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에세이―김대환] 골라보는 재미? / (음악학부) 교수

몇 시에 주무시든지 4∼5시경이면 일어나시는 '새벽형 인간'이셨던 아버지와 6시면 아침을 차려 놓으시던 할머니의 부지런함 때문에 결혼 전까지 나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 없는 '아침형 인간'이었다.

힘겹게 일어나서 비몽사몽으로 아침을 먹고는 잠을 깨기 위해 신문을 1시간 정도 뒤적거리곤 했는데 그 습관만큼은 결혼한 지 한참이 지난 아직도 남아 있어 아침마다 신문부터 펼쳐든다. 그런 나에게 남편은 인터넷을 클릭하면 모든 뉴스를 다 볼 수 있는데 굳이 신문을 구독할 필요가 있냐고, 거실 한쪽에 쌓여가는 신문더미를 보며 말하곤 한다. 사실 남편의 말처럼 인터넷으로 원하는 기사를 클릭만 하면 여러 신문의 기사를 다 볼 수 있으니 그 편이 훨씬 효율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활자 신문의 묘미는 내가 관심 없는 분야의 기사를 보는 것에 있는 것 같다. 한장 두장 넘기다 보면 볼수록 마음만 답답해져 피하고 싶은 정치 기사나 궁금하지도 않은 해외 정세의 헤드라인이라도 보게 되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대충은 짐작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절대로 클릭하지 않았을 칼럼이나 소박한 이웃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고 뜻하지 않은 소중한 정보를 얻고 즐거워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신문에 관해서는 다소 구식인 나도 TV에 관한 한 시대의 흐름을 타보고자 인터넷 TV를 신청했다. 그런데 이 인터넷 TV의 편리함과 효용성은 실로 감동적이었다. 드라마 방영 시간 맞추려 애쓸 필요도, 동 시간대 방송 프로에서 무엇을 볼까 갈등할 필요도 없었으며, 심지어 극장을 자주 못 가는 나에게 비디오를 빌리러 가는 수고마저 덜어주었다.

인터넷 TV를 설치한 뒤 지난 몇 주간은 마땅히 볼 것이 없어 이리 저리 채널을 돌리는 수고도, 멍하니 TV를 틀어 놓고 있는 시간도 사라졌다. 그러나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보게 된 다큐멘터리나 시사 프로에서 얻게 되는 지식과 정보, 또는 휴먼 드라마를 보다가 눈시울을 붉히는 일도 함께 사라진 것 같다.

아마도 나는 한동안 원하는 프로만을 골라보는 즐거움에 푹 빠져 지낼 것이다. 그러나 편리함으로 무장한 선택의 홍수 속에 우연으로 얻어지는 즐거움의 깊이와 지식의 넓이는 점점 좁아질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원문보기 : http://www.kukinews.com/special/article/opinion_view.asp?page=1&gCode=opi&arcid=0920668410&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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