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자발적 개혁, 제재끝 항복 모두 기대 어려워
유일한 희망은 “주민에 변화 가능성 일깨워주는 것”
북한의 2차 핵실험과 유엔 대북제재 결의, 남북 당국의 얼어붙은 대치상태와 재개시기를 가늠하기 힘든 북핵 6자회담. 북한 문제의 2009년 모습이다.
소련 출생으로 북한에서 공부했으며 한국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국민대·역사학)를 만나 북핵문제와 남북관계 재개 가능성을 들었다. 란코프 교수는 레닌그라드 국립대 아시아학부를 졸업하고 북한 김일성종합대 조선어문학과에서 유학했다. 호주 국립대 교수를 지냈고 2004년부터 국민대에 재직하고 있다.
그는 “북한이 핵포기를 할 수 없고 자발적인 개혁·개방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건 북한 민중”이라며 “따라서 개성시내·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확대 등 경협·교류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수는 “소위 진보는 북한의 자발적 개혁을 기대하고 보수는 고립·제재를 통한 북한의 항복을 기대하기 때문에 문제”라며 “두 가지 모두 실현 불가능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 지난 10년의 대북정책과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비교해 달라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대북 경협을 하면서 환상이 있었다. 경협·교류가 이어지면 북한이 자발적인 개방·개혁 노력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그렇다. 100% 오판이다. 북한 정권은 중국이나 베트남과 달리 개혁·개방을 할 수 없다.
북한이 개혁·개방을 할 경우 남한의 경제성과에 대한 지식의 확산에 의해 북한정권의 정통성이 파괴된다. 중국은 미국에 의해 통일되지 않지만 북한은 흡수통일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북한정권에게 국제사회와 남한을 상대로 한 도발 및 협박 외교는 불가피하다. 도발은 ‘합리적 선택’이다. 자발적으로 개방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긴장고조를 통해 정치·경제적 양보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 어떻게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나?
유일한 방법은 아래로부터 개혁·개방 압력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북한 사람들에게 바깥세상을 보여줘야 하고 쓸모있는 지식·기술도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개성공단이 중요하다. 김대중 · 노무현처럼 조건없이 돈을 주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돈을 주는 것을 통해 남한 생활을 알 수 있도록 해야한다. 개성공단 근로자들이 받는 초코파이는 북한 정권을 향해 던지는 수류탄과 같다. 더불어 (초보적이지만) 현대 기술도 배우고 있다. 개성시내 관광의 중요성도 여기에 있다.
- 이명박 대통령은 금강산·개성관광 재개 의지를 안 보이던데?
물론 금강산·개성관광으로 북한 지도부에 현금이 들어가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하루 10여대씩 버스를 타고 오가는 남한사람들의 옷차림·행동을 보면서 변화를 깨우친다. 보위원(기관원)들도 관광객을 보면서 체제에 대한 의심이 생길 것이다. 과거 소련(동구권)에서도 하급관리와 특수기관 조직원들이 변화를 요구했었다. 금강산관광은 격리돼 있어 개성만큼 효과가 크지는 않지만 ‘개성공단·개성시내관광·금강산관광’은 패키지(package)로 봐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현금이 간다’는 점이 우려스럽겠지만 장기적으로 이 사업은 김정일 독재정권에게 큰 손실이며 북한사람의 인식을 바꾸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 고립·제재의 효과가 있다는 얘기들이 많이 있지 않나?
고립·제재는 상황변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북핵과 남북문제의 일괄타결(Grand Bargain)을 주장하는 것은 아무 교류를 하지 말자는 것과 마찬가지다. ‘비핵·개방3000’과도 다를 바가 없다. 북한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정책을 유일한 대북정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왜 핵을 갖고 있나. 첫째 대외 침공을 막기 위한 ‘억제수단’이다. 둘째 아프리카 모잠비크·가나 수준의 북한경제로서는 외부지원이 불가피한 만큼 협박외교의 수단으로 쓰인다. 하지만 북한은 남한의 투자를 원하지 않는다. 인간교류를 통제할 수 있는 ‘개성공단’ 같은 것만을 원한다.
소위 진보는 북한의 자발적 개혁을 기대하고 보수는 고립·제재를 통한 북한의 항복을 기대하기 때문에 문제다.
- 우리 정부가 최근 싱가포르, 개성 등에서 북한과 비밀접촉을 하고 있다. 성과가 있을 것으로 보나?
그러길 기대하지만 2개월이 지났는데 성과가 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8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조문단 파견 등 북한이 유화공세를 펼쳤을 때 예전의 대북 경협수준으로 돌아갔어야 했다. 왜냐하면 북한은 제재에 굴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 지도부는 제재를 통해서 목이 졸리지 않는다. 북한 정치 엘리트는 민중의 고통을 완전히 무시할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민중이 죽는 걸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정권은 오래 유지된다. 제재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지나친 기대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 중국의 대북지원 때문에 대북 제재·압박 효과가 반감된다는 의견도 있다
중국의 한반도 정책인 ①한반도 안정유지 ②한반도 분단유지 ③북한의 비핵화 중에서 안정유지가 가장 중요하다. 한반도 급변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중국이 될 것이다. 탈북자 양산은 물론 핵물질 등 생화학 무기의 밀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은 북한에 압력을 가할 수단이 있다. 대북교역을 중단하거나 심양 무역사무소를 폐쇄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북한 체제가 불안정해지고 중국의 이익을 해친다. 중국은 북한 정권을 싫어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 중국에게 북핵은 여러 나쁜 상황 중에 ‘덜 나쁜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무너지지 않도록 대북지원을 지속하지 않을 수 없다.
- 북-미관계와 6자회담 복귀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북한이 긴장고조를 통해 이익을 취하다고 하지만 4월 미사일 발사 한달만에 핵실험을 실시한 건 북한의 ‘실수’다. 그 핵실험으로 미국에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져 버렸다. 당연히 북한에 많은 양보를 줄 필요가 없다고 보고 있다. 지금 미국이 (보즈워스 대북특사의 방북 등) 회담을 하는 이유는 핵포기를 이끌어내기가 아니라 북-미관계를 관리하는 것이다. 결정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 이명박 대통령이 어떤 단계로 대북관계를 재개해야 하나?
개성시내관광 재개가 제일 우선이다. 정치적 효과가 크고 관광객 피격(금강산관광)과 같은 심리적 장벽이 없다. 70년대 소련에서 살던 시절 우리가 외부세계의 변화를 알 수 있는 통로는 관광객과 수입품이었다. 관광은 북한 사람들로 하여금 체제에 문제가 많다는 걸 알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원문보기 : http://www.naeil.com/News/politics/ViewNews.asp?nnum=516230&sid=E&tid=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