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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시론]북한이 받을 수 있는 제안을 하라/안드레이 란코프(교양과정부) 교수

이명박 대통령은 신년 국정연설을 통해 "올해 남북관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남북관계를 개선할 뿐만 아니라 북한 사회의 변화와 개발을 중심으로 정책을 계획하려면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있다. 지금까지 대북 전략의 기본처럼 추진해온 '그랜드바겐'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다.

'그랜드바겐'의 내용을 간단히 말하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대북 지원을 대폭 늘리고 북한의 경제발전을 위해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 정부가 2008년부터 추진한 '개혁 개방 3000구상'과 대체로 비슷하다.

'그랜드바겐'은 언뜻 보기에 매우 후한 제의처럼 여겨지지만 중요한 문제점이 있다. 북한은 '개혁 개방 3000구상'을 거부했는데 '그랜드바겐'도 같은 운명을 피하지 못할 것이란 점이다.

체제 유지를 절대 목표로 삼고 있는 북한의 논리를 고려하면, 북한은 '그랜드바겐'의 전제 조건인 핵 포기를 정치적 자살처럼 생각할 뿐만 아니라, 한국이 인센티브로 제공하는 대규모 투자를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는 요소로 여길 것이다.

북한이 핵 포기를 전제 조건으로 하는 제안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핵이 북한 체제를 유지하는 데 전략적으로 필요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원래 핵은 전쟁 억지수단이거나 국내 선전에서 국민들의 고통을 설득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그러나 북한의 핵은 억지 수단도 아니고 선전 수단도 아닌 협박 외교의 수단이다. 북한 지도부는 체제를 위협한다고 판단되는 시장 개혁을 실시하지 않는 조건하에서 해외로부터 지원을 받아야 체제 유지가 가능하다. 이 지원은 규모가 커야 할 뿐만 아니라 분배에 대한 감시를 비롯한 기타 조건이 없어야 북한 특권계층의 정치 목적에 맞게 이용할 수 있다. 약소국인 북한이 규모가 큰 지원을 조건 없이 받기 위해서는 국제 사회에 압력을 가해야 된다. 핵무기는 이러한 협박을 하기 위한 효율적인 도구이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면 많은 지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한국 정부의 '그랜드바겐'을 결코 매력적인 제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두 가지 이유다. 첫째, 북한은 지원의 형식과 시기를 관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북한 정권은 외부에서 나온 식량·일상용품을 평양시민·군인·경찰과 같은 특권계층에 먼저 분배함으로써 자신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고자 한다. 북한은 핵 협박을 교묘하게 이용하면 지원이 나올 조건을 결정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둘째, 북한 정부는 경제성장을 중요시하고 있지 않다. 북한은 경제성장보다 국민에 대한 통제가 중요하다. 북한 정부는 체제를 위협하지 않는 한에서 발전을 환영한다. 한국이 약속한 대규모 투자와 협력은 불가피하게 북한 내에서 한국에 대한 이해의 확산과 감시의 약화를 초래할 것이다. 북한 정부가 보기에 이러한 경제성장은 체제를 강화하기보다 위기를 야기하는 폭탄이 될 수 있다.

'그랜드바겐'은 장기적인 정치목표에 대한 선언으로 괜찮을 수 있지만 북한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제안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전략은 될 수 없다. 물론 북한이 이 제안을 거절하는 이유는 자신의 특권 유지를 위해 민중의 행복과 생명을 희생하는 북한 지도계층의 집단 이기주의 때문이지만, 이런 특권계층의 본질이 바뀌지 않는 상태라면 대북 정책을 냉정하게 다시 계획해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를 장기적인 문제로 선언한 것은 좋다. 그러나 '그랜드바겐'을 대안이 없는 유일한 전략으로 여기는 것은 대북 관계를 냉각시키는 것이다. '그랜드바겐'을 추진하는 동시에 북한과 타협을 초래할 수 있는 정책을 고려해야 한다.

원문보기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1/18/201001180175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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