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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일본 성노예 해법’엔 국경이 없다 / 이원덕(국제학부) 교수

미국 하원에서 이루어진 일본군 위안부(성 노예) 결의안의 만장일치 통과는 역사적 쾌거로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 결의안으로 2차대전 당시 일본 정부가 주도해 저지른 일본군 위안부제도는 ‘20세기 최대의 인신 매매사건’으로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을 확인했다. 이와 동시에 일본 정부가 이를 명백히 인정하고 사죄하는 한편 미래 세대에도 교육시켜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문제는 국제사회에서 여성 인권에 대한 반인륜적 범죄행위로 인식되어 왔다. 이미 유엔 인권위원회나 ILO(국제노동기구) 등의 국제기구에서도 일본 정부의 책임을 추궁하고 해결을 촉구하는 논의가 확산되어 왔으나 이번 결의안 채택은 ‘위안부문제 국제화’의 결정판이 될 것이다. 비록 이 결의안이 법적인 구속력은 없는 선언적인 것이며 보상, 배상의 후속 조치를 명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간 위안부문제를 유야무야 덮어보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온 일본 보수 세력에는 쐐기를 박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결의안 통과는 마이클 혼다 의원을 비롯한 의회 내 양심세력의 헌신적인 노력과 미국 내 한인 동포사회 및 아시아계 이민인 NGO 단체들의 눈물겨운 연대 활동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베 정권은 결의안 채택을 저지하기 위해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인하고, 일본 관헌의 개입을 인정한 고노 담화의 수정을 시도하는 한편 미 의회·언론에 대한 필사적인 로비·홍보전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러한 섣부른 대응은 오히려 미국 내의 반발과 역풍을 불러일으켜 역설적으로 결의안 채택의 동력이 되었다.

1990년대 이래 일본 정부의 역사 인식은 역사문제가 정치 쟁점으로 등장하면서 다원화, 복잡화의 경향을 보여 왔다. 90년대 중반까지는 진보 세력이 연립 정권의 일각을 차지하면서 상대적으로 진전된 역사 인식이 표명되었다. 호소카와 사죄 발언,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는 이 상황 속에서 출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 진보파의 전면 대두를 보수 세력은 좌시하지 않았다. 이들은 진보적 역사 인식을 타파하기 위해 각종 의원연맹을 조직하고 우파 사회세력을 동원하여 역사수정주의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해 왔다. 이들에게 위안부문제는 역사 논쟁의 뇌관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고노 담화를 사문화시키려는 보수세력의 집요한 시도는 결의안으로 철퇴를 맞게 되어 당분간 수면 밑으로 잠복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결의안 파장은 바야흐로 위안부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마찰이 이미 해묵은 국가 간 대립구도를 넘어서 국제사회와 시민사회가 복잡하게 연계된 복합게임의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바야흐로 과거사문제는 한·일 정부 간 싸움이라기보다는 시민사회와 국제사회가 상호 공명하는 국제화의 과정 속에 놓이게 된 것이다. 따라서 과거사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편협한 자국 중심주의적 역사관과 일국의 국익 논리를 강조하기보다는 보편적인 세계사 인식에 기초하여 인류의 보편 가치를 지향하는 각도에서 추구되어야 할 것이다. 즉, 과거사 해법은 국경을 넘어선 국제사회와 시민사회의 연대 속에서 추진될 필요가 있다. 역사 마찰이 일상화되어 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향후 우리의 과거사 문제 접근은 국가·시민사회·국제사회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보다 세련된 국제화 전략에 입각하여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원문보기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8/02/20070802011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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