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사회갈등을 변화의 에너지로 / 김환석 (국민대 교수·사회학) | |||
---|---|---|---|
[한겨레 2006-03-09 18:33] 전통적으로 산업사회의 특징인 노사갈등과 더불어 한국사회의 특수성인 분단으로 말미암은 이념 갈등, 그리고 영·호남 사이의 지역 갈등 역시 우리가 아직 풀지 못한 오랜 숙제다. 이런 전통적인 갈등 이외에 새만금 개발 등에서 보는 환경파괴, 원자력발전의 위험성, 식품과 의약품 및 유전자 조작 농산물에 관련된 안전 문제 등 이른바 ‘위험사회’의 문제들도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세계화로 인한 농업 개방과 스크린쿼터의 축소, 행정수도 이전과 사립학교법 개정, 또 ‘황우석 사태’와 관련하여 황우석 지지자와 비판자 사이의 첨예한 대립처럼 전혀 새로운 양상의 갈등이 출현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현재 한국사회의 갈등은 어떤 단일한 원인이나 구조를 찾을 수 없는 전방위적이며 다원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사갈등처럼 산업사회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사회적 갈등은 정부나 강력한 이익집단들의 참여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정치 엘리트나 이익집단의 대표가 아닌 다양한 일반 시민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참여 요구가 폭발적인 수준으로 커지고 있다. 최근 인터넷 등 정보통신 기술의 광범위한 확산도 이러한 참여의 요구와 기대를 증폭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인터넷이나 여론조사를 통한 시민들의 의사 표시는 해당 이슈에 대한 충분하고 균형된 정보를 학습하거나 민주적 토론을 거친 뒤에 얻은 판단이 아니라, 편향된 정보에 근거해 자신이 평소에 지니고 있던 선입견을 표출한 것이기 때문에 피상적일 뿐 아니라 불필요하게 대립적일 수 있다. 문제는 갈등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이것을 질서 있는 참여로 이끌어서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위한 에너지로 삼는 제도적 능력이 우리 사회에 매우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참여 요구와 열망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이념적 기반이 약하고 제도적 틀이나 관행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한마디로 ‘갈등의 제도화’가 미비하기 때문에 사회적 혼란만 초래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정부와 공공 제도에 대한 신뢰의 약화 또는 상실로 이어져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정말 심각한 사태로 번질 수 있다. 정부가 2004년 7월부터 시행한 주민투표법은 방폐장 터 선정과 관련하여 최근 위헌소송에 휘말렸고, 지난해 통과시키려던 갈등관리법은 반대 의견에 부닥혀 국회에서 보류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법들이 일반시민의 진정한 참여를 보장하고 목소리를 경청하기보다 정부가 이미 정해놓은 정책 방향을 정당화하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불신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참여 제도의 확립을 통해 갈등을 사회발전의 에너지로 승화시키려면, 이제 우리도 지방 수준에서 중앙 정부에 이르기까지 일반 시민의 정책결정 참여를 전면적으로 보장하는 ‘시민참여법’ 제정을 진지하게 고려할 때가 됐다. 김환석/국민대 교수·사회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