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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변협 로스쿨' 도입할 만하다 / 이호선 (법) 교수

남겨놓으신 것은 달랑 송아지 한 마리와 몇 백 평의 밭농사가 전부였다.

이렇게 아버지를 여읜 소년은 고등학교 3주 경험을 끝으로 공장을 떠돌았고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6개월의 방위복무까지 포함,이태 남짓 공부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다른 사람 아닌 필자의 얘기다.

염치없이 제 자랑하려고 서두에 이런 얘기를 주절거리는 것이 아니다.

사법시험을 통해 법조인의 길을 가는 사람들 중에는 필자보다 훨씬 더 열악한 환경을 극복한 분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이젠 법학전문대학원,소위 로스쿨 제도가 시행되면서 법조인이 되는 길은 '돈 놓고 돈 먹기'가 돼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은 꿈도 꾸지 못하게 됐다.

몇 만원 주면 그래도 원서 내고 사법시험이라도 볼 수 있었는데,이젠 기본적으로 수천만원이 있어야 로스쿨 문턱이라도 밟는다는 얘기다.

장학금 제도를 통한 약자배려 운운은 로스쿨 예비인가를 받은 대학들이 그 운영을 위해 일반 학생들의 등록금 인상을 꾀해야 하는 현실을 애써 눈감고 호도하려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등록금 대출제도도 비현실적이긴 마찬가지다.

대략 계산해도 지금 기준으로 1억원 안팎으로 소요되는 비용을 대출받으면 로스쿨 졸업과 동시에 빚더미에 안게 된다.

벌어서 이 빚을 갚으려면 법원이나 검찰,기타 정부기관 등으로 갈 생각은 하지도 말아야 한다.

변호사 개업이 유일한 해법이다.

졸업과 동시에 돈의 족쇄가 채워지는 셈이다.

한마디로 돈 있어야 로스쿨도 가고 나중에 판사나 검사도 할 수 있는 게 현실이라면 이는 로스쿨 도입의 본래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

이미 로스쿨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터라 그 해법은 로스쿨의 이원화에서 찾아야 한다.

기존 인가된 로스쿨 외에 법학부 졸업생들을 상대로 법조능력인증 시험을 통해 일정 인원을 선발한 뒤 변호사협회 주관으로 1년 정도의 실무수습을 거쳐 변호사 자격을 부여하든지,일반 로스쿨 출신자들이 보는 변호사 시험에 동등하게 응시할 자격을 주든지 하는 것이다.

가칭 '변협 로스쿨'은 법학부 4년을 졸업하면 되기 때문에 고비용의 추가부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지금 운영되는 변호사회의 연수원은 내용과 형식에서 정평이 나있다.

여기에 유능한 변호사들을 공익봉사 내지 자원형식으로 교수요원으로 활용한다면 양질의 법조인을 저렴한 비용에 배출하는 구조가 가능하다.

원래 로스쿨의 속성이 직업학교인 까닭에 변호사단체가 실무교육을 담당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렇게 되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도 법학부 진학 후에 법조인이 되는 기회를 얻게 된다.

영미법의 원조인 영국에서조차 법조인의 통로를 학부에서의 법학 전공과 실무수습 기회에만 두고 있는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변협 로스쿨 도입은 수험생들뿐 아니라 금번에 로스쿨 탈락 및 과소정원 배정으로 고통 받는 대학들에도 선택권을 주어 숨통을 틔워줄 것이다.

장차 수요자의 입장에서도 비법률분야의 배경지식과 경험을 가진 변호사와 법학에 특화된 변호사를 필요에 따라 고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시장에 다양한 상품을 내놓자는 말이다.

로스쿨의 성패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로스쿨 총정원의 증원이나 인가주의에서 준칙주의로의 이행문제는 또 불거져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차제에 변호사 단체에서 총정원 증원 반대입장에서 벗어나기만 한다면 정부와 대학들 간의 논의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머니게임으로 변질된 로스쿨은 서민을 위한다던 입술발림과 행동이 따로 놀았던 전 정권의 이중성의 명백한 사례 중 하나다.

새 정부는 더 이상 로스쿨이 '당신들만의 리그'가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원문보기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15&aid=0001955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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