠 세리머니의 시각 언어들 / 조현신(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교수

스포츠 게임에서 후 승자가 주로 보여주는 세리머니는 성취감,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환호의 표현이기에 관중들에게도 자극적이며 많은 흥미의 대상이 된다. 특히 축구를 중심으로 각국 선수들이 펼치는 다양한 제스처들은 다른 스포츠에서는 찾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볼거리이다. 이런 세리머니는 요즘 선수들이 개발해야 할 또 다른 신체 언어이기도 하지만, 꼭 기쁨의 세리머니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스포츠 역사에는 승리 후 펼쳐진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거부를 표하는 신체 언어가 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한 후시상대에 선 손기정, 남승룡 선수

 식민지 청년의 거부의 몸짓, 손기정과 남승룡
한국인의 뇌리에 잊히지 않는 식민시대의 분노와 슬픔을 보여주는 사진이 있다.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 참가한 손기정 선수는 2시간 29분 19초라는 세계 신기록으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2위 역시 한국인 남승룡 선수였다. 하지만 월계관을 쓰고 승리의 화분을 든 두 조선의 청년은 일장기가 올라가고 일본 국가가 울려 퍼지자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월계수 화분으로 일장기를 가리려했다. 동아일보는 일본 신문이 게재한 사진을 받아 일장기를 지우고 발간을 했으며 이로인해 간부들은 줄줄이 구속되었고, 동아일보는 무기 정간에 들어가 10개월 만에 복간되었다. 조선중앙일보 역시 정간을 당한다. 달리기를 할 때 그들의 몸은 최고의 것을 향해 달리는 노력과 탄환 같은 활력의 몸이었으나 우승 후 그 몸은 침묵을 품은 기호로 전환되었고, 조국의 지식인들은 그 침묵에 경의를 표한 것이다. 현재 그 승자들에 대한 한국인의 기억은 결승점을 향해 들어오는 영광의 몸보
다는 단상 위에서 자신의 모국에 대한 사랑으로 고개를 숙인 모습으로 남아있다. 이 모습은 한국인의 기백과 자유, 민족 등 거대 이야기를 산출하는 중요한 민족적 지표로 내내 쓰이고 있다.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의 ‘블랙 파워 살루트'(1968년

블랙파워 살루트, 검은 주먹의 거부
 올림픽 사상 가장 유명한 세리머니가 있다. 올림픽 육상 경기의 우승은 거의 아프리카계 선수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1968년 멕시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토미 스미스는 검은 스카프를 두르고, 동메달리스트인 존 카를로스는 억울하게 죽은 흑인을 기리는 묵주 목걸이를 걸고, 맨발로 단상 위에 올라갔다. 그들은 미국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위로 쳐들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는 미국의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의 표시였고, 블랙파워 살루트라는 명칭으로 대단한 파장을 일으켰다. 은메달리스트였던 호주의 피터 노만은 이에 동조하기 위해 가슴에 올림픽에서의 민권운동을 상징하는 배지를 달고 OPHR(Olympic Project for Human Rights) 시상대에 올랐다. 두 흑인 선수는 선수촌에서 추방당하고 메달리스트의 특권도 빼앗겼으며, 호주로 돌아간 피터 노만 역시 이후 올림픽 참가 자격을 박탈당했다. 승리와 영광의 신체를 혼자서 누리지 않고 동족과 인권을 위해 사용했던 젊은 선수들에게 행해진, 역사의 가혹한 얼굴이다. 스포츠계에서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는 최근에도 종종 벌어져서 국가 제창을 거부하고 한쪽 무릎을 꿇는 항의 세리머니도 있으며,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 경기에서는 제이든 산초가 유니폼 상의를 벗고 속옷에 적힌 ‘Justice for George Floyd(플로이드를 위해 정의를)’라는 문구를 관중들과 카메라 앞에 드러내기도 했다.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관이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를 압살한 사건에 항의하는 세리머니였다. 산초는 세리머니 직후 옐로카드를 받았다. 한쪽 무릎을 꿇는 저항 세리머니는 2020년 근래 벌어지는 미국의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모습으로 이동국 선수에 의해 반복되었다. 이동국 선수는 지난 6월에는 코로나19에 헌신하는 의료진을 응원하는 ‘덕분에 챌린지’ 세리머니를 펼치기도 했다.

제이든 산초 선수의 'Justice forGorge Floyd' 세리머니/ 이동국 선수의 인종차별 반대 세리머니

 

브랜디 채스테인의 세리머니
 

영원한 침묵의 신체 언어
미국의 여자축구 대표팀의 세리머니는 언제나 관심을 받고 있다. 세계 최강의 실력을 자랑하는 그들은 영국과의 경기에서 티를 마시는 흉내를 내서 영국인을 조롱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고, 13 대 0으로 이긴 태국과의 경기에서 극도로 과도한 세리머니를 해서 해설자에게까지 비난을 들었다. 팀 주장은 “여성에 대해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다. 우리의 성공에 대해 겸손해야 한다고 하는데 큰 대회에서 남성 선수들이 어떻게 축하하는지 보라”고 반박했다. 이외에도 춤을 추는 세리머니, 골을 넣는 순간 상의를 벗고 환호함으로써 스포츠 브라를 홍보하는 스포츠 마케팅도 있다. 축구계의 악동 마리오 발로텔리는 자신의 기행으로 초래되는 비판에 항의하기 위해 “Why always me?(왜 나만?)” 박지성 선수는 2010년 일본에서 행해진 남아공 올림픽 평가전에서 첫 번째 골을 넣은 후 일본 관객들을 쳐다보며 한 바퀴 도는 산책 세리머니를 펼쳤다. 그는 그들이 경기 전 자신에게 보인 야유에 대해 “행동으로 답을 해 주었다”고 대답했다. 몇몇 선수들의 세리머니들은 너무 인기가 좋아 팬들은 이것을 보기 위해 골을 넣기를 기다린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재미있는 승리의 세리머니, 신체가 벌이는 흥겨운 축제의 대칭축에 가장 비감하고 고통스러운 신체의 언어가 있다. 근래 들어 악플러 논란, 동료 선수들의 가혹한 대우에 밀려 극단적 선택을 한 여성 선수들의 영원한 침묵의 몸은 환희의 세리머니를 꿈꾸던 가냘픈 어린 선수들이 마지막으로 보여준 몸의 기호였다. 이 대답없는 마지막에 대해 한국 스포츠계는 반드시 공정하고 엄정한 대응을 보여야 할 것이다.

마리오 발로텔리의 ‘Why always me?’ 세리머니

글을 쓴 조현신은 현재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에서 디자인 역사와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 친근하고 낯익은 한국 디자인 역사를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근대기에 형성된 한국적 정서의 디자인화에 관심이 많다. 2018년 『일상과 감각의 한국디자인 문화사』를 출간했다.문구를 보여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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