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창의적으로 행동할 자신감 부족한 한국 아이들 / 김재준(국제통상학과)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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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에 빠져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가 주변에 많다. 스마트폰을 장시간 사용하는 어린이와 청소년은 집중력이 쉽게 떨어지고, 주의력이 분산되는 경향이 있다. 스마트폰을 실제로 사용하지 않고 곁에 두는 것만으로도 인지능력과 집중력이 감소한다는 미국 텍사스주립대 오스틴캠퍼스의 연구 결과도 있다.
아이폰을 만든 애플 임원들조차 정작 자신의 자녀에게는 아이폰 사용을 제한한다고 한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2010년 아이패드 출시 당시 “우리 아이들은 아이패드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테크놀로지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 왜 자신의 자녀는 디지털 기기로부터 멀어지게 하려 할까. 그들은 알고 있다. 진짜 창의성은 화면에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나온다는 것을. 손으로 만지고,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교감하는 경험에서 나온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예술 교육이 중요하다.
창의력 자신감 지수, OECD 평균 못 미쳐
지금 학교에서 전달하는 지식 중 상당 부분은 AI(인공지능)가 더 정확하고 빠르게 처리한다. 하지만 “왜 창작하는가” “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다른 사람과 무엇을 어떻게 함께 만들어갈 것인가” 같은 질문은 여전히 인간만 던질 수 있다. 바로 이 역량을 기르는 데 예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세계는 이미 예술 교육에 투자하고 있다
영국은 1998년 ‘창조산업전략보고서’를 통해 창조산업 육성을 국가 과제로 채택했다. 이후 영국 창조산업은 연간 1080억 파운드(약 200조 원) 매출과 230만 명 넘는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9년간 308조 원에 달하는 이익을 내며 고부가가치 문화 콘텐츠의 위력을 과시했다. 영국 예술 교육은 정규 교과(미술·디자인, 음악 등)와 교과 외 프로그램(연극, 무용, 영화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한때 주입식 교육으로 유명했던 싱가포르도 1997년 ‘생각하는 학교, 배우는 국가(Thinking Schools, Learning Nation)’ 정책을 도입하며 교육 패러다임을 창의성 중심으로 전환했다. 2000년대 이후 예술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등 정부 주도의 예술 교육 지원에도 적극 나섰다. 그 결실인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22년 실시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창의적 사고력’ 부문 세계 1위를 차지했다(그래프 참조).
OECD는 창의적 사고력을 “독창적이고 효과적인 문제해결 방안, 지식의 발전, 영향력 있는 상상력의 표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아이디어 생성·평가·개선에 생산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역량”으로 정의한다. 한국은 이 평가에서 60점 만점에 평균 38점을 받아 싱가포르(41점)에 3점 뒤진 2위에 올랐다. 세계 64개국을 대상으로 한 평가 결과 캐나다가 우리와 같은 38점을 받았고 호주(37점), 뉴질랜드(36점) 등이 뒤를 이었다.
눈여겨볼 부분은 한국 학생들의 ‘창의적 사고력 자아 효능감’, 즉 창의력 발휘가 필요한 과제 수행에 대한 자신감 지수는 -0.13으로, OECD 평균(0.00)에도 못 미쳤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 교육이 창의적 성과는 만들어내지만, 정작 학생들의 자신감과 주체적 역량은 기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술 교육은 곧 경제적 투자”
지난해 교육부는 일선 학교의 체육동아리와 예술동아리 운영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싱가포르나 핀란드가 국가 차원의 예술 교육 시스템을 구축한 것과 비교하면 한국의 접근은 여전히 ‘동아리 활동’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제 예술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 영국 창조산업이 국내총생산(GDP)의 6%를 차지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창의적 인재가 만들어내는 경제적 가치는 막대하다. 예술 교육은 곧 경제적 투자인 셈이다.
한국이 K팝, K-드라마로 세계를 사로잡은 건 창의적 문화 콘텐츠 덕분이다. 문제는 현 한국의 성공이 소수 엘리트의 재능에 의존한다는 데 있다.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이 예술 교육을 통해 창의적 역량을 기른다면 훨씬 더 큰 창조 생태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한국은 기로에 서 있다. 우리 아이들은 창의적 사고력 면에서 세계 최상위권에 속하는데도 창의적으로 행동할 자신감이 부족하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용기가 부족하다. 이때 필요한 것이 예술 교육이다. 예술 교육은 단순히 그림 그리고, 노래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것을, 다르게 생각해도 괜찮다는 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해도 괜찮다는 것을 몸으로 배우게 하는 교육이다.
문화는 아이의 미래를 위한 투자다. 그 투자의 성과는 우리 아이들이 창의적 자신감을 갖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것으로 나타날 테다.
김재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경상대학장, 국민대 도서관장과 박물관장, 한국예술경영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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