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우리법式 재판’ 횡행과 대법원 책무[포럼] / 이호선(법학부)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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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선 국민대 법대 학장, 변호사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을 심리 중인 ‘문형배 대행’ 체제의 헌법재판소에 대한 불신이 갈수록 커지는 와중에 법리와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법원 판결 하나가 또 나왔다. 이미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안을 둘러싸고 ‘4 대 4’로 갈리면서, 친야 성향 헌법재판관 행적이 새삼 조명되고, 헌법 수호자 자격에 대한 의문도 커졌다. 이런 시점에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가 4일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판결에서 1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하면서 사법 불신이 더욱 커졌다.
이 사건은 1심 재판부터 정치적 오염 지적을 받았다. ‘우리법연구회’ 출신 김미리 판사가 사건을 맡아 1년이 넘도록 공판준비기일만 6번 진행했고, 고의적인 재판 지연이라는 여론이 들끓으면서 결국 3년10개월 만에 1심에서 송철호 전 울산시장과 황운하 의원에게 각 징역 3년이 선고됐다. 그것도 김 판사가 질병 휴직을 하여 재판부가 다시 구성되는 바람에 가능했다. 그 과정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은 3년 정도 되면 인사이동을 하는 통상적인 관행을 깨고 김 판사를 그 자리에 계속 앉혀 두기도 했다.
김명수 체제가 조희대 체제로 바뀌면서 이런 비정상성이 해소되는가 싶었는데, 잠깐이었다. 국민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탄핵 정국 속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법원, 헌법재판소 등 수사와 사법기관 곳곳에 포진해 있던 우리법연구회와 그 후신이랄 수 있는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인사들이 국가 사법 기능을 특정한 목표와 자기 의지 관철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면서 법치 붕괴를 우려할 지경이 됐다.
1심 선고 이후에 사법 사보타주까지 하면서 시간을 끌었고, 기소 이후 무려 5년이 지난 뒤 유죄가 선고됐던 1심을 뒤집고 무죄(無罪)를 선고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비서실장을 하기도 했던 설범식 판사가 재판장으로 있는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이었다. 무죄 사유로 든 것은 법률가들의 양식과 국민의 상식에 반하는 내용으로, 이 전형적인 우리법 식 선언에서 법리와 논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송 전 시장이 황 당시 울산경찰청장을 만나 수사 청탁을 했다는 취지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1심 증인의 진술은 항소심 법정에서 직접 확인할 기회도 없이 믿기 어렵다고 배척되고 말았다. 그 이유는 그 증인과 송 전 시장의 사이가 “틀어진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공소사실이 유죄라는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나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했다. 전형적인 자유심증주의의 남용이다. ‘틀어졌다’는 판단은 어떤 증거로, 어디까지를 그렇게 볼 것인지 문제가 있다. 설령 그것을 인정하더라도 관계가 틀어지면 그 어디에도 진실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이 전제돼야 한다. 사이가 틀어지면 상대를 향한 것은 오직 거짓과 모략뿐이라는, 참으로 이상한 인간관이다. 이 말 속에는 사이가 좋은 경우에는 내 편을 위해서는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처세술도 포함된다.
사실 이런 식의 사고가 우리법연구회의 주류적 정서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법 정의를 외치다 금방 정치권으로 투신하기도 한다. 법관의 독립을 재갈 물리지 않은 의지의 전횡쯤으로 착각하는 풍조가 횡행해선 안 된다. 대법원의 신속한 광정(匡正)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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