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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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율려’, 설화·역사 토대 ‘발해의 혼‘ 찾기 / 전승규(테크노디자인대학원)교수


“이것은 천하를 다스리던 위대한 나라, 그 위대한 혼불이 풍전등화와 같을 때 그 혼불을 되살려 후세에 이어주기 위해 몸을 던졌던 여러 사람들의 목숨을 건 모험 이야기다.”







우리 신화와 설화에 뿌리를 둔 역사 판타지 소설 ‘율려’(전 3권, 새로운사람들)가 출간됐다. 696년 대조영의 발해 건국을 배경으로 우리 민족의 신물들과 중국의 고대 괴물들이 한판 승부를 벌인다는 환상적인 내용이다. 해마리산(백두산)과 하늘 못(천지)을 주요 무대로 용왕, 도깨비, 두억시니, 치우천왕 등 50여종의 신물과 괴물 캐릭터가 총출동한다.







이 독특한 판타지 소설의 작가는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 대학원에서 디지털 콘텐츠를 가르치는 현직 교수 전승규씨(48)다. 857쪽이라는 방대한 분량의 이 작품은 그가 쓴 첫번째 소설. 적지 않은 나이에, 디자인을 전공한 교수가 왜 소설을 쓰게 됐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전씨는 “파편적 텍스트로만 남아 있는 우리 고유 캐릭터와 이야기의 원형을 정립해 영화, 게임캐릭터 등으로 가지를 치는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s) 아이템으로 활용하고 싶었다”고 정리했다.



디지털 콘텐츠 개발이라는 것도 결국 문화원형을 변주하는 작업 중 하나인데 어느덧 일본, 중국에 밀려 우리의 고대문화와 캐릭터가 희미하게 묻혀가는데 대한 안타까움을 느꼈던 것이다.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 먹고 두달간은 우리 설화에 등장하는 괴물, 귀신, 신물을 텍스트에서 끌어내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작업에 몰두했고 이후 7개월은 이야기를 만들었다. 퇴고 작업에 또 다른 1년을 쏟아부었다. ‘환단고기’ ‘동이열전’ ‘산해경’ 등 역사·설화집은 배경과 인물, 환상동물의 교본이었고 ‘임꺽정’ ‘장길산’ ‘백년 동안의 고독’ 등 고전은 스토리텔링의 스승으로 삼았다.







소설의 주인공은 고조선 왕손 무와 영고 부부, 그리고 두 아들 크니와 해아지다. 무의 가족은 부모를 죽인 자를 찾아 남행하던 중 고구려 유민 가우리(대조영) 일행과 옛 고구려 왕검성에서 조우한다. 이들은 모두 고구려 유민의 독립운동을 억누르려는 중원 측천무후와 그 졸개인 황금탈 무리에게 쫓기는 신세. 중원의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 무는 가우리의 군사가 되고 아내 영고와 두 아들은 나라를 구할 옥첩과 신물을 찾아 떠난다. 영고 일행은 천신만고 끝에 차례차례 찾아낸 옥첩을 통해 칠지도, 삼족오, 치우천왕의 깃발, 해모수의 오룡수레, 구미호 등 다섯 개의 신물을 깨워내고 대조영은 측천무후와의 대결투에서 승리해 대진국을 건설한다.



작가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을 형상화해 그린 율려 창작 원화집을 함께 냈다. 구미호, 도깨비, 용왕 등 우리에게 익숙하긴 하나 원형의 모습은 알 수 없는 설화 속 괴물(신물)을 철저한 사료 분석을 토대로 캐릭터화한 것이다. 전교수는 ‘다양한 변주를 위한 원형 정립’이라는 창작의도에 맞게 벌써부터 ‘율려’를 영화화하기 위한 물밑 작업을 진행 중이다. 소설 출간과 함께 공식 블로그(blog.naver.com/yulleo2005)도 열었다.



그는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은 확연한 원형을 가지고 계속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반면 우리 설화 속 인물들은 원형이 없이 왜곡·변형되거나 잊혀지고 있다”면서 “우리의 문화원형을 찾는 한편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 즉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맞설 수 있는 문화적 무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신화와 역사를 망각한 민족, 문화의 뿌리와 상상력이 거세된 민족은 미래도 없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이상주기자 sjlee@kyunghyang.com〉



경향신문 2005-09-21 17:4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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