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日총리교체, 꼬인 한일관계 풀 실마리[동아 시론/이원덕] / 이원덕(일본학과)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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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총리, ‘아베정치’ 계승 가능성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 스가 정권은 ‘아베의 전격적인 스가 지명’으로 결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로써 자민당 내 파벌 간 합종연횡은 스가 총재 옹립을 향해 급시동이 걸렸다. 자민당 내 7개 파벌 중 5개 파벌이 스가 지지를 선언했다. 기시다와 이시바는 총재 선거의 들러리로 전락했다. 자민당 총무회는 긴급 상황임을 내세워 당원의 참여를 최소한으로 하고 현역 의원 중심으로 치르는 총재 선거 방식을 채택했다. 일본 헌정사상 최장수 총리의 기록을 경신한 아베는 비록 총리직에서는 물러났지만 스가 내각하에서도 사실상 자민당의 최고 실력자로 ‘상왕 노릇’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스가 등극의 정치 역학과 자민당 현역 의원 40%가 ‘아베 키즈’로 채워진 현실을 고려할 때 스가 총리하에서도 아베의 노선과 정책은 그대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스가는 총재 출마 선언에서 아베 정치의 충실한 계승을 다짐하고 아베에 대한 충성을 맹세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애초 총리 후보로 3%에 불과한 지지율을 기록했던 스가는 일약 38%로 도약하여 이시바(25%)와 기시다(5%)를 눌렀다. 눈물을 흘리며 사임 기자회견을 했던 아베는 동정 여론에 힘입어 내각 지지율을 30%대에서 55%로 올렸고 스가는 이 지지율을 그대로 흡수할 것이다. 9월 16일 출범할 스가 정권은 주요 각료와 당직 인사와 정책 노선 면에서 아베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스가 내각은 길어야 1년 후 치러질 차기 총선까지 코로나19, 경제 침체 등 당면한 위기를 관리하는 잠정 내각의 성격을 띨 것이다. 그러므로 스가 총리는 차별적인 정책을 추구하기보다는 기존의 아베 정치를 충실하게 계승하면서 지지율 제고에 신경을 쓰는 포퓰리즘적인 정책을 추진할 것이다. 따라서 스가 정권의 출범으로 한반도 정책 및 한일관계의 전환이 저절로 도래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일본 국민의 한국에 대한 피로감과 점차 확산되고 있는 반한, 혐한 정서를 고려하면 꽉 막힌 한일관계 개선은 더더욱 기대 난망이다. 그러나 ‘찻잔 속 변화’이긴 하지만 일본 총리 교체는 경우에 따라 대일관계 개선의 모멘텀으로 활용할 수 있다. 외교는 일종의 ‘가능성의 예술’이다. 우리가 하기에 따라선 변화를 못 이끌어낼 것도 없다는 말이다. 아베가 뼛속까지 우파인 ‘이념형 정치인’인 데 반해 스가는 우파 이데올로기의 신봉자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익과 인기에 집착하는 현실주의 정치가다. 현재 한일관계는 수교 이래 최악의 관계로 일컬어지듯 얼음장처럼 차갑기 그지없다. 최근 한일관계는 일본발(發) 독도-과거사 갈등에 그쳤던 예전과는 달리 역사, 경제, 외교, 안보 등 전방위적인 영역에서 극단적인 대립과 반목을 거듭하고 있다. 미중 관계는 전략 경쟁을 넘어 신냉전을 방불케 하는 가운데 한국의 전략적 선택에 대한 고민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본을 사실상 적으로 돌려놓은 채 반목과 대결을 거듭하는 것은 외교적 패착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8·15경축사를 통해 언제라도 일본 지도부와 대화로 문제를 풀고 싶다고 천명한 바 있다. 한일관계 악화의 뇌관은 뭐니 뭐니 해도 징용 문제이다. 코로나19 공조 협력, 단절된 인적 교류의 점진적인 해금 문제 또한 긴급 현안이다. 다음으로 일본의 수출 규제, 한반도 평화에 대한 일본 역할 문제, 국제무대에서 외교안보 협력 문제 등의 현안이 산적해 있다. 그러나 이 현안 모두 지도자 간에 흉금을 털어놓고 솔직한 대화를 나눈다면 해결 못할 난제도 아니고 한일 윈윈의 새 길을 열 수도 있는 사안들이다. 올 11월엔 한중일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서 문 대통령은 일본 차기 총리와의 역사적인 정상 간 대면 기회를 가질 가능성이 크다. 이 기회를 활용하여 극단적으로 악화된 대일관계를 풀어갈 실마리를 끌어내기 위한 만전의 노력을 경주하길 간절히 바란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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