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기고]영화인들, 공부하세요 / 이일환(영어영문) 교수

얼마 전 부산에서 열렸던 제12회 국제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진행을 매끄럽게 못했다느니, 영화음악계의 거장인 엔리오 모리코네가 기분이 상한 채 돌아갔다느니 하는 안 좋은 뒷말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 영화제는 국제적 주목을 받는 문화적 연례 행사들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그 의미가 변질되지 않고, 우리 영화계의 자긍심이 스며 있는 문화계의 진정한 버팀목으로 남기를 누구나 바라고 있다.

얼마 전 우리 영화는 관객이 급감하면서 영화산업의 사활을 둘러싼 심각한 논쟁이 있었다. 영화 ‘화려한 휴가’와 ‘디 워’가 상영되면서 다소 누그러지긴 했지만 한국 영화의 현재와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 영화의 위기 요소로 거론되는 것 중에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제작비 상승, 관객들이 식상할 정도의 획일적인 소재 등을 들 수 있겠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한 번 보고 나면 쓰레기통으로 직행해도 되는 1회성 소모품 같은 영화들이 양산되고 있다고 개탄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근자 우리나라 영화의 위기가 우리 영화인들의 ‘지식과 사색의 빈곤’에서 비롯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솔직히 영화인들에게 “공부 좀 합시다”라고 외치고 싶다. 그럼 영화인들의 공부란 무엇일까. 1차적으로는 좋은 영화들을 수시로 접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나라 영화계는 이른바 히트작 베끼기는 잘하지만 외국의 흐름을 분석하고 도입하는 실험정신이 부족하다고 생각된다. 피카소나 모차르트가 그냥 나오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들의 타고난 재능이야 있겠지만, 그들은 훌륭한 선배들의 작품들에 대해 남모르게 끊임없는 연구와 탐구를 했던 것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눈으로 보는 것이기에 많이 봐야만 상상력이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세상에 대한 공부도 해야 할 것이다. 영화는 진공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이고, 또 초현실적 상황이 전개되기도 한다. 이 세상에 대한 고찰이 없을 때는 창조적 소재의 영화가 탄생할 수 없는 것이다. 근대 대한민국에서는 무수한 일들이 일어났다. 왕조가 끝났고, 나라를 빼앗겼다 다시 찾았고, 전쟁이 발생했다. 다시 쿠데타가 일어나 독재정치가 기승을 부렸고, 마침내 민중의 힘으로 민주화를 이뤘다. 이로써 우리 민족의 삶은 고달팠지만 영화로 담아낼 소재는 무궁무진한 셈이다. 하지만 이는 원석에 불과하다. 영화인들이 이러한 소재를 냉철히 들여다보고 그 속의 아픔을 따뜻하게 품어줄 때 비로소 작품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벌어졌거나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성찰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단언컨대 영화는 겉멋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젊은 인재들이 외국어를 열심히 습득했으면 한다. 국제화 시대를 맞아 싫건 좋건 외국과 협력하여 영화를 만드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때에 가장 믿을 수 있는 무기는 ‘외국어’이다. 스크린은 섬세하다. 말투 하나에 정 반대의 감정이 흐를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양의 감독들이나 배우들 중 몇 개 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지식 없이는 사색할 수 없고, 사색 없이는 창조적인 문제작이 나올 수 없다. 한국 영화의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는 영화인들의 상상력을 키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

원문보기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id=etc&sid1=110&mode=LPOD&oid=032&aid=000025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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