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헤럴드 경제-세상읽기]승자의 커뮤니케이션/이은형(경영학) 교수 | |||
---|---|---|---|
1865년 4월 9일 미국 버지니아주 아포매톡스 법정. 5년 동안 지루하게 계속되던 남북전쟁이 끝나는 역사의 현장이다. 패배자인 남군 사령관 리(Robert E. Lee) 장군은 자신보다 16살 어린 북군 사령관 그랜트(Ulysses S. Grant) 장군에게 항복을 하기 위해 법정에 들어선다. 리 장군은 남북전쟁 이전에 이미 미국의 영웅이었다. 한편 그랜트 장군은 남북전쟁 직전까지 군인으로서의 꿈을 접고 부친의 잡화점 일을 도우며 살고 있었다. 남북전쟁으로 다시 군인이 된 그랜트 장군은 1863년 미시시피 협곡을 제패함으로써 비로소 군인으로서의 명망을 얻게 됐다. 리 장군은 까마득한 후배에게 항복하러 가면서 자신이 가진 군복 중 가장 멋진 옷을 골라 입었다. 마지막까지 자존심을 지키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법정에서 처음 만난 그랜트 장군은 진흙이 여기저기 묻은 기병 셔츠를 입고 있다. 그랜트 장군은 리 장군과 구면이라면서 멕시코 전투에 대해 묻는다. 남북전쟁이 있기 전 리 장군이 지휘관으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의 일이다. “멕시코 전투에서 제가 장군님을 모셨는데 기억나십니까?” 그랜트 장군의 너그러운 처사가 남북전쟁 이후의 갈등 치유에 큰 도움이 됐음은 다음의 일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남북전쟁이 끝난 지 10여일 지났을 때, 링컨 대통령이 암살당하자 남부 지역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남군의 패배를 아직 인정하지 못하고 있던 남부 지역에서는 ‘다시 전쟁을 해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이 힘을 얻고 있었다. 소규모 게릴라전도 일어나고 있었다. 이때 리 장군은 ‘다시 남군을 이끌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거절했다. 그리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군은 무기를 내려놓고 이길 수 없는 게릴라전을 중단하라”고 호소했다. 리 장군이 그랜트 장군으로부터 씻을 수 없는 수모를 당했더라면, 그의 반응은 달랐을지도 모른다. 존 발도니(John Baldoni)는 ‘세상을 움직인 위대한 리더들의 성공화법’에서 리더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 이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리더의 커뮤니케이션은 전쟁을 일으킬 수도, 전쟁을 방지할 수도 있다.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클수록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커뮤니케이션 실패로 인해 치러야 하는 대가가 커지기 때문이다. 그랜트 장군의 화법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상대를 배려하는 진정성임을 보여준다. 그는 리 장군에게 멕시코 전투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자신을 오히려 낮췄다. 진흙이 묻은 기병 셔츠를 입은 소박한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였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 애쓰지 않았으며, 전쟁 영웅에 대한 콤플렉스에 휘둘리지도 않았다. 화려한 화술이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이 아님을 보여줬다. 우리는 사회 각계에서 크고 작은 그랜트 장군들을 목격한다. 역경을 딛고 무명을 벗으면서 전에 부러워했던 선배 스타보다 더 화려하게 성장한 스타도 있고, 나이가 어린 후배가 선배를 제치고 승진을 하는 경우도 있다. 오랜 시간 절치부심하여 마침내 정권을 교체했을 때도 많은 그랜트 장군들이 탄생한다. 이들이 진정한 승자가 되려면 상대에 대한 배려, 그것도 진정성 어린 배려가 먼저 필요하다. 아포매톡스에서 보여준 그랜트 장군의 커뮤니케이션, 우리 사회의 ‘통합’과 ‘전진’을 위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은형 국민대 경영대학 교수 원문보기 : 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9/08/21/200908210208.as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