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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흥(국사)교수 인하대 학술세미나 주제발표
강화, 항일구국운동 메카로 재조명



인천 강화도가 항일구국운동의 중심지로서 새롭게 역사적 조명을 받고 있다.
인천사연구소(소장 김상태)와 인하대 인문과학연구소(소장 왕숙영)는 10일 인하대 정석학술관에서 을사늑약 체결 100주년 및 광복 60주년을 맞아 인천의 항일의식을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세미나에서 국민대 장석흥 교수(국사학과)는 ‘강화지역의 항일운동’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항일구국운동의 중심지로서 강화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고 구체적 사례를 제시했다.
장 교수에 따르면 강화지역은 한말 계몽운동과 의병전쟁 등 두 갈래의 구국운동을 선도했다.
1903년 부임했던 성재 이동휘 강화진위대장의 경우 일제 침략이 노골화되자 지위대장 직을 사임하고 강화읍에 보창학교를 설립, 민족의식과 국권회복을 외치는 등 구국교육에 앞장 섰다.
그는 또 전등사에서 기독교 세력 및 강제해산된 군인 400여 명을 모아 합성친목회를 결성하고 대규모 반일집회를 시작으로 의병 봉기를 주도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강화읍 출신 의병장 이능권 등은 의병부대을 결성해 강화도 서남부 일원을 무대로 일제 군경과 치열한 전투를 전개했다.
유봉진 황도문 황유부 염성오 장윤백 등 강화지역 기독교 지도자들은 1919년 3·1운동의 여세를 몰아 연인원 1만명이 참가한 강화지역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강화 본도(本島) 뿐 아니라 부속 섬인 교동도 주민들도 수차례에 걸쳐 조직적인 만세 시위를 벌였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1926년 융희황제 승하를 계기로 일어난 6·10 만세운동 때도 강화지역은 전국단위 단체와 연계된 여러 독립운동단체의 주요 격문 배포처였음이 밝혀지고 있다.
특히 당시 길상보통학교 학생들이 봉도행사 거행을 탄압하는 학교측에 대항, 동맹휴학을 벌이다 교사들로부터 집단구타당하는 사건도 발생했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장 교수는 “강화지역은 일제에 항거해 나라를 구하기 위한 교육·계몽·의병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났던 곳”이라며 “사료 발굴과 역사적 재조명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윤모 인하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원, 김현석 인천사연구소 상임연구원 등도 강화도를 포함한 인천의 항일운동 사료 및 구술을 전반적으로 조사하고 재해석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제시했다.  

한의동기자/han6000@joongboo.com
김종화기자/jhkim@joongboo.com

입력일자[2005-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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