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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티샷 공포 덜어주는 ‘프리샷 루틴’… 소렌스탐, 14년간 ‘24초’ 지켜[최우열의 네버 업-네버 인] / 최우열(스포츠교육학과) 겸임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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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우열의 네버 업-네버 인 - 마시멜로 실험과 프리샷 루틴 흰곰을 생각 말아야지 하는 순간 흰곰이 머릿속에 맴도는 것처럼 샷에 대한 긴장·공포 밀려올 때 가장 좋은 전략은 딴생각 하는 것 소렌스탐, 시작~스윙 루틴 철저 남자대회 나서 티샷 정확도 1위
1945년 베이브 자하리아스 이후 여자골퍼로는 58년 만에 남자대회에 출전한 소렌스탐을 보기 위해 많은 수의 갤러리는 물론 전 세계에서 무려 600명에 가까운 기자와 50개 넘는 방송사가 몰려들어 뜨거운 취재 경쟁을 벌였다. 엄청난 관심이 쏟아지는 가운데 여자골퍼를 대표해 혈혈단신 대회에 나선 소렌스탐이 당시 첫날 첫 홀 티샷을 앞두고 얼마나 긴장했을지 짐작이 간다.
5시간 가까운 골프 라운드에서 가장 떨리는 순간은 아마도 첫 홀 첫 티샷이 아닐까. 통산 72차례나 우승한 소렌스탐 같은 대선수들도 매번 첫 티샷이 두렵긴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첫 티샷 공포’(first-tee jitters)란 말이 생겼을 정도다. 이럴 때 보통 코치나 지도자들은 긴장하는 선수를 향해 “긴장하지 말고 평소대로 해!” 혹은 “겁먹지 말고 과감하게 쳐!” 같은 말은 하곤 한다. 하지만 현실은 긴장하지 않으려고, 겁먹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긴장되고 더 겁이 난다. 이처럼 어떤 생각을 억누르려는 정신적 노력이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사고 억제의 역설적 과정’이라고 한다. 쉽게 ‘흰곰 효과’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지금부터 1분 동안 절대 흰곰을 생각하지 말아야지 하는 순간 흰곰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우리의 뇌는 흰곰을 생각하지 않기 위해 일단 흰곰부터 먼저 떠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첫 티샷에서 효과적으로 긴장을 떨치는 좋은 방법은 없을까? 여기에 한 가지 단서를 주는 것이 바로 마시멜로 실험이다. 1960년대 말 미국 스탠퍼드대의 심리학자 월터 미셸은 만 4세 아이들에게 마시멜로를 하나씩 주면서 언제든 원할 때 먹어도 되지만 만약 먹지 않고 선생님이 돌아올 때까지 약 15분 동안 혼자 방에서 참고 기다리면 상으로 마시멜로를 하나 더 주겠다고 했다.
실험에서 약 3분의 2의 아이들은 중간에 마시멜로를 먹었지만, 나머지 아이들은 마시멜로의 달콤한 유혹을 끝내 잘 견뎠다. 연구팀이 유혹에 굴복한 아이들과 유혹을 견딘 아이들의 차이를 분석했더니 유혹에 넘어간 아이들은 대부분 유혹을 참기 위해 마시멜로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반대로 유혹을 이긴 아이들은 등을 돌리거나, 눈을 감은 채 노래를 부르거나, 신발 끈을 만지작거리는 등 딴짓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의지를 다지기 위해 금지된 마시멜로를 쳐다본 것이 오히려 유혹을 더 키웠고, 주의를 딴 곳으로 돌린 것이 유혹을 떨치게 한 것이다. 즉, 흰곰처럼 어떤 생각을 안 하는 가장 좋은 전략은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다. 첫 티샷의 긴장을 떨치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딴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이나 막 하면 역효과가 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프리샷 루틴’(pre-shot routine)이다.
대다수 골퍼는 일정한 루틴 없이 매번 다르게 플레이하는데, 자신만의 일관된 루틴을 만들어 실천하면 잡념을 떨쳐내고 현재의 플레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프리샷 루틴의 가장 좋은 예는 바로 소렌스탐이다. 그녀의 현역 생활 14년 동안 경기 영상을 모두 분석했더니 루틴 시작부터 스윙을 마칠 때까지 매번 정확히 24초가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일관된 루틴으로 그녀는 2003년 남자 선수와 같은 7080야드(파70) 전장의 코스에서 대회 첫날 극심한 압박감에도 불구하고 티샷 거리 평균 269야드로 전체 114명의 참가 선수 중 84위를, 티샷 정확도에서는 단 한 차례만 페어웨이를 놓쳐 1위를 차지했다.
국민대 스포츠산업대학원 교수, 스포츠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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