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열린우리당의 과제 `코드정치`부터 뽑아 버려라
두려운 결과다. 개표 결과를 놓고 국민 어느 누구도 즐거워하지 않는다. 분노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대안이 없음에 불안해하고 있다.

5.31 선거는 지방선거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정권에 대한 심판'이 되고 말았다. 청와대에서는 "지방선거 참패를 대통령 탓으로 돌리는 것은 억지"라고 말한다지만 그게 억지다. 여태껏 매사에 그런 식으로 현실을 무시한 채 형식논리에 매여 민심을 거스르다가 얻은 결과다. 실정을 거듭해 사태가 여기에 이르렀는데도 현실감각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이는 다음의 세 가지 병이 아직도 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권력이라는 병이다. 지금은 '정권재창출'을 위해 읍소하지만 처음에는 '권력의 이동'이라고 했다. 혁명을 한 것도 아닌데 하나의 세력을 완전히 몰락시키고 단시간 내에 새로운 세력으로 이를 대체하려는 권력의지가 번뜩였었다.

둘째로는 '이념'이라는 병이다. 현 집권층이 추구하는 기본가치는 누가 뭐라 해도 '계급'과 '민족'이다. '계급'이라는 가치는 필연적으로 투쟁과 갈등을 부르고, '민족'이라는 가치는 원래 통합을 가져와야 되지만 분단상황으로 인해 남남갈등에 불을 붙였다.

셋째로는 '코드'라는 병이다. 이 권력의지와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마음 맞는 자기들끼리 돌아가며 영원무궁 나눠먹는 병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쉬운 것부터 역순으로 풀어가자. 우선 '코드'를 뽑아 버려야 한다. 국민은 코드가 문제가 아니라 먹고 살기를 원한다. 먹고사는 데 도움이 안 되는 무능한 사람들은 책임을 물어 퇴진시키고, 마음이 반쯤만 맞더라도 능력을 보고 사람을 널리 찾아 써야 한다. 1년 반이 짧은 기간이 아니다. 이렇게 하면 '연정(聯政)' 소리 다시 하지 않아도 된다.

다음으로 '계급''민족'에 우선해 '민주'에 보다 신경을 써야 한다. 우리는 지금 민주국가가 됐다고 하는 허위의식 속에 살고 있다. 우리나라의 민주화는 '계급투쟁'과 '민족해방'이라는 복병을 만나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다. 모르고 하든, 알고 하든 현 집권세력이 여기에 일조하고 있다. 민주주의 잘하는 나라에서 우리처럼 포퓰리즘에 휘둘리는 나라는 없다. 참여를 빌미로 여론몰이 하는 정치는 끝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권력이동'은 포기하고 '권력재창출'에 진정을 다해야 한다. 여당으로서 지금 해야 할일은 여당을 지키는 것이다. 벌써 대통령이 거리를 둘 것이라느니, 소멸이 될 것이라느니 말들을 하는데 그런 말 막 하지 말자.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고생하며 살아온 것이 무의미해진다.

이 모든 변화는 정책의 변화로 구체적 결실을 보아야 한다. 이때 유념할 일이 있다. 의도가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정책을 선악으로 재단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에는 상대가 있는 것인데 상대를 '악의 축'으로 몰아가지 말라. 다른 한 가지는 세상을 보는 눈이다. 열린우리당 정책담당자들은 사회가 생명을 가진 존재라는 것, 움직이는 존재라는 것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무엇을 고치려 해도 같이 뛰어가며 고쳐야지, 사회를 마취시키고 수술하듯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온 국민이 다져야 할 마음자세가 있다. 국민이 열을 받아 냉탕.온탕으로 뛰어다닐 만큼 정치가들이 괘씸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나라 정치의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번의 선거 결과를 봐도 지역 간의 장벽은 높아만 보인다. 소위 '지방선거'에도 인물은 소용없고 지역만이 의미 있는 기준이었다. 이제 태풍은 지나갔고 정신을 수습해 내년의 대통령선거, 그 다음해의 국회의원 선거를 치러야 한다. 교조적 이념을 탈피하고, 드디어 지역주의를 타파한, 역사에 기록될 선거로 말이다. 부디 다음번 선거가 국민의 분노보다 행복을 담아내기 바란다.


조중빈 국민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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